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나름의 영역 확대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웨스트 코스트의 치카노 힙합 신은 광범위한 혈연과 민족성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공고히 다져왔다. 누구 하나가 자기 자리를 늘려 보려는 사사로운 행동보다 도의적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존중하며, 누가 앨범을 제작한다고 하면 우리 농번기의 두레처럼 협력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치카노 힙합의 대표주자들인 미스터 카폰 이(Mr. Capone-E), 캘리 라이프 스타일(Cali Life Style), 미스터 릴 원(Mr. Lil One), 다이아블로(Dyablo), 미스터 섀도우(Mr. Shadow) 등은 가시화되지 않은 하나의 유닛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집단의 중심에 서서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래퍼가 바로 미스터 나이트아울(Mr. Knightowl)이다. 1995년 셀프 타이틀의 앨범으로 데뷔하여 10장이 넘는 개인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내세운 편집 음반만 해도 상당수, 사운드트랙과 동료 래퍼들의 음반에도 꾸준히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일련의 분주한 행보를 통한 라틴 힙합의 성장은 랩 게임에서나 사회적으로 열세에 몰리고 있을 라틴계 미국인들 또는 래퍼들에게 어려움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남는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 작품은 흔해 빠진 사랑 얘기나 공격적으로 뱉어 내는 신세 한탄, 사회 비판 일색의 랩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다. <Classics For The O.G's>라는 장엄한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오리지널 갱스터(original gangster : o.g) 선배들을 위한 '추억 되새김용' 명곡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은 총괄 관리자 미스터 나이트아울의 감독하에 그와 함께 수년간 작업을 해온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대표 뮤지션-작곡가, 비트메이커, 프로듀서, 녹음 엔지니어, 토크박스(talkbox) 연주자-인 핑거즈(Fingazz)가 토크박스 연주로 과거의 명곡들 하나하나를 색다른 분위기로 환생해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리메이크 앨범이라는 얘기, 조금 걱정도 앞선다. 유난히 많은 앨범을 발표하지만 그 음악이 그 음악 같은 이들 치카노 힙합 유닛이 벌써 창작의 한계를 맞이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과 단순히 향수라는 무기를 빌려 앨범 판매량이나 좀 높여보자는 소행으로 비칠 위험도 있다. 지금도 왕성하게 앨범 제작을 하고 있으므로 전자는 기우에 불과하니 후자에 무게가 실린다. 리메이크는 대중성과 작품성에 검증이 완료된 음악에 어떻게 변형을 가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해서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팬들로부터 험한 핀잔을 듣게 될 우려가 적지 않은 시도인 만큼 원곡의 감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떤 새로움을 보여주는가가 관건이 된다.
그러한 노출된 위험 요소로부터 비켜가려는 노력의 일환이 토크박스의 사용인데, 이것은 이 음반을 더욱 재밌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소스라 생각해도 좋겠다. 하지만, 토크박스의 매력-축농증 환자가 콧물을 잔뜩 머금은 듯한 음색-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에게는 백날 들려줘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난제 중 하나다. 토크박스를 통해 걸러 나온 독특한 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로도 한 악기의 연주처럼 느껴지며 연주자와 연주기법에 따라 다양한 하모니와 뒤틀림을 표현할 수 있어서 홀로그램처럼 입체적이고, 보컬에 그러데이션을 주는 것과 같은 매력이 존재하니, 열린 청취 자세를 갖는다면 이것의 색다른 소리에 이내 호감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순수하게 육성으로 불렀으면 심심했을 법한 음반은 그래서 명쾌하게 운을 뗀 셈이다.
인트로를 지나 본격적으로 스타트를 끊는 노래는 리 오스카(Lee Oskar)가 멤버로 있던 캘리포니아 재즈 / 펑크(funk) 퓨전 밴드 워(War)의 <Why Can't We Be Friends>의 수록곡을 리메이크한 'Low Rider'로서 원곡과 다름없이 시종 이어지는 단출한 리듬은 어깨를 들썩이거나 몸을 좌우로 흔들기에 제격이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했던 윌리엄 드본(William DeVaughn)의 밀리언셀러 'Be Thankful For What You Got'은 노래 가사 중 'Diamond in the back, sunroof top, digging the scene with a gangster lean' 부분이 후에도 여러 힙합 음악에서 샘플링되기도 해서 어느 정도 익숙할 것 같다.
두 세대를 이어 변함없는 활동을 보여주는 가족형 소울 밴드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히트작 'Between The Sheets'는 고유의 애잔한 분위기와 토크박스 연주가 너무나도 멋진 궁합을 과시하며, 영화 <재키 브라운>의 사운드트랙이었던 블러드스톤(Bloodstone)의 'Natural High'는 원곡에 없던 코러스의 등장으로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하고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Well, well, well' 추임새를 일반화시킨 'For The Love Of You'로 차분한 사운드를 이어간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출생 지역과 출생 연도도 다양해서 디트로이트에서 필라델피아로, 시카고로,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분주하지만 즐거운 유람을 권장한다.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가 후렴구를 차용한 바 있는 갭 밴드(The Gap Band)의 'Outstanding'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며 여운을 남기는데, '당신은 내 맘을 흔들어 놓아요. 난 당신과 함께 살아 숨쉬죠'의 가사에서 전해져오는 벅참과 본 앨범에서 느낄 수 있는 총체적 감흥이 청취자들-특히 올드 스쿨 마니아-에게 강하게 어필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작 토크박스 연주의 본줄기라 하는 로저 트라웃먼(Roger Troutman)이나 그가 이끌던 그룹 잽(Zapp)이 발표한 노래에 대한 번안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대가의 명곡을 해치지 않으려는 경외심에서 비롯된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더해 토크박스 연주를 통한 보컬 파트의 변화는 새롭게 다가서지만 원곡들의 비트와 분위기, 구성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이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치카노 힙합 팬들에게는 새로운 콘셉트로 선보인 '가볍게 쉬어가는 코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펑크(funk), 소울 팬들에게는 <Classics For The O.G's>의 캐치프레이즈가 솔깃하게 다가오는 괜찮은 리메이크 앨범으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다.
2008/01 한동윤 (www.izm.co.kr)
2006년 5월에 쓴 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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