앤더슨 팩(Anderson .Paak) | 미국 흑인음악의 새로운 주역 원고의 나열


한국계라는 점으로 우리나라 음악팬들에게 열띤 지지를 얻는 미국의 힙합, R&B 뮤지션 앤더슨 팩(Anderson .Paak)도 후보에 올랐다. 5위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후보에 거론된 사실만으로도 그의 높은 위상이 설명된다. "사운드 오브 2017"에 오른 것을 계기로 인지도는 더욱 상승할 것이다.

198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앤더슨 팩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에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결국 아버지는 체포됐지만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환경이 여전히 그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악기를 연주하고 곡을 쓰는 재주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2011년 앤더슨 팩은 흑인음악 그룹 사라(Sa-Ra)의 샤피크 후세인(Shafiq Husayn)의 도움을 받아 녹음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된다. 사람은 역시 기술이 있어야 먹고 산다.

2012년부터 자기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고, 닥터 드레(Dr. Dre), 스쿨보이 큐(Schoolboy Q) 등 걸출한 뮤지션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앤더슨 팩은 힙합 신의 샛별로 등극했다. 지난해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Malibu]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많은 매체의 호평을 이끌어 낸 이 앨범은 곧 열리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어번 컨템포러리 앨범"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는 최근 가장 활발한 아티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솔로 앨범 외에 동료 프로듀서 노리지(Knxwledge)와 노워리즈(NxWorries)라는 힙합 듀오를 결성해 정규 앨범 [Yes Lawd!]를 내기도 했다. 여기에 한국계라고 딘(DEAN), 키스 에이프(Keith Ape) 등 국내 뮤지션과의 작업도 이어 오는 중이다. 올해 어떻게든 빛날 인물이다.


그라피티를 품은 음악 원고의 나열

지난 달 외국인들이 지하철 차량기지에 무단 침입해 그라피티를 그리고 도망간 사건이 발생했다. 1월 11일에는 도봉 차량기지, 16일에는 구로 차량기지, 17일에는 서동탄 차량기지에서 범행이 일어났다. 피해 사실만 확인됐을 뿐 차량기지의 면적이 넓은 데 반해 CCTV 수는 턱없이 적어 범인의 행방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조사를 통해 파악된 사실은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의 낙관인 "태그"(tag)가 달라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라는 점 정도다.

그라피가 그려진 대구 전동차 사진 ⓒ 대구지방경찰청

지난해 10월에는 그리스인과 독일인이 대구 지하철 전동차에 그라피티를 그리고 도망가는 일이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CCTV에 잡혔지만 얼마 뒤 출국한 탓에 검거하지 못했다. 최근 3년 동안 열차에 그라피티를 그린 범죄는 마흔 건 넘게 발생했다. 대부분이 외국인에 의한 범행이다. 세계 어느 나라 지하철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깨끗함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전동차가 그라피티의 일등 타깃이 돼 버렸다.

그라피티는 누군가에게는 예술혼을 불태우는 행위지만 시설물 담당자들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골칫거리다. 관리 직급은 느닷없이 문책을 당하게 되고 미화 업무를 직접 하는 사람은 지우느라 고생한다. 멋있게 보이는 작품도 분명히 있지만 어떤 그림은 부담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라피티는 딜레마를 지닌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라피티의 탄생과 확산
그라피티는 우리나라에서는 "락카"(lacquer, 래커)라고 잘못 부르는 에어로졸 페인트를 이용해 건물의 벽 또는 시설물에 입힌 글씨나 그림을 일컫는다. 그라피티는 또한 디제잉, 비보잉, 래핑과 함께 힙합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힙합과의 연관성, 일반 주거지에서 많이 나타나는 점 때문에 그라피티는 대표적인 거리의 예술로 통한다.


훌륭한 재능과 남다른 미적 감각을 지녀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시작은 수수했다. 1960년대 중반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한 흑인 소년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아이한테 관심을 얻기 위해 벽에 낙서한 것이 그라피티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의미를 찾았다. 낙서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그라피티는 정치사회적인 구호를 나타내는 양식으로, 갱단들이 자기 구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됐다.

흑인 사회를 중심으로 퍼진 그라피티는 60년대 후반에는 뉴욕까지 전해졌다. 70년대 초, 중반부터 뉴욕에서는 디제이와 엠시, 비보이가 함께하는 길거리 파티를 통해 힙합 문화가 발아하기 시작했다. 파티가 열리는 곳 주변에는 어김없이 그라피티가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라피티는 자연스럽게 힙합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일부 그라피티 아티스트는 그라피티를 독립된 예술로 간주한다. 힙합 문화가 발생하기 이전에 그라피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옳긴 해도 힙합 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 "할렘가의 아이들"(Beat Street) 같은 영화에서 그라피티 작품을 영상에 담고 그라피티를 그리는 인물을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로 설정함에 따라 그라피티는 힙합의 주요 성분으로 굳어졌다.

1983년에는 그라피티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영화 "스타일 워"(Style Wars)가 개봉했다. 그라피티가 중심 소재였지만 간간이 비보잉을 소개하는 등 그라피티 역시 힙합 문화 중 하나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The Sugarhill Gang의 '8th Wonder',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 Rammellzee와 K.Rob의 'Beat Bop', Treacherous Three의 'Feel The Heartbeat' 등 당시 나온 힙합 노래들을 배경음악으로 삽입해 그라피티와 힙합은 같은 식구임을 느끼게 했다.

그라피티를 담은 노래들
이러한 배경으로 일부 래퍼들은 그라피티를 소재로 한 노래를 내기도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노래가 뉴저지 출신의 듀오 Artifacts의 'Wrong Side Of Da Tracks'다. 이들은 노래에서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분해 장비를 챙겨서 집을 나서고, 지하철 기지로 몰래 침입해서 그림을 그린 뒤 서명을 남기는 행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곡은 느긋한 재즈 힙합의 골격을 띠지만 가사 덕에 긴장감이 감돈다.


이외에도 KRS-One의 'Out For Fame', Company Flow의 'Lune TNS', Looptroop Rockers의 'Ambush In The Night', Atmosphere의 'RFTC' 등이 그라피티를 다룬다. 이 노래들은 대체로 "가방에 페인트를 가득 채우고 나와 재빨리 그림을 그리고 도망친다."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한편 'Out For Fame'은 먼저 그라피티에 관한 노래를 낸 Artifacts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하며, 'Lune TNS'는 수십 명의 그라피티 아티스트를 계속 언급하면서 그들을 찬양한다.

우리나라 힙합 중에도 그라피티를 언급하는 노래들이 있다. 다만 대부분이 특정 동네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힙합에 대한 얘기로 디제잉, 비보잉 등과 함께 단어만 언급하는 데에 그친다. 그나마 구체적으로 논하는 노래가 피타입의 '힙합다운 힙합'이다. 피타입은 2절에서 힙합의 4대 요소를 기술한다. 이 과정에서 그라피티를 포함한 각 부문의 특징과 역할을 추상적, 구체적으로 수식하며 힙합을 무게 있게 전달한다.

앨범으로 들어온 그라피티
힙합이 부상함에 따라 그라피티는 음반 커버 디자인으로도 나타났다. "스타일 워"에 삽입되기도 한 Trouble Funk의 'Pump Me Up' 1981년 판(이 곡은 원래 1980년에 출시됐다.)은 그라피티로 뒤덮인 뉴욕의 전철 사진을 커버로 사용했다. 펑크(Funk) 밴드 Zapp은 1982년에 발표한 2집부터 그라피티에 영향을 받은 로고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펑크 록 밴드 Sex Pistols의 매니저이자 영국에 힙합을 전파한 인물인 Malcolm McLaren은 1983년 자신의 첫 번째 앨범 [Duck Rock]을 출시할 때 음반 커버로 그라피티까지 홍보했다. "와일드 스타일" 사운드트랙 또한 최초의 힙합 영화답게 그라피티를 표지에 담았다. 영화와 사운드트랙의 로고로 쓰인 철자는 매우 명료하지만 그라피티에서 와일드스타일은 그리기도 어렵고 읽기도 쉽지 않은 굉장히 복잡한 그림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라피티를 매체에 처음 선보인 사람은 구준엽이었다. 춤도 잘 췄지만 산업디자인을 대학 전공으로 선택했을 만큼 미술에도 재능이 충만했다. 그는 현진영의 백업 댄싱 팀 "와와"로 활동하면서 1990년 출시된 현진영의 데뷔 앨범을 디자인했다. 영어로 쓴 팀 이름 뒤에 자리한 "Funky"라는 글자는 뉴욕의 어느 뒷골목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김건모의 [In My Pops & Live] 앨범, DJ DOC 2집에서도 출중한 그라피티 실력을 뽐냈다.

구준엽은 방송을 통해서 그라피티를 시연하기도 했다. 1996년 '꿍따리 샤바라'의 후속곡 '난'으로 활동할 때였다. SBS의 한 버라이어티쇼에 클론으로 출연한 그는 '난'을 부르며 그라피티를 그렸다. 밑그림이 있는 상태에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후딱 그리는 퍼포먼스긴 했지만 지상파 방송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H.O.T.도 1997년 2집에서 그라피티를 대량 선보였다. 앨범 타이틀을 시작으로 부클릿에서 멤버들의 이름을 그라피티로 나타냈다. 덕분에 앨범 재킷에서 만큼은 힙합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합법적으로 그라피티를 볼 수 있습니다.
홍대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에 가면 그라피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작품은 얼마 없으며 다수의 그림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구석구석을 찾아 다녀야 하는 단점도 있다. 게다가 건물이나 담벼락에 그려진 그라피티 대부분은 주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탄생한 불법 창작물(혹은 선전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거리의 그라피티를 구경하는 것은 재물손괴의 현장을 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다행히 아쉬움을 누그러뜨릴 기회가 마련된 상태. 때마침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위대한 낙서 The Great Graffiti 展"이라는 제목으로 그라피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년 12월 시작된 이 전시는 이달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2주 연장돼 3월 12일까지 진행된다. 여러 작가의 그라피티를 설명과 함께 차분하게 감상하고 싶다면 한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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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뮤지션 리언 웨어(Leon Ware) 별세 그밖의 음악


1970년대에 활발히 활동한 R&B, 솔뮤직 가수 겸 작곡가 리언 웨어가 지난 23일 향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인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고인은 2000년대 중반 전립선암을 앓았다고 한다.

1940년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 후반부터 작곡가로 활동했으며 70년대 들어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아이즐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Got to Have You Back',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공동 작곡했으며 마빈 게이(Marvin Gaye)의 1976년 앨범 [I Want You]의 공동 프로듀서로 이름을 크게 알렸다.

스텔라젯(Stellarjet) - What Is Love 보거나 듣기



혼성 밴드 스텔라젯의 신곡. 보컬의 음색도 매력적이고 음악도 적당히 스타일리시하다. 데뷔곡 'Hate Me'는 R&B가 가미된 록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약간 일렉트로닉 성격도 나타난 록이었고, 작년 여름에 낸 'Right Before a Storm'은 일렉트로니카였고, 작년 11월에 낸 'I Don't Like You'는 펑크(funk) 록이었다. 흑인음악과 록, 전자음악을 고루 들려준다. 이번 노래는 1980년대 소프트 록 톤에 R&B가 가미됐다. 후렴에서는 가스펠 분위기까지 낸다. 보컬의 음색 덕에 흑인음악 느낌이 더 산다.

그런데 믹싱이 잘못된 거 아닌가? 어떻게 노래가 이렇게 끝날 수가 있지? 이건 거의 혁명인데?
그리고 우리말 가사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멀고도 험한 방송심의 세계 원고의 나열

방탄소년단이 이달 13일 새 앨범 [You Never Walk Alone]을 출시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정규 2집 [Wings]의 외전 같은 작품으로, 기존 수록곡에 '봄날', 'Not Today' 등 네 편의 신곡을 추가했다. 그룹의 기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신곡들에 청춘을 향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젊은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콘셉트다. 2집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한국 가수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터라 방탄소년단도, 팬들도 활동과 응원에 흥이 붙을 듯하다.


나날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신보 발매를 앞두고 조금은 맥이 빠질 소식이 들렸다. 신곡 중 'Outro: Wings'가 K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첫 번째 랩 파트에서 "새꺄 쫄지 말어."라는 가사가 욕설 및 저속한 표현에 해당돼 방송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이 가사는 'Outro: Wings'의 미완성 버전인 [Wings]의 'Interlude: Wings'에도 등장하지만 그때는 아예 심의 신청을 하지 않았다. 'Outro: Wings'로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긴 해도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일지 모르겠다.

억울하게만 느낄 결정은 아니다. 방송국은 건전하지 못한 콘텐츠를 여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실 요즘 초, 중, 고등학교 학생 다수가 저것보다 거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들도 음악방송이나 라디오를 통해 접할 가능성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속된 표현을 전파해서는 안 되기에 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많은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방송국의 심의를 받는다. 그리고 다수의 노래가 욕설, 비속어, 폭력성, 선정성, 간접 광고 등 이런저런 사유로 퇴짜를 당하곤 한다. 부적격 판정을 수긍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납득하기 어려운 사례도 더러 발생한다.

이름만 얘기하지 않으면 괜찮아!
2014년 에디킴의 'Slow Dance'가 K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가사에 언급된 프랑스 보드카 브랜드 "그레이 구스"(Grey Goose) 때문이었다. 이것이 간접 광고에 해당해서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 구스"는 청소년들의 고가 브랜드 선호 현상을 조명한 뉴스 보도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지만 "그레이 구스"는 방송 전파를 탈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프랑스는 그렇게 의문의 1패를 기록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밀당의 고수'가 심의를 통과한 것을 고려하면 어이없게 느껴지는 일이다. '밀당의 고수'에는 패스트푸드 브랜드 "맥도널드"의 시엠송 멜로디가 사용됐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멜로디라서 그 부분을 들으면 많은 이가 "맥도널드"를 떠올릴 것이고 나아가서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수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밀당의 고수'는 상품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서 제재를 받지 않았다.

에디킴이 "그레이 구스"를 가사에 쓴 것이 철저히 브랜드를 홍보할 의도였는지, 아니면 음악적 표현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배경이 어찌 됐든 상품을 떠올리게 되는 결과만을 봤을 때 더 명확하고 효과적이었던 것은 'Slow Dance'가 아니라 '밀당의 고수'라고 단정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명시했고 다른 하나는 암시했다. 불가 판정은 명시한 쪽에만 내려졌다. 전체적인 상황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직접 표현을 중시하는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심의는 복불복?!
2011년 미미시스터즈의 데뷔 앨범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에 실린 '미미'가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문제가 된 가사는 "당신을 만난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네."였다. 벙어리가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미미시스터 측은 다른 방송국에서는 통과됐는데 KBS에서만 불가 판정을 받았다며 의아해했다.


이상하다고 느낄 만했다. 미미시스터즈를 세상에 알린 장기하와 얼굴들이 2009년에 발표한 '달이 차오른다, 가자' 역시 "지레 겁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과 같이 벙어리를 노랫말에 썼음에도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미미시스터즈의 노래가 방송 불가 판정을 받던 순간까지도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방송에 잘만 나오고 있었다. 2년 만에 같은 단어를 두고 상반되는 결과가 나오니 당사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 광경을 통해서 심의는 복불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심의하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정서와 견해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허락과 불허가 갈린다. 미미시스터즈의 '미미'가 부적격 판정을 받기 한 달 전 엠블랙의 'Stay'는 가사에 장님("난 곧 떠날 사랑에 눈이 먼 장님")이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심의에 통과했다. 장님도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미미시스터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정말 분했을 것 같다.

악동뮤지션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심의의 피해자다. 2014년에 낸 데뷔 앨범의 'Galaxy'는 KBS로부터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의 반복으로 스마트폰 광고로 비칠 우려가 있다면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와 달리 레이디스 코드가 2016년에 발표한 'Galaxy'에는 어떤 제약도 가해지지 않았다. 레이디스 코드의 노래에서는 글로벌 대기업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걸까?

추억의 장소는 추억으로만 간직하기
방탄소년단은 2015년 발표한 'Ma City'를 통해 멤버들이 살던 동네를 찬양했다. 제이홉은 광주, 슈가는 대구, 지민은 부산, 랩몬스터는 경기도 일산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 중 랩몬스터의 가사가 문제가 됐다. "라페스타", "웨스턴돔" 등 일산에 있는 종합쇼핑몰의 브랜드를 거론한 것 때문. 결국 노래는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말 로꼬가 발표한 '남아 있어'도 KBS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로꼬는 자신의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팬들과 함께 호흡을 나눴던 무대를 떠올리는 내용은 좋았으나 "브이홀", "롤링홀", "악스홀" 등 홍대의 클럽을 열거한 것이 부적격 사유가 됐다. 지난날을 회상했을 뿐인데 업소 홍보의 오명을 썼다.

이들이 당한 배척을 통해 또 하나 배운다. 추억을 얘기할 때는 적당히 구체적이어야 한다. 동네, 거리 정도는 괜찮지만 정확한 장소를 얘기하면 안 된다. 창작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심의의 잣대는 냉혹하다.

일본어는 있을 수 없지
지난해 가을 선우정아의 '츤데레'와 라디오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구자형의 '새 가락 진도 아리랑'이 K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선우정아는 일본어 합성어를 쓴 제목 때문이고, 구자형은 가사 중 벚꽃의 일본어 표현인 "사쿠라"를 썼기 때문이다. 두 가수는 방송국이 허락하지 않는 일본어 선택으로 "뻰찌"를 먹었다.


우리나라 방송가는 일본 문화에 대해 아직 관대하지 않다. 뼈아픈 식민의 역사를 잊을 수 없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일본 노래나 영화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으면서 일본의 요리, 관광지는 꾸준히 소개하는 모습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일본어는 족족 차단되지만 영어로 점철된 노래는 방송에 잘만 나오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노래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우리는 영어에 대해 둔감하게 된다. 사실 이미 그렇게 된 상황이다. 한국에서 우리말로만 이뤄진 노래를 보기가 어렵다는 게 우스우면서도 무섭다. 문화 식민화가 이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드라마는 되지만 노래는 안 됨
노래에서 상품이나 영업장의 이름을 그대로 가사에 표출하는 것은 현실성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물품이나 건물, 대중에게 익숙한 상호를 여과 없이 드러내면 듣는 이는 가사를 통해 사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노래는 허구가 아닌 진짜 삶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청취자들과 일상적인 부분으로 공감을 구하려는 의도일 뿐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작사는 결코 아닐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를 보면 간접광고가 물결을 이룬다.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나 주인공 가족들이 외식을 하는 음식점은 죄다 프랜차이즈 체인점이다. 그들의 모습 뒤에는 항상 회사의 로고와 이름이 선명하게 자리한다. 말만 간접일 뿐 대놓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배우들이 연기로 제작에 협찬하는 회사의 제품 설명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드라마와 달리 노래는 언급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판이한 양상은 물질적 원조에 의해 좌우된다. 이 회사는 드라마 제작을 지원했으니 상품을 방송에 내보내지만 이 노래 속 브랜드는 자기 방송국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 송출을 차단한다. 방송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면 홍보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지만 홍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방송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매몰차게 까는 것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EXO의 'Lotto'와 라비의 'Ladi Dadi', 긱스의 'Divin''과 K.A.R.D의 'Oh NaNa' 등이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앞의 두 노래는 "로또"를, 뒤의 두 노래는 "인스타그램"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앞서 나온 원더걸스의 'Sweet & Easy'는 "누텔라"가 들어간 것 때문에 방송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상표를 다룬 노래들이 거듭해서 방송된다면 자칫 브랜드 공해를 이룰 수도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제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가사의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단어 몇 개만 갖고 홍보 의도로 단정하고 방송을 금지하는 행태는 쓴웃음만 자아낸다.

그렇다고 꼼수는 부리지 않길
가수와 기획사들은 본인의 노래, 소속 뮤지션의 노래가 심의에 통과할지 못할지 이제 웬만큼 안다. 노래에 비속어, 욕설, 상표 이름 등이 들어갔다면 걸릴 것을 예상해서 심의 받기를 아예 포기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어떤 판결이 날지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심의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국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노래를 발표하면 신문사들이 그 결과를 보도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홍보를 노리는 것이다. 선전의 새로운 수단이긴 하지만 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다. 이런 식의 꼼수는 부리지 않길 바란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609&start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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