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가 출산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네오 소울의 여제, 에리카 바두가 5년 만에 발표한 신작을 한 줄로 압축한다면 '21세기에 부활한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cksploitation) 사운드트랙'이 될 것이다. 어쩌면 사운드트랙만이 아니라 넓은 시각에서는 영화 자체로도 볼 수 있다. 흑인들의 주의를 끌 만한 이야기를 던지며, 그들 사회의 일면을 스케치하기도 하고 흑인으로서 겪는 자질구레한 일상 등을 끼워 넣는다. 사운드적인 부분에서도 70년대 음악의 질감과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서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대표 음악가라 할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노래를 샘플로 사용하기도 했고 로이 에이어스(Roy Ayers)를 프로듀서로 초빙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현장감과 공간감을 청각적으로 재현하고자 노래가 아닌 다른 음성의 샘플링을 첨부했다. 순식간에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이 달리 드는 게 아니다.
그녀가 그러나 100% 과거로 회귀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새천년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트렌드라 할 전자음 위주의 스페이스드 아웃 스타일을 흡수, 반영함에도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쪽 장르의 떠오르는 작곡, 프로듀싱 팀 사라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Sa-Ra Creative Partners), 재즈, 일렉트로니카 등을 한데 묶은 특유의 하이브리드 힙합 골격으로 유명한 매드립(Madlib)의 이름이 적힌 크레디트를 확인하는 순간, 대충 어떤 사운드스케이프를 탑재했을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웬만한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끝까지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소삽하게 여겨지고 더하게는 불편한 사운드의 도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현재와 과거 문법의 접목은 둘의 중화작용으로 다채로운 취향과 기호를 아우르는 보편적 모양을 세워냈다기보다 한층 난해한 틀을 완성했다. 좋게 말하면 새롭고 신선하다는 표현이 되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거부감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다만, 어디까지나 반복 청취를 통해 호감이 생길 여지는 있다는 걸 전제해 둔다.
원초적 감성이 드러나는 펑크(funk) 형식으로 밀어붙여도 흥겨움과는 거리를 두며 네오 소울과 올드 소울을 적당히 버무려 보컬을 받쳐주는 곡이라고 해도 상식에서 벗어난 코러스 라인이 튀어나와 적잖은 당혹감을 안긴다. 때로는 미니멀한 힙합으로 듣는 이에게 가볍게 다가서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빈 듯한 구성 때문에 탐탁지 않은 건 여전하다. 흑인 음악의 초심자라면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편히 소화할 수 없는 소리 구성을 에리카 바두는 메시지로 극대화하며 보완한다. 단순 감상으로 그치고 말 사랑 얘기만을 담았다면 무질서하게 교미 된 (그러나 충분히 현란한) 반주가 백 번은 더 아까웠을 터, 한 번 쯤은 여유를 두고 생각할 문제의 것을 노랫말의 소재로 삼았기에 비트는 다소 괴벽스러울지라도 차분히 빛을 내게 된다. 직접적으로 특정 사건을 언급하는 언담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과 구체성을 띠지 않은 메타포의 사용은 가사 탐미의 흥미 유발이라는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다.
주술을 부리는 듯한 억양으로 힙합이 종교, 흑인들, 정부보다 거대하며 유일한 치료제라고 반복해 말하는 'The Healer (Hip Hop)', 경찰과 군인 등 국가 권력의 남용을 꼬집는 'Soldier',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서술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밝히고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여정을 밝히는 'Me', 마약 중독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 이의 참담을 전하는 'The Cell',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려운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흑인 빈민층의 외침을 담은 'Twinkle', 2006년 세상을 떠난 동료이자 동포인 제이 딜라(J Dilla)를 추모하는 노래 'Telephone' 등은 흑인 사회 구성원이자 작품의 주인공인 에리카 바두의 이야기인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이 지각, 또는 응감하는 그들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삶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녀는 거듭해서 흑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들춰내고 자칫 잊힐 수 있는 버려진 삶의 조각들을 계속해서 되살려낸다. 에리카 바두는 여기에서 자신만의 소우주를 건설하고 있으며, 그것을 다시금 자기 음악을 청취하는 다수에게 선전하고 각인하려 한다. 당사자들조차 무관심한 집단의 상(相)을 음악을 통해서 조명하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 필름인 셈이다. 이 앨범을 단순히 펑크(funk), 힙합, 네오 소울 등이 집약된 현학 사운드의 실험장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2008/04 한동윤 (www.izm.co.kr)
- 2008/04/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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