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룹의 멤버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벗어나 솔로 활동을 개시할 때에는 천근만근 묵직한 고민거리를 하나 짊어지게 된다.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몸담고 있었던 팀의 성향을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가 대부분. 꼭 당장이 아니라도 향후 자기만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함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도처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난다. 완전한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작은 규모이든 대대적이든 간에 궁극에는 변화가 요구되겠지만 가장 안전하며 장기적으로도 활동하는 데 무리가 없는 선택은 상기한 두 가지를 절충하는 것이다.
전설적인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멤버 터미네이터 엑스의 첫 솔로 앨범은 그 전략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었다. 어느 하나에 편중됨 없이 차분히 중도를 지켰다. 물론 그가 솔로 활동을 위해 그룹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여섯 번째 앨범 <There's A Poison Goin' On...>까지 그룹의 프로듀서, 디제이를 맡았다).
이와 같은 노선은 메시지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소리의 성질과 완성된 반주의 모양에만 해당한다. 그의 보직은 프로듀서 겸 디스크자키, 랩을 하지 않기에 퍼블릭 에너미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인 현실에 밀착하며 정치적, 사회적 주장을 거침없이 격하게 내뱉는 가사는 자신이 해결할 영역이 아니었다. 터미네이터 엑스에게는 음악 감독으로서의 역할이 전부다.
앨범의 관건은 그래서 사운드에 대한 절충안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이다. 여전히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각종 잡음과 샘플들이 난무하는 수록곡들을 접하노라면 과거 그룹의 음악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소리의 질감은 이 소작(所作) 이전에 그들 동부 랩의 혁명군이 발표한 기념비적인 앨범 <Yo! Bum Rush The Show>(1987),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 <Fear Of A Black Planet>(1990)의 혈액뿐만 아니라 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친자식이나 다름없이 느껴진다. 그러나 노래가 차츰 진행될수록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그 세 장의 명편에서 보여준 형식을 채택하면서도 나름대로 자기 문법을 형성하는데, 이는 세련된 편곡, 다른 공간감의 확보라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둘의 어울림으로 그가 지향하는 바를 넌지시 밝힌다. 또한, 턴테이블로 구현되는 각종 트릭을 곳곳에 삽입하여 기술적 측면을 강조하는 동시에 소울, 펑크(funk) 샘플링 운용에서도 그룹 시절보다 한결 자유분방하고 화려함을 보인다. 시위 현장을 보는 듯 긴박감과 혼란스러움을 띠던 퍼블릭 에너미의 음악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대부분 래퍼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태생의 음원이 갖는 비교적 안정된 대기만이 존재한다.
판 긁는 소리와 레게 느낌의 보컬이 어우러져 경쾌한 기운을 발산하는 'DJ Is The Selector', 속도감 있는 브레이크비트 위에 덧입힌 디스토션 기타로 인해 신경질을 내는 것처럼 들리는 'Run That Go-Power Thang'을 통해서는 힙합이 태동하던 시절 춤추기 좋은 비트를 제조했던 디제이의 기초 임무에 매진하며, 배경을 학교 안으로 이동해 불량학생들의 생활을 서술하는 'Juvenile Delinquintz'나 오랜 동료 치프 그루비 루(Chief Groovy Loo)의 랩 피처링이 자신감 있는 MC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Ain't Got Nuttin''을 통해서는 터미네이터 엑스가 정치적 수사(修辭)보다는 거리와 클럽에서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곡을 지향함을 발견하게 된다.
퍼블릭 에너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요인이 흑인의 권리 주장과 체제 비판을 담은 노랫말에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생동감 넘치고 효과 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특유의 사운드 골격이었다. 이 공을 모두 밤 스쿼드(The Bomb Squad)와 행크 쇼클리(Hank Shocklee)에게 돌리면 아쉽다. 그들과 함께 모든 곡을 주조하고 자기 악기인 턴테이블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낸 터미네이터 엑스가 함께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파격적이거나 실험적인 결과물을 전시한 작품은 아니지만 여기의 비언어적 형태로 구성한 비트들은 터미네이터 엑스가 뛰어난 사운드 디자이너임을 거듭 확인하게 해준다. 또한, 그룹의 특징과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적당하게 안배한 음악은 퍼블릭 에너미 멤버로서, 솔로 아티스트로서 (다소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입지를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2008/01 한동윤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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