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ous Artists - RAW Greatest Hits: The Music 원고의 나열

음반 수집에 병적으로 집착을 보인다거나 프로 레슬링 열혈 팬이 아니라면 이 음반을 살 이유가 없다. 수록된 노래들의 편곡은 워낙 조악해서 음악적인 부분만으로는 감흥을 받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 틈에 있어서인지 이상하게도 걸출한 실력을 자랑하는 밴드 모터헤드(Motörhead)가 부른 'The Game'이나 주류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은 설라이버(Saliva)의 'I Walk Alone', 릴 킴(Lil' Kim)이 참여한 'Time To Rock & Roll'마저 심히 궁하게 들린다. 경기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관중의 열기와 링 안 선수들의 역동적인 격투를 직접, 또는 브라운관을 통해서 경험하지 않고서 이 음반을 들어봤자 시간만 아깝고 귀만 측은해질 뿐이다.

앨범은 세계적인 프로 레슬링 단체 WWE(World Wresting Entertainment)의 브랜드(현재 스맥다운(SmackDown), RAW, ECW로 구성) 중 RAW의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제작되었으며 RAW를 거쳐 간 WWE 슈퍼스타들의 주제곡을 담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스맥다운에 소속되거나 은퇴한 선수의 테마도 간간이 보인다.

전술한 대로 여기에 담긴 노래들이 썩 좋은 품질의 것이 아니기에 그나마 음악을 재밌게 들으려면 경기장 안의 풍경을 떠올리고 각 선수의 특징적인 행동을 곡과 매치시켜야 한다.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Stone Cold Steve Austin)이 피니셔를 날린 후 맥주 세리머니를 하거나 버드와이저 트럭을 몰고 나와 술 대포를 쏘는 모습을, 손대면 '톡'하고 터질 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바티스타(Batista)의 배변 자세 불꽃놀이 퍼포먼스를, 남이 했으면 지저분했을 트리플 에이치(Triple H)의 마초 분무 쇼를, 입장하는 데에만 3분 넘게 소요되는 언더테이커(Undertaker)의 묵직한 걸음걸이와 안구 돌려 흰자 보이기 신공을, 녹색 폭죽과 동시에 터지는 디 제너레이션 엑스(D-Generation X)의 가랑이 사이로 X자 만들기(crotch chop)를, 케인(Kane)의 수직 화염 방사 염력 포즈를 상상해줘야 어느 정도 맛이 난다.

2월 초 우리나라에서 열릴 로열 럼블(Royal Rumble, WWE의 4대 중요 행사 중 하나) 투어 경기를 관람할 사람이라면 그날을 기다리며 앨범을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여운보다는 공허함만 남길 공산이 크다.

2008/01 한동윤 (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