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Rain) - Rain's World 원고의 나열

움직이는 1인 기업, 21세기 문화 키워드로 보아를 꼽았다면 이제 그에 상응하는 사람으로 단연 비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대표 주간지 타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하나로 그를 선정했을 정도니 과학 경시대회 캐치프레이즈 같은 표현 하나를 빌려 이야기하면, 진정 비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그야말로 스타 중의 스타다.

비가 자가발전으로 반짝거리는 대형 별이 되지는 않았음을 우리는 안다. 그림자처럼 그와 보행을 함께하며 키워주고 길러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박진영이다. "나는 케인이요. 당신을 돕겠소." 영화 <쿵후>에서 케인(데이빗 캐러딘(David Carradine) 분)의 저 대사처럼 박진영은 공중분해 된 팬클럽(Fan Club)으로 심약해졌을 비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으며 변치 않는 스승이자 조력자가 되었다.

비의 새로운 시작부터 현 앨범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박진영은 무대에 함께 서지 않았을 뿐 듀오나 다름없다. 그들은 한 명의 프로듀서와 한 명의 보컬로 이뤄진 프루 프루(Frou Frou),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 램(Lamb)처럼 짝을 이뤄 이역만리에 노래를 전파했다.

이미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자신감 넘치는 이름의 네 번째 앨범은 전작들과 차이 없이 댄스곡과 미드템포의 어반 컨템퍼러리 음악이 골고루 포진해있다. 해외 진출을 의식해 1, 2, 3집보다는 현재 서양에서 유행하는 댄스 문법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끈해야 할 댄서블 넘버는 다소 허전하고 다부진 근육 안에 따뜻함을 품은 말쑥한 사내를 돋보이게 하는 감성적인 노래의 틀에 비의 목소리는 안착을 하지 못한다.

타이틀 'I'm Coming'부터 위태롭다. 타악기의 분절과 싱코페이션이 많아야 할 크렁크앤비(Crunk&B)류의 곡이 너무 틈이 많고 '뜨겁다'라고 말하는 코러스는 강도가 약해 되레 찬물을 끼얹는 격이다. 래퍼로 타블로(Tablo)를 섭외한 것도 에러다. 타블로의 기량 문제는 절대 아니며 비의 허스키한 음성과 대조되는 하이톤의 래핑은 속도감은 높여 줄지언정 힘을 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비의 춤과 러닝셔츠를 반쯤 올려 젖혀 섹시함을 드러내는 일련의 퍼포먼스가 없다면 노래는 단팥 뺀 찐빵의 밋밋함, 퍽퍽함과 같다. 음원만을 따진다면 'Touch Ya'나 'Oh Yeah'가 더 맵시가 살며 실하다.

3집의 '지운 얼굴 (Familiar Face)'처럼 귀에 잘 들어오는 선율과 훅(hook)이 빛나는 노래가 이번 앨범에도 많은 것이 장점이다. '내가 누웠던 침대', '하루도', 다이내믹 듀오(Dynamic Duo)의 랩이 노래를 잘 받쳐주는 'Him & Me'가 그렇다.

비의 음성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거칠지만 여심을 흔들 만한 묘한 호소력이 있는데, '내가 누웠던 침대', 'Move On'에서는 음의 상승이 고르지 못하고 특유의 힘겹게 목을 쥐어짜는 창법-이게 비가 가진 멋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이 여전히 남아 듣는 재미를 수차례 덜어두는지라 그럭저럭 기교를 접고 담백함으로 부른 '카시오페아'의 안정적인 진행이 더 와 닿는다.

<Rain's World> 발매에 맞춰 비는 매체를 통해 "음반 재킷 속, 가슴의 별 표식은 전쟁, 평화, 고통, 희망, 사랑 다섯 가지를 상징한다. 이는 전쟁과 고통으로 얼룩진 세상을 사랑으로 감싸 안고 평화롭고 희망적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4집에서 처음으로 메시지를 담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음반 어디에서도 전쟁, 평화에 관한 메시지나 그 메타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으며 고통, 희망, 사랑의 감정을 전부 나타냈다고 해봤자 내용은 남녀 간의 소사와 치정을 넘어서지 못한다. 어디 가서 이걸 콘셉트 앨범이라 홍보한다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헛웃음을 보이며 개탄의 눈물 10리터를 흘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보도 자료에서 나타낸 비의 공약 비슷한 발언은 앨범에서 무기력하다. 자기주장을 전달하려 하면서 왜 노랫말은 박진영에게만 의존했는가하는 문제다. 심오한 고전 철학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가사를 직접 쓰지 않더라도 의견을 담으며 일정 수준까지는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음반 크레디트는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안고 있지 않으니 비의 페이소스는 휘황찬란한 무대를 향해 날갯짓을 할 뿐이다.

전쟁-호전(好戰) 아닌 반전(反戰)이겠거니-과 평화를 말하며 군복을 입는 것도 난센스인 듯하다. 반전에 대한 외침을 의상으로 나타내는 것이 굳이 군복이어야 할 이유는 없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촌스런 발상에 가까우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독재라든가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한 편이기에 그런 코디네이션은 비에게 부정적 요소만 될 것 같다. 싱그러워야 할 21세기에 끄집어낸 '자넷 잭슨(Janet Jackson) <Rhythm Nation 1814> 따라가기'는 오토매틱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든다.

지난 앨범들과 비교하자면 <Rain's World>의 사운드는 분명 좀 더 깔끔하고 매끄러워지긴 했으니 박진영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이제 마지막 장식으로 비가 AR같은 MR에 맞춰 노래를 하며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면 시청각을 흡족하게 하는 모든 과정이 완료된다. 음악은 이미 미국으로 건너가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지만 음반은 자기 차례가 돼야 움직이는 몸매만 미끈한 댄싱 머신만을 남겨 두었다.

2006/12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플라멩코핑크 2008/02/11 02:08 #

    솔직히 불가사의예요... 운이 좋았던걸까 싶기도 하고...
    월드스타라하니 그냥 신기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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