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힙합, 네 개의 트렌드 원고의 나열

요즘 빌보드 싱글 차트의 10위권 안에 있는 노래 중 적게는 일곱에서 많게는 아홉에 이르는 곡들이 거의 다 힙합과 R&B로, 순위를 장악하다 못해 싹쓸이하고 있지만 대부분 눈에 띄는 특색이라곤 나타나지 않는다. 단 하나 분명하게 독해할 수 있는 사항은 클럽에서나 환영받을 만한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테를 갖춘 음악뿐이라는 것. 이쯤 되니 새천년 힙합의 흐름과 구체적 형식을 소개한다고 함은 트렌드가 점차 획일화되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기를 쓰고 트렌드를 찾아내는 작업이라고 하는 게 어찌 보면 더 적당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인기 순으로 나열된 차트를 벗어난 새로운 발굴 역시 아니며 일반적으로 간과해오던 권역별 특징이나 저류가 약간 포함될 뿐이다.

그러한 형편을 염두에 두고 색인해 보자면, 퓨전과 짬뽕의 간극을 미묘히 오가는 '그라임',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더티 사우스'의 열기, 주류와는 담을 싼 '얼터너티브 힙합', 아직까지도 구체적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 전자음 기반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이 네 가지를 최근 몇 년 전과 지금의 중심 동향으로 압축해 볼 수 있겠다. 각 형식이 지닌 특성과 꼭 체크해봐야 할 음반들을 중심으로 대충 골격을 그리는 것이기에, 조금 더 관심을 두어 여기에서 서술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가수와 음악을 찾아본다면 점차 구체적인 상(像)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 듯하다.

01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발생한 그라임은 투 스텝과 거라지, 드럼 앤 베이스, 댄스홀 등 공통분모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일렉트로니카의 하위 장르와 갖가지 댄스 음악의 요소를 교배하여 만들어낸 양식이다. 일각에서는 뿌리와 근본이 애매한 '잡종 사운드'를 탄생시켰다며 쓴소리를 퍼붓는 사례 또한 있었으나 음악이, 그리고 장르 이름이 품은 '지저분함'은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도시 청춘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공격적이고 음산하며 어두운 분위기를 발산하는 그라임은 빠른 속도를 보편적 특징으로 한다. 이 장르의 평균 BPM이 130에서 145 사이인 걸 감안한다면 보통 우리가 아는 힙합 카테고리에서는 마이애미 베이스를 제외하곤 상상도 할 수 없는 빠르기이다. 물론, 이것은 대개의 곡이 그렇다는 것이지 100 이하로 떨어지는 곡도 더러 존재한다.

과거 리듬 앤 블루스와 힙합의 융합을 모색한 테디 라일리(Teddy Riley)의 발명품 뉴 잭 스윙 이후 팝 월드에서는 하이브리드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것이 모두다 장르의 굳건한 토착화로 귀결되는 경우는 거의 전무했다. 반면에 그라임은 아직 출생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유아기를 갓 넘겼을 뿐이지만 세력을 갖춰가는 모양새나 속도가 1990년대 중반 그 시절 트립 합의 확산 추이를 보는 것처럼 드세며 하나의 독립 장르로서 확실히 자리를 트는 데 성공했다.

사실 랩을 중점에 두고 음악을 감상하는 힙합 마니아라면 그라임은 색다른 재미를 제공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라임(rhyme) 연출이 빈약하고 래핑 억양이 미국 래퍼들과 비교했을 때 부자연스러운 것이 그 이유. 일렉트로니카 유닛인 엉클(UNKLE)의 멤버이자 유명한 트립 합 전문 레이블 모왁스(Mo' Wax)의 설립자 제임스 레이벨(James Lavelle)은 “미국과 달리 영국의 힙합은 언어적, 시적 기술이 부족하다. 그러나 영국 아이들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강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이야기처럼 그라임 역시 MC의 출중한 기량을 만끽하기에는 모자란 음악이긴 하지만, 타 장르와의 교배를 통한 빼어난 사운드 연출로 단점을 보완, 승부를 본 사례로 꼽기에는 충분하다.

추천 음반
Dizzee Rascal <Maths + English>(2007)

2003년 <Boy In Da Corner>를 발표하며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 롤 딥 크루(Roll Deep Crew)의 멤버 디지 라스칼은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가 “트리키(Tricky) 이후 가장 인상적이고 도발적인 영국 MC”라고 말할 정도로 그라임, 거라지 랩 신을 이끌며 해당 필드에서 영속할 인물로 점지되었다. 대서양 반대편 땅에서는 대중적으로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본 작품 또한 데뷔작과 함께 각종 매체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전 브레이크비트를 재창조해낸 'Pussyole (Oldskool)', 투 스텝 비트 위에 단순한 랩을 얹은 'Flex' 등 여전히 귓가에 앵앵거리며 정신을 혼란시키는 신시사이저와 속도감 넘치게 휘몰아치는 (굉음에 가까운 금속성의) 소리가 일군 난삽함은 그라임의 특성 자체다.

V.A. <Future Sounds Of Hip Hop>(2005)

어떤 장르를 확실하게 또는, 대강이라도 이해하려면 그 형식의 곡들을 엮은 편집 음반을 통으로 듣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랩 스타,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음반의 가장 큰 특징. 발표하는 앨범마다 호평을 받으며 영국 거라지의 중핵으로 자리매김한 스트리츠(The Streets)의 중독성 강한 업 템포 트랙 'Fit But You Know It'과 육중한 비트의 복고 문법과 전자음의 도입이 더욱 신선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축한 디지 라스칼의 히트곡 'Fix Up Look Sharp', 투 스텝과 메인스트림 힙합의 절묘한 만남을 꾀한 'P's And Q's', 다양한 효과음과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반주로 긴장감을 연출하는 그라비떼 제로(Gravite Zero)의 'Hall 9000' 등 브라질리언 펑크, 레게톤 등과 조우하는 힙합의 최신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교과서 격이다.

M.I.A. <Kala>(2007)

처녀작 <Arular>에 이은 시원한 연타석 홈런. 출시되기 이전부터 전 세계 온라인 음악 웹진 내의 토론방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2007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다. 곳곳에서 '올해의 앨범'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평단과 청취자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는 마야의 두 번째 앨범은 정글('Bird Flu'), 네오 디스코('Jimmy'), 라가('XR2') 등 여러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그라임이 지닌 복합성을 잘 살려내는 동시에 다채로운 소리 장치들을 오밀조밀하게 심어놓아 리듬을 더욱 풍성하게 구성, 듣는 재미까지 배가해 21세기에 맞는 얼터너티브 댄스 음악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들었다.

02

작금의 힙합 트렌드를 말할 때 더티 사우스의 광풍을 빼놓을 수 없다. 래퍼 겸 프로듀서 릴 존(Lil Jon)에 의해 전격화된 장르 크렁크를 중심으로 남부 랩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대중 속으로 침투했다. 원 코드 프로그레션으로 대표되는 클럽 친화적인 비트는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이기에 더욱 환영받는 단순함의 미학(?)을 앞세워 선량한 힙합 팬과, 일반 팝 청취자들과 친교를 맺었다.

힙합 음악에서의 기초 작법이 '자르고 붙이기(cut & paste)'라면 최근 남부 랩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팍팍 찍고 뒤틀기(chopped & screwed)'이다. 과도하게 이펙트를 줘서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반복하는가 하면, 내리치듯 찍는 비트 자체에 딜레이를 걸어 타기만만(惰氣滿滿)함이 다분해져 듣기 거북하고 짜증이 날 정도로 느럭느럭하게 곡을 견인한다. 이는 일종의 시굴(試掘)에 불과했지만 이 방식을 이용한 음악의 믹스 테이프가 계속해서 나올 정도로 남부에서는 특화된 스타일로 통한다.

사운드적 돌출점 말고도 유동자산을 과시하고 남존여비 사상에 입각해 마구 쏘아대는 가사는 남부 랩의 특징. 힙합의 태생이 어차피 길거리이기에 학술적이거나 심오해야 할 이유와 의무는 없지만 자신이 가진 돈과 럭셔리한 자동차, 귀금속 자랑을 늘어놓으며 클럽에서 하룻밤 보낼 여자를 탐닉하고 섹스만을 논하는 마초 성향 짙은 노랫말이 전부인 이 장르는 힙합이 낳은 자식 중 가장 저질이었다. 그 때문에 받게 되는 '상업성에만 급급한 가치 없는 음악'이라는 힐난과 질책은 더티 사우스가 사라지지 않는 한 평생 짊어져야 할 업보가 되었다.

근래에는 랩 음악뿐 아니라 R&B에도 그 영향력을 뻗어나가는 상황이며 2007년만도 크라임 몹(Crime Mob), 숍 보이즈(Shop Boyz), 크런치 블랙(Crunchy Black), UGK, 플라이즈(Plies) 등이 발표한 노래들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다. 음악 제작의 인스턴트화, 클럽의 난립, 힙합을 단지 즐기는 음악 정도로만 생각하는 얕은 청취자층의 확산도 남부 랩의 상승세에 풀무질을 해대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쪽 계열의 음악은 부동의 권세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듣지 않아도 될 음반
Rasheeda <Dat Type Of Gurl>(2007)

남부 랩의 진원지, 애틀랜타 출신 래퍼 라시다는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남성 중심의 서던 랩 서클 안에 들어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에너지가 메인스트림에까지 솟구치지는 못했다. 새 음반이지만 지난 앨범 <GA Peach> 수록곡 중 일곱 곡을 다시 우려먹으며 리믹스로 때워 건성으로 제작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클럽에서가 아니면 들을 일이 없을 것 같은 'Doin This', 촙트 앤 스크루드 기법을 사용한 'Give It To Me'와 'Dance Flo', 'Do Yo Thang'은 전형적인 남부 사운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Dem Franchize Boyz <On Top Of Our Game>(2006)

사실 트렌드를 이야기하면서 보조하려는 목적으로 앨범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굳이 뎀 프랜차이즈 보이즈의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흑인 음악 웹진 힙합디엑스(HipHopDX)에서 별표 다섯 개 만점에 하나도 아닌, 반 개를 받은 음반이다). 늦은 새벽에도 클럽 안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을 스냅 사운드를 여전히 버리지 못해 그저 쿵쾅거리기만 할 뿐이며 먹고 즐기는 가사가 노래의 전부다. 남부 랩의 열혈 청취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인들 그 어떤 감동도 느낄 수 없는 졸작이다.

03

음악 스타일의 새로운 방법론 구상을 놓고 보든, 랩을 장식하는 노랫말의 다양화라는 면을 보든 얼터너티브 힙합은 시작부터 센세이션이었다. 기존 랩 음악의 정형화된 작법과 내용을 벗어나 재즈, 레게, 포크 등 다채로운 음원 샘플링에 기반을 두어 색다른 소리의 틀을 구축했으며 갱스터, 하드코어와 팝 랩이 제시하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변했기에 폭넓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대표이자 선배 음악가로는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드 라 소울(De La Soul),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 루츠(The Roots)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샘플링만으로는 또 다른 80년대 힙합 작법의 답습일 뿐이며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음악을 표현하기에는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 후배 뮤지션들은 멤버 모두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팀을 꾸리게 된다.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 대중과의 음악적 교감을 적극적으로 이루겠다는 진일보한 목적의식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주류를 지배하는 경량화된 음악 기호에 대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이쪽 계열의 뮤지션이라고 해도 갱스터 랩의 정서를 이어받아 과격성을 내비치거나 스타빙 아티스트 크루(Starving Artists Crew), 펑키 DL(Funky DL), 스트레인지 프루트 프로젝트(Strange Fruit Project)처럼 샘플링 위주의 작법을 행하는 이들도 다수 된다.

무엇보다도 메인스트림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을 추구하는 최근 얼터너티브 힙합 뮤지션들의 정체성과 지향은 단순한 '그룹'이 아니라 '밴드'에 있으며, 디스포저블 히어로스 오브 힙합프리시(The Disposable Heroes Of Hiphoprisy)처럼 꼭 각종 사회 문제와 이슈를 소재로 하여 자신들의 이념과 정치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각 뮤지션 나름대로 관심사를 설정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데에 내용성의 차이를 선포했다. 여기에 열거한 팀 외에, 멤버 모두 버클리 음대 출신이지만 서부로 거점을 옮겨 활약 중인 크라운 시티 로커스(Crown City Rockers)와 포틀랜드에서 활동해오다 리더 피트 마이저(Pete Miser)의 부재로 미래가 불분명해진 파이브 핑거즈 오브 펑크(Five Fingers Of Funk) 등도 이 장르를 대표하며 암중비약하는 명장들이다.

추천 음반
The 7th Octave <The Se7enth Degree>(2004)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멤버였던 프로페서 그리프(Professor Griff)가 결성한 7인조 밴드. 육중한 헤비메탈 사운드 위에 펼쳐지는 날카롭고 통렬한 사회 비판의 가사로 동부 흑인 커뮤니티와 언더그라운드 신에 강력하게 어필한 이들은 그 기세를 몰아 게토 메탈(ghetto metal)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지평을 열고자 했다. 아쉽게도 수면으로 부상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아직 이들의 활동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기에 앞으로의 행보를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타 리프와 훅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Psychodelix Hlyghost', 폭발하는 힘이 대번에 전달되는 하드코어 넘버 'Pressure', 'Voicez O Te Fst' 등을 통해 청취자들은 세븐스 옥타브가 전하는 메탈 랩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음악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그룹의 출현이었다.

Audible Mainframe <Framework>(2004)

보스턴의 일개 로컬 음악대로 출발했지만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서 현재는 대륙을 넘어 글로벌한 인기를 얻은 오더블 메인프레임은 관악 주자, 키보디스트, 턴테이블리스트 등 7인의 구성원을 둔 대규모 힙합 밴드이다. 기타 스트로크로 파워풀한 훅을 완성하는 'Das Kapital'과 혼 섹션에 비중을 두어 재지(jazzy)한 맛을 더하는 'In The City'는 그룹의 독특한 소리 골격을 청진해 보기에 좋다. 또한, 이들은 작년부터 개최된 보스턴 내의 힙합 문화 전반을 결산하는 Mass Industry Committee Hip Hop Awards에서 '올해의 라이브 그룹'을 수상했으며 팀의 리더인 익스포지션(Exposition)은 '최우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 부문에서 트로피를 거머쥐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5년 소포모어 앨범 <War To Be One> 이후 신보에 대한 소식은 없지만 꾸준히 순회공연을 이어가며 생기 넘치는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는 중이다.

Funktelligence <Earth Tones>(2002)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연주자 넷과 두 명의 MC, 보컬 하나로 구성된 펑크텔리전스는 펑크(funk),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해해 타이트한 그루브로 승화시키며 그것들을 때로는 하나로 엮어 즉흥연주로 풀이하는 것이 매력이다. 수록곡 'Creepin'', 'The Way It Was'가 그러한 구성을 잘 나타낸다. 세븐스 옥타브의 모태가 퍼블릭 에너미인 만큼 정치적인 주장을 펼치며 다소 거친 언어로 메시지를 전파하는 반면에 펑크텔리전스는 '평화', '사랑', '화합'과 '존경'을 주제로 밝고 희망에 찬 가사를 만든다. 2003년에는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리더 스피치(Speech)의 솔로 앨범 <Peechy>에 참여해서 백업 밴드로서 투어 공연을 함께 하기도 했으며 시에서 단독으로 개최하는 음악 시상식에서 매년 '최고의 힙합/어반 앨범' 부문에 후보로 오를 정도로 로컬 신에서는 확실한 입지를 굳혔다.

4th Avenue Jones <HipRockSoul>(2004)

포쓰 애비뉴 존스는 1994년 'Back In The Day'라는 곡으로 빌보드 차트에서 수 주간 상위권에 랭크되며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던 래퍼 아마드 존스(Ahmad Jones)가 결성한 그룹이다. 솔로 활동 이후 생동감이 넘치면서 기존 힙합과는 차별되는 스타일을 모색하던 중 록, 힙합, 소울 모두를 아우르는 지금의 밴드를 구상하게 된다. 보컬에 티나 존스(Tena Jones)와 네네 화이트(NeNe White), 기타리스트 티미 셰익스(Timmy Shakes), 바이올리니스트 게일리 버드(Gaily Bird), 드럼 연주자인 디(Dee)와 베이시스트 팻 알(Phat Al)로 구성된 이들은 특이한 음악성향도 재밌는 요소이지만 가스펠 그룹이라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뒤틀린 일상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의 가사가 헤비한 일렉트릭 기타 리프에 던져지는 'Take Me Away',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인간상을 묘사하면서 권력자에게 관심과 보호를 요구하는 'Caesar' 등 심하게 교리적이지 않은 복음의 설파는 포쓰 애비뉴 존스라는 네임택을 도드라지게 했다.

04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전자기기의 사용이 증가하고 그와 함께 디지털 문법이 널리 확산되는 상황은 음악 작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네오 소울은 그 발현과 기조가 되었던 아날로그 문법을 뒤로한 채 다수의 요구를 접수, MIDI 시퀀싱과 신시사이저가 돌출된 전자음의 향연을 열기 시작했다. 이후 한차례 세포분열을 거쳐 버그즈 인 디 애틱(Bugz In The Attic) 크루와 도무(Domu), 포히어로(4Hero) 등으로 가지를 뻗어 소울풀한 브로큰 비트(Broken Beat)를 성립했고 한쪽에서는 DJ 재지 제프(DJ Jazzy Jeff), DJ 스피나(DJ Spinna)에서부터 하비 린도(Harvey Lindo), 비저니어스(Visioneers)로 이어져 소울적인 느낌과 전자음이 버무려진 힙합을 생산했다.

사실 이 움직임에 있어 제일 중요한 의의를 찾는다면 DJ 혹은 턴테이블 테크니션으로 국한되는 연주자들이 세션 지위를 넘어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신분 상승의 물꼬를 튼 계기라는 데에 있다. 음악적 특징을 놓고 보자면 대개 빈티지 소울과 일렉트로 팝의 성분을 섞은 탓에 앞서 언급한 그라임과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 '짬뽕'의 특징도 갖지만 댄서블한 요소를 철저히 거세한 점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목소리를 빌려주는 래퍼와 보컬리스트의 가수로서 위치와 역할을 고스란히 유지한다는 것도 이 스타일만의 특성이며 때로는 사이키델릭한 대기를 조성해 전자음의 획일적 나열이 될 수도 있었던 약점을 획기적인 형식으로 승화시켰다.

유니섹스(Unisex) 레이블에서 출시한 지역별 네오 소울 컴필레이션 시리즈인 <Detroit Soul : Real Soul Music From The Motor City>, <Atlanta Soul : Soulful Kinship From The Phoenix City>, <London Soul : Soulful Rhyme From The Capital City> 등에서 어김없이 이 스타일의 힙합 곡을 담고 있으며, 대대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형식이지만 이에 매료된 신흥 프로듀서들이 속속 등장해 가시권을 확장하는 중이다.

추천 음반
Harvey Lindo <Kid Gloves (A Modaji Long Player)>(2005)

여느 힙합 음악가들과 크게 다름없이 어려서부터 고전 소울과, 재즈를 들어온 하비 린도는 청소년 시절에는 랩과 전자 음악을 접하면서 DJ의 꿈을 키웠다. 그 역시 일렉트로니카와 네오 소울을 결합해 운치 있는 소리 구조를 건축했으며 수록곡들은 계속해서 몽환적인 흐름으로 능선을 탄다. 미니멀한 비트에 데니스 윌리엄스(Deniece Williams)의 히트곡 'Free'를 샘플로 사용해 고요한 멋을 낸 'The Here And The Now',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광범위한 공간감을 형성하는 'Lifeforce'는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이 체제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Sa-Ra Creative Partners <The Hollywood Recordings>(2007)

사 라의 음악은 난해하다. 난해하다기보다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는 분명 그런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옴매스 키스(Om'Mas Keith), 태즈 아널드(Taz Arnold), 샤피그 후세인(Shafiq Husayn)으로 구성된 R&B/힙합 프로듀싱 유닛은 2005년 <The Second Time Around>를 발표하며 제작자, 음악 감독으로서 신고식을 치렀다. DJ 재지 제프가 선구자로서 이쪽 영역을 어렵게 개척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은 선배의 도움으로 프로듀서로서 얼마 정도 손쉬운 출발을 했다. 흑인 음악의 경계를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상상력을 펼친 세 청년은 소울 근저를 지키면서도 타 장르를 결합해 그로테스크한 수사(修辭)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랩과 보컬, 건반이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Do Me Gurl', 도무지 노래처럼 들리지 않는 'Sweet Sour You' 등을 통해 색다른 구도의 네오 소울, 힙합 형상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상기한 장르들 외에도 베이 에어리어 힙합퍼들의 단독 문화 '하이피(hyphy)', 블록헤드(Blockhead), 오메가 원(Omega One), RJD2 등이 이끄는 '레프트 필드 힙합(left-field hip hop)'과 팀벌랜드(Timbaland)가 개막하고 넵튠스(The Neptunes)가 비슷한 시기에 동참한 마이크로 싱코페이션 기법의 전횡, 스타 프로듀서가 중심이 된 제작 환경 변화 등도 꼭 짚어봐야 할 주요 힙합 트렌드이다. 그러나 이렇게 지역 또는, 언더와 오버를 경계로 두고 발생하는 경향들이 계속해서 또 다른 스타일과 장르를 생산해내고 확산하는 과정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 양식들의 고른 분포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주류 힙합이 클럽튠 위주의 옹색한 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서 힙합 음악과 문화 전반을 평평하고 올곧게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2008/05 한동윤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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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잡지에 들어갈 원고였지만 보판 횡포로 미뤄두게 됐다. 작년 추석 연휴 때 친지 방문도 못하고 이틀 동안 집에 박혀 쓴 글인데 반년도 훨씬 넘은 이제야 세상 빛을 봤구나. 혹 뗀 느낌.


덧글

  • 까칠한데 2008/05/08 15:07 #

    좋아하는 앨범이 듬뿍~ 반갑네요~
  • Run192Km 2008/05/08 19:51 #

    두번째가 요즘 그 부비부비 하는 그런 음악인가요?'ㅁ';;
    듣지 않아도 될 음반에서 뿜었습니다요.
  • tinydova 2008/06/05 04:12 #

    아주좋은 글이네요~잘보고갑니다.
  • 한솔로 2008/06/05 15:50 #

    까칠한데 / 네, 저도 반갑습니다.

    Run192Km / 네, 거의 그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요. 정말 듣지 않아도 되고요.

    tinydova / 오랜만에 찾아주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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