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Muthafuckin' X-Mas 보거나 듣기


Eazy-E - Merry Muthafuckin' X-Mas
from the album [5150 Home 4 Tha Sick](1992. Priority)


15년 전 어느 날의 일입니다. 흑인들의 음악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한 소년은 총을 든 검은 사내들이 매서운 눈매로 랩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이내 그 격한 표정과 사나움에 빠져들었고 무슨 소린지는 몰랐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과 음악에 점차 동화되어 갔습니다. 언제 또 나올지 모르는 영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이 날 때면 만날 TV 앞에 밀착하곤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죠. 훗날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갱스터 랩이라고 부르던 것이었습니다.

그 음악에 도취되어 행복했던 며칠 후, 소년은 특별한 외출을 하게 됩니다. AK 소총과 야구 방망이는 없었지만 자신이 이미 갱이라도 된 양 누구보다 늠름하게, 누구 못지않게 당당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동네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무서운 형아 셋을 맞닥뜨렸습니다. 그들은 아주 친절하고 상냥한 음성으로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 좀 빌리자." 갱스터 랩의 도움으로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소년은 '내가 호구로 보이냐? 36.5도의 고깃덩어리들이 어디서 삥땅질이야?'라고 아주 크게, 마음속으로만 외쳤습니다. 언제 갚을지 몰랐지만 절실해 보이는 형아들의 눈빛은 소년의 가슴에 강하게 호소했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전 재산 4,700원을 두 손 모아 내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다 큰 형아들이 유흥비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성에 차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가진 게 이것뿐이냐며 조근조근 센타를 까기 시작했습니다. 나갈 때와는 정 반대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소년은 퉁퉁 부은 얼굴에 호랑이 연고를 바르며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교훈을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한 그는 '학교 캡장'은 못 될지언정 '강북 *밥'으로 살지는 않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 더욱 열심히 갱스터 랩을 들었습니다.

사건이 있은지 1년이 되었을까요? 소년은 또 다른 엄청난 만남을 하게 됩니다. 함께 랩을 좋아하던 친구의 집에 놀러 가 우연히 이 음악을 듣게 된 것이지요. 익히 알던 인물이었지만 이 노랜 처음 접하는 것이었어요. 신기해했습니다. 무척이나 재밌어했고요. 순식간에 뇌리에 박혔고 그날로부터 소년에겐 매년 성탄절의 송가가 되었습니다. 올해도 그렇습니다. 12월 25일을 홀로 외롭게 보낼 그는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이날의 거룩한 의미를 되새기며, 콤튼의 크리스마스를 상상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힘차게 따라 부릅니다. 'Merry muthafuckin' Christmas! And have a fucked up new year!' 그가 마음만 갱이라서 다행입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라 참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타는 외로움에 못 이겨 총질을 해댔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름다운 밤,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노래랍니다. 목청껏 부르다 지쳐 잠든 그의 주변에는 빨대 꽂힌 소주병들이 나뒹굽니다. 과거보다 조금 더 자란 소년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덧글

  • 낭만여객 2007/12/23 12:43 #

    타는 목마름에 허덕여 총질을 하는 것은;;;; 그나저나 힙합 메리크리스마스라니 역시 굿 센스이십니다 ㅎㅎ
  • 한솔로 2007/12/23 19:54 #

    메리와 크리스마스 사이에 좋지 않은 하나가 더 들어가서 좀 그렇지만...
    성탄절은 괜히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아요.
  • 나상 2007/12/24 16:05 #

    재미있는데요.허허
  • 플라멩코핑크 2007/12/24 19:26 #

    올 크리스마스에 저 노래 크게 틀어놓으면 왠지 멋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
  • 한솔로 2007/12/25 16:59 #

    나상 / 앞에 잠깐 엄마가 책 읽어주는 부분 중 이지 이의 과거에 대한 얘기는 말도 안 되는 뻥인데도 왜 그리 재밌는지 모르겠어요 +_+

    플라멩코핑크 / 최대한 사람들 많이 다니는 곳에서 틀면 딱일 텐데요. 시청앞 광장 스케이트 장에서 틀면 아이들 정서 함양에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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