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Deegie) - Insane Deegie 2 원고의 나열

디지라는 이름을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더라도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한 신문사 앞에서 공연을 펼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몇 될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이 당시에 불렀던 노래의 제목은 'J.N.P ('bout The Jotsun Newspaper)'. 역사를 왜곡하며 권력에 충성하는 수구 언론을 비판한 곡으로서 가사는 욕설이 대부분이었다. 다소 격렬했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제공한 그 랩 음악은 20대 청년의 혈기 자체였으며 힙합도 투쟁가로 제창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까지였다.

2001년 갑자기 종적을 감춘 후, 디지는 회사원이 되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먼지 자욱한 세상을 향해 일갈을 퍼부어줄 것만 같던 그가 돌연 사라졌으니 특유의 공격적인 메시지와 거침없는 태도에 반한 팬들의 상심은 상당했을 테다. 그렇게 무소식으로 지낸 세월은 여러 해 계속되었고 어떻게 사는지 그를 향한 관심조차 흐려질 때쯤 컴백을 알리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앨범 타이틀도 <Insane Deegie 2>, 사건 2막의 시작인 셈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수십 보따리는 더 될 사람처럼 격한 언어를 내뱉던 그가 이번에는 국회의원에도 출마한단다. 정말 쌓인 게 많은가 보다. 이런 결심은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게 많고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 욕심에서 나온 듯하니 대한민국 최초의 힙합 폴리테이너 탄생 가능성에 대한 이슈는 잠시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도 될 것 같다. 할 말은 꼭 하겠다는 강직한 태도를 나타낸 만큼 어떻게 중심을 갖고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는가가 현재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80년대, 미국에서는 많은 래퍼가 그들이 하고 싶은 정치, 사회적 주장을 노랫말로 옮겨 대중의 공감을 샀고, 때로는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거나 교화시키기까지 했다. 부당한 인종 차별 철폐, 흑인들의 단합, 여권 신장, 권력층을 향한 비판 등 다양한 주제로 사회의 음지를 조명하는 데 앞장섰다.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리더 척 디(Chuck D)가 랩을 '흑인들의 방송(Black CNN)'이라 칭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반면에 작금 우리나라 힙합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룬 노래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다수의 뮤지션이 오로지 자기만의 이데올로기적 자명성을 전달하며 랩 테크니션으로서의 성장에만 급급하며 기술적 측면만을 과잉 답습하고 있는 듯해 아쉽기만 한 상황. 민중을 위한 철학과 사회를 조망하는 시각 부재의 시대인지라 과거 비판의 날을 세우던 디지의 컴백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앨범 첫머리부터 매서운 주장이 돌출된다. 물가 인상, 자주 바뀌는 교육 정책 등 소시민이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살기 힘든 세상임을 강조하고, 음악은 사회를 바꾸는 힘을 지녔다고 강한 믿음을 내비친다. 낮게 깔리며 비장한 분위기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헬리콥터 소리까지 더해 긴장감을 증가시키는 '연설'은 제목 그대로 연설답다. '프로파간다'는 응집된 분노를 폭발하듯 거센소리를 낸다. “지옥철 만원버스 타본 적은 있냐”며 민생고에 둔감한 정치인들을 꼬집고 “내가 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의 눈과 귀가 될 수 있다”면서 선동에 박차를 가한다. 록의 바탕 위에서 랩을 하지만 도끼의 버스(verse)에서는 힙합 비트로 변화를 줘 분위기를 전환하는 신선한 구성도 돋보인다. 주목되는 부분은 섭섭하게도 이것으로 끝이다.

립스 인코포레이티드(Lipps Inc.)의 1980년 히트곡 'Funkytown'을 샘플링해 가벼운 맛을 곁들이고 친숙함을 확보한 '김디지를 국회로'는 앞에 나온 '프로파간다'와 비슷한 가사 때문에 재미가 뚝 떨어진다. 과격함을 피해 선거 유세 때 사용하기 위해 순화시킨 노래로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힙합 스타일'은 지누션이 예전에 'A-yo'라는 단 한마디로 힙합의 긍정성을 전파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사안일의 흐름을 보인다. 잭슨 파이브(Jackson 5)의 'ABC'를 멜로디로 차용하면서 원곡이 가진 즐거운 분위기를 재연하지만 그 이상의 특징이나 장점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서민들의 어려움마저도 힙합 스타일 하나로 극복하자면서 뭉뚱그리니 앞에서 핏대 세워가며 한 비판과 창도는 의미 없는 외침, 손실을 예비한 갈구로 전락하고 만다.

중반을 지나면서 초반에 드러낸 강성 논조는 사라지고 생활인의 보편적 감성만이 흐르는 것도 안타깝다. 한때 사랑했던 여성을 추억하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1리터의 눈물', 우리에겐 아직 꿈이 있으니 기운 내라며 어깨를 토닥이는 '힘을내요. 김대리님'처럼 인간미를 엿볼 수 있는 노래가 마냥 진부하다거나 유치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설'에서 밝힌 대로라면 그의 음악은 귀로 듣는 투쟁 지침서가 되어야 하며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사회를 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하는 오디오적 길라잡이가 되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첫 곡에서 암시한 것과 다른, 일관되지 않은 태도는 앨범의 색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고 소외받는 계층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몇 배는 더 냉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수록곡 절반 이상이 그런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며 이내 물렁하게 타협하는 쪽으로 기우니 맨 앞에서 무게 잡아가며 한 얘기가 실천 없는 공약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나온다면 결국에는 그의 음악보다는 쓴 술 한 잔과 담배 한 개비를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2008/04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양지훈 2008/04/07 13:18 #

    조만간 꼭 들어봐야겠습니다. 제가 듣기에도 국회의원들의 뻔하디 뻔한 공약에 그친다는 느낌이라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군뇽......

    아, 1집은 고2때 샀었는데 CD장에 여전히 있더군요. 어느덧 힙합계의 마광수란 말만 주구장창 생각나는 음반이 되어버렸습니다... 흐흥;;;
  • 2008/04/07 16:5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낭만여객 2008/04/07 23:17 #

    저는 한곡만 들어본 것 같은데요. 쩝;;;
  • Hue 2008/04/09 14:21 # 삭제

    오늘이 선거날이군요! 디지가 선전할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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