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전 세계 클럽 가를 강타한 'Goodies'의 출시 이후 프로듀서 릴 존(Lil Jon)은 시아라(Ciara)에게 '크렁크 앤 비(Crunk & B)의 영부인'이라는 호칭을 선사했다. 그것은 크렁크 사운드의 창시자인 자신이 당연히 잘났음을 깔아놓는 언표였으나 시아라에게도 물론 근사한 수사(修辭)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뒤로 그녀는 '1, 2 Step'과 'Oh'를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애틀랜타의 신성으로 한숨에 우뚝 서게 된다.
R&B 신에 새긴 자신의 이름을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조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하기 전 2년 남짓한 사이 시아라는 크렁크 음악의 영부인으로 머물기보다는 R&B의 여왕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타이틀도 그 당찬 의지를 천명하는 <Ciara : The Evolution>, 진화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번 앨범에서는 작사, 작곡은 물론이고 총감독까지 맡는 등 데뷔작에 비해 좀 더 많은 부분에 침투해 적극적인 참여를 보이고 있다.
빌보드 R&B/힙합 차트 7위, 영국 어반 싱글 차트 1위에 빛나는 두 번째 싱글 'Like A Boy'는 차가운 힙합 비트와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Survivor'(2001) 도입부와 비슷한 느낌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신스 스트링 편곡이 인상적인 곡으로 신예 캘보 더 그레이트(Calvo Da Gr8)와 함께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다. 코러스를 청량하게 깔아 더욱 가볍게 다가서는 'My Love', 통통 튀는 비트에 묵직한 키보드 프로그래밍으로 색다른 멋을 낸 'Get In, Fit In' 역시 그녀가 프로듀싱 능력을 한껏 발휘한 곡이다.
시아라의 감각도 발군이지만 이 앨범에는 흑인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프로듀서와 래퍼들이 참여해 그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릴 존이 프로듀싱한 'That's Right'는 마이애미 베이스 특유의 쏘아대는 바운스로 앨범 초반부터 분위기를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하며,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가 프로듀싱하고 피프티 센트(50 Cent)가 랩을 맡은 'Can't Leave' Em Alone'은 가늘게 쪼갠 드럼라인의 반복과 건반 연주로 시아라의 밝은 음성을 잘 받쳐준다. 그와 더불어 'I Found Myself'의 연출을 담당한 댈러스 오스틴(Dallas Austin)은 전자음에 의존하지 않은 반주로 평소 역동적인 인상이 강했던 시아라에게 차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스무 곡이나 되는 방대한 레퍼토리, 수록곡마다 담은 다채로운 스타일은 그녀를 늘 따라다닌, 어쩌면 이후에도 붙을 '크렁크' 꼬리표를 뜯어내기 위함일 것이다. 크렁크가 지닌 강렬한 특성 탓에 자칫 매너리즘의 바다에 입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대중과 매체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물량공세와 함께 이전 색과는 차이 나는 음악으로 승부를 건다. 일견 우둔하게 보여도 간책을 허용하지 않은 그 방법은 정직하게 느껴진다.
앨범 중간 중간에 자리 잡은 간주곡들의 제목처럼 시아라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음악, 춤, 패션의 진화. 다시 말해 개인적인 성장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이는 트렌드세터로서의 도약이고 단순히 어셔(Usher)의 뮤직비디오에 나온 댄서로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다짐이며 요즘의 음악과는 다른 형식을 시도하겠다는 약속일 것이다. 가수에서 아티스트로 변신하려는 뜻이 무척 강건해 보이는 그녀다.
사실 'Goodies'가 마련해 놓은 형상은 너무 단단해서 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 한 곡은 시아라를 '크렁크의 공주', '크렁크의 영부인'이라 호들갑스럽게 떠받들어 주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묶어둘 밧줄이기도 했던 것. 그녀는 본 작품을 통해 자신에게 족쇄가 될 가능성이 있는 요소를 대대적으로 거둬냈다. 집중력 향상 보조기구에서 나올 법한 귀를 찌르는 신시사이저 소리는 이제 잊어도 되겠다. (2007/04 한동윤,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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