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her - Here I Stand 원고의 나열

가벼운 음악을 해도 어셔가 하면 뭔가 다르다. 셔츠나 펄럭이며 말랑말랑한 댄스 팝 음악을 선보일 때에도 원근각처 수백만 여심을 흔들어 놨고 권세를 누린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던 크렁크 사운드를 들고 나왔을 때에도 장르가 가진 저속함과 말초적 자극성을 말끔히 희석시켰다. 그가 하면 요즘 말로 정말 '있어 보인다'. 수더분한 외모만으로는 상상이 안 갈 빨래판 복근이 그를 좀 팔리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면 날렵한 춤과 위아한 가창력은 까다로운 취향을 지닌 음악팬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기에 충분했다. 뭘 해도 그가 '있어 보이는' 까닭이다.

특유의 존재감은 그러나 앨범 안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깔끔한 무대 매너, 정력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어셔이지만, '보이는 음악'에 능할 뿐, 음반만으로는 여타의 리듬 앤 블루스, 팝 가수와 비교했을 때 특별히 나을 거리는 없다. 청각 신경을 곤두세우게 할 만큼 확 꽂히는 멜로디를 만드는 뛰어난 작곡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거니와 녹음된 보컬에서는 가객으로서의 독자적인 해석력이나 특별한 맛을 느끼기가 불가능하기 때문. '있어 보임'은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생명을 잃는다.

다만, 장점이라면 그의 음악은 대단히 주류 지향적이라서 쉽고 편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이번 역시 어렵지 않다. 재지 페이(Jazze Pha), 윌아이앰(will.i.am),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 브라이언 마이클 콕스(Bryan-Michael Cox) 등 R&B 시장의 파레토 법칙을 증명한 스타 프로듀서들의 참여로 다섯 번째 작품 <Here I Stand>는 제법 거대한 아우라를 갖는 게 사실이지만, 미다스의 손길에만 의존한 채 주는 노래만 받아먹는 듯한 안일함을 보인다. 이렇게까지 많은 명인이 힘을 보태고 있고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공을 이룬 전작들로 안정된 자기 기반까지 구축했으니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것과 판매량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자신했던 모양이다. 물론, 별다른 문제는 없다. 좋지도 않아서 문제다.

그가 얼마나 자만했는지는 첫 싱글 'Love In This Club'이 극명하게 말해준다. 65세 이상의 실버 회원을 모시고 당신들 체력에 맞게 쉬엄쉬엄, 아주 천천히 에어로빅 수업을 진행하는 풍경이 떠오를 만큼 노래는 물쩍지근하다.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 또한 1990년대 초반에나 유행하던 테크노 음악을 세 배는 느리게 해놓은 소리를 내 지루함을 또 한 번 가중시킨다. 찰과상이라도 입을 것만 같은 까칠한 비트, 자극적인 코러스로 점철된 이 음악은 발정한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몸을 부비는 클럽에서만 사랑받을 찬가이지 이 이상의 매력을 지니지 못한다.

게으름은 노래 하나를 사이에 두고 튀어나온다. 'Love In This Club'의 첫 네 마디 선율을 'Trading Places'에서 조(調)만 살짝 바꿔서 사용하고 있어 이게 프로 음악가의 앨범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용된 악기의 음색 탓에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Sweet Dreams'가 떠오르는 'What's Your Name'도 프로듀싱을 맡은 윌아이앰이 최근 지향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자신의 성향이나 어법은 하나도 융합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이 지(Jay-Z)가 참여한 'Best Thing'은 그가 점유한 시간이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어셔가 피처링을 한 것처럼 들리는데, 이는 저메인 듀프리(Jermaine Dupri)와 마뉴엘 실(Manuel Seal)이 제공한 힙합스러운 비트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 어셔는 편식하지 않고 프로듀서들이 주는 대로 '넙죽' 받아먹는다.

받은 게 많아서인지 차린 것도 많다. 그렇지만, 맛있게 먹을 만한 게 없다. 더욱이 리듬 공세 위주의 곡들이 전방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후반으로 향할수록 차분한 분위기의 노래가 이어지는 이유로 전체적인 재미를 조합하고 몰아가는 데에도 부족함을 보이고 만다. 뭔가 다른 모습, 있어 보이는 음악을 듣기에는 무대에 올라가 있는 어셔를 보는 수밖에 없다. 그는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스테이지에 서지 못할 날도 언젠가는 올 테니.

2008/06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양지훈 2008/06/15 22:06 #

    맹렬한 비판이군요... ^^ 다음주 안에 꼭 들어봐야겠습니다.

    아 어셔 신작 나름 기대했는데;;; 허헛~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