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Grae - The Orchestral Files 원고의 나열

여성 래퍼들이 군웅할거 하던 시대가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작금 힙합 신은 여자 랩 스타의 기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제 배우로 더 친숙한 퀸 라티파(Queen Latifah)는 근래 들어 재즈, 어덜트 컨템퍼러리 쪽으로 성향의 전환을 꾀했으니 더는 힙합을 하는 여왕이 아니며, 스튜디오 앨범을 놓고 봤을 때, 로린 힐(Lauryn Hill)은 조금 있으면 은둔 10주년 행사를 열어도 무방할 만큼 생사가 의심되는 휴면기를 갖고 있고, 명 프로듀서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가 발굴한 보석 다 브랫(Da Brat)은 두 장의 앨범 이후 이미 기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주류에서는 그나마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이나 이브(Eve)가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필라델피아의 바하마디아(Bahamadia), 시카고 출신의 삼 원(Psalm One) 같은 뮤지션들이 메인스트림 바깥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저류를 이룰 뿐, 그녀들의 위엄을 승계할 만한 신흥 세력의 부상은 전무하다.

재원(才媛) 부재의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래도 여성 래퍼로서 입지를 다지는 인물 하나를 더 꼽는다면 진 그레이를 언급해야 할 것 같다. 90년대 중반 뉴욕의 로컬 힙합 집단 내추럴 리소스(Natural Resource)의 일원으로서 랩 게임에 발을 들인 이후 탈립 콸리(Talib Kweli), 비트마이너즈(Da Beatminerz), 마스터 에이스(Masta Ace) 등 이름 있는 아티스트와 작업을 해온 그녀는 2002년 데뷔 앨범 <Attack Of The Attacking Things>를 선보이며 솔로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 앨범은 몇몇 평론가들로부터 로린 힐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이후 출시된 최고의 여성 힙합 앨범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진 그레이를 저류의 힙합 신성으로 추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차이는 어느 정도 존재했으나 많은 이가 그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고 스포트라이트는 여전히 그녀를 주목하며 밝은 빛을 쏘아줬다.

세 번째 정규 앨범인 본 작품에서는 부드럽게 랩의 흐름을 주도하는 능력과 자신감 넘치는 노랫말 등 그녀 특유의 지향과 장점을 변함없이 발견할 수 있다. 둔중한 비트 위에 마이너 조로 연주되는 피아노 루프가 힘 있게 다가서는 'Trouble Man'이 앨범의 시작을 알리고 뒤이어 'Soul Clap'(쇼비즈 앤 에이지(Showbiz & A.G.)의 노래와는 전혀 관계없음)이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초반 분위기를 달군다. 이 곡에서는 자신의 염결성을 자랑하는 가사가 눈에 띄는데 “난 94년의 뉴욕을 사랑했어 / 모든 것이 변하기 전 / 나는 오늘날 가장 순수한 사람 / 진은 다른 래퍼들과는 달라”라며 자신을 새천년에 신을 이끄는 혁명적 존재로 포장, 천하제일임을 과시한다. 다소 안하무인격으로 비치기는 하나 그녀 자신도 현재 여성 래퍼들이 힘을 못 내는 상황을 애통하게 느끼는 듯 더욱 자신감 충만한 태도를 드러낸다.

'My Angel Is You'는 앞의 곡들과는 사뭇 다르게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다른 대기를 형성하며, 'The Band'는 랩 배틀에서 사용되는 라임 연출로 마치 대결 현장을 보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이 청각으로 전달된다. 음침한 비트 사이를 가르며 유연한 플로우를 자랑하는 'The Story', 윌리엄 드본(William DeVaughn)의 밀리언셀러 히트곡 'Be Thankful'의 후렴을 차용한 팝 랩 넘버 'It's Alright'도 <The Orchestral Files>를 풍성하고 실하게 만들어 주는 트랙들이라 하겠다.

오버그라운드로 뛰어오르지 못한, 그래서 아직은 언더 신이 어울리는 그녀이기에 가까운 시일 안에 21세기의 솔튼 페파(Salt-N-Pepa), 뉴 밀레니엄의 TLC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리고 전작들보다 조금은 심심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긴 하지만 진 그레이가 뉴욕을 대표하는 여성 래퍼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한동윤)

오이스트리트 2008년 2월호


덧글

  • 양지훈 2008/03/04 22:17 #

    몇 주전 종각의 반디앤루니스에서 친구와 있을 때 이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한솔로님 글이었군요- ^^

    Jean Grae는 진짜 엥간한 남성MC들보다 랩 잘하는 것 같아요. 랩 스킬 비견될만한 여성 랩퍼가 과연 지구상에 몇이나 있을까 의문일 만큼 킹왕짱이란 생각... 싸랑스런 누님~
  • JOY  2008/03/05 10:00 #

    그래도 릴킴은 아직 건재하지 않나요?
    10년쯤 전에 힙합 좋아할때 여자 랩퍼들이 너무 좋아서 다브랫 릴킴 팍시브라운이 저에겐 킹왕짱이었는데..
    요즘은 힙합 음악을 많이 안듣지만 실력이 좋다니 한번 들어봐야겠어요+_+
  • 한솔로 2008/03/08 10:55 #

    양지훈 / 찰떡 아이스 같은 쫀득함이라고 할까요? 주제에 대해서는 약간 아쉬운 감은 있지만 래핑만큼은 정말 베스트에 꼽고 싶을 정도죠~

    JOY / 폭시 브라운 추억의 이름이네요^^ 릴 킴도 요즘 뜸하고...
    글로 소개한 가수 앨범도 한 번 들어보세요~
  • 땅콩 2008/03/10 21:08 #

    바하마디야... 를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에헤라디야가 나와도 될 듯 해요.^^
  • 한솔로 2008/03/12 12:23 #

    그럼 국악 퓨전이거나 판소리 래퍼의 탄생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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