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반가운 전화 불특정 단상

오랫동안 연락을 못하고 지내던 지인의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참 좋다. 그래도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해 준 것에 대한 감사함과 모처럼 목소리를 접하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반가움 때문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속물 근성으로 여성의 전화를 더욱 환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남성의 전화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주변엔 남동생들이 거의 전부다. 어쨌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버튼 몇 번 누르면 이렇게 당장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는데, 왜 내가 먼저 연락하지 못했을까 하는 소규모의 죄책감이 가슴 속에서 자리를 튼다.

한 후배가 일요일로 넘어가는 이른 새벽녘에 전화를 했다. 3시가 다된 시간이라 자고 있을 것 같았지만, 술 먹고 집에 가는 길에 비도 추적추적 오고 해서 불현듯 생각이 났다 말했다. 다행히 나도 자고 있던 중은 아니었고 술자리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통화를 길게 할 수는 없었던 터라 전화를 하겠다고 한 후 어제 저녁에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속개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요?", "살은 많이 쪘어요?", "애인은 생겼고요?" 등등 아주 평범한 질문이 날아왔다. 그래도 3년 이상 얼굴을 못 보고 생활해서인지 하루 걸러 하루 보는 사람이 물어봤더라면 침묵으로 일관했을 내용에 대해 톤까지 높여가며 응답을 했다. 대답은 다 '예전과 동일함'에서 한 치도 비껴가지 않는 것이었지만. 다음으로는 그 후배의 넋두리가 이어졌다. "형, 일하는 데가 맘에 안 들어요. 돈도 별로 안 주면서 늦게까지 잡아놓고.", "다시 공부를 할까 봐요." 그 또한 예전에 통화를 할 때 들었던 문젯거리와 달라진 건 없었다.

몇 분을 통화한 후에는 항상 고정 멘트가 이어진다. "우리 언제 봐야 하는데 말야..." 집도 가까운데 저번에 한번 약속이 틀어진 이후로 좀처럼 짬을 내지 못했다. 그 친구도 퇴근 시간이 대중없어서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했다. 그래도 다다음주 중에는 꼭 얼굴을 보자고 하며 대충 날짜를 박아놓았다. 후배는 맥주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체질, 워낙 음주를 못해서 술 먹는 재미는 많이 떨어지겠지만.

전화를 끊기 전 이 말에 폭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얼마 후 찾아온 건 알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형한테 인생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내가 무슨 잘난 게 있다고 상담을 하냐?"라고 되물었다. 그리곤 순박한 말투에 담은 핵폭탄이 내 머릿속을 토벌하고 지나갔다. "형이 그래도 인생의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으니까 뭔가 위안이 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칭찬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이게 또 나의 장점인지도 모르지. 본능은 그 말을, 이와 유사한 말이라도 힘껏 밀어낼 힘이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래, 나도 인정~


하지만, 나중에 만나면

'일단 때리고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담이고...

그래도 고마움은 그대로다. 이렇게라도 생각하고 날 찾아주는 게 어디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힘들어 하는 이에게 위안이 된다면 땅바닥보다 낮은 천민이 되어도 행복하다. 확정은 안 되었더라도 만남을 약속하니 반가움 또한 크다. 그동안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한 만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지인들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매번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건 어렵지 않은데, 언제 봐도 친근감 넘치고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전화 한 통이면 반은 달성하는 일인데, 항상 그렇지 못함을.

덧글

  • 플라멩코핑크 2008/06/30 20:14 #

    상대방도 마찬가지일거예요. 꼭 해결책이나 방법을 찾아야하나요.
    진심으로 들어주는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좋은 일이지요.
    또 그 상대에게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할지도~
  • 슈3花 2008/06/30 21:22 #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멀어진 지인들이 있습니다. 한솔로님 말씀대로 전화 한 통이면 반은 다가가는 건데 말이죠. 내일은 연락 안했던 친구에게 전화나 한 통 넣어봐야겠어요.
  • 양지훈 2008/06/30 21:45 #

    저도 이렇게 연락 되는 친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일단 다 반갑긴 해요.

    그리고 열에 아홉은 다 사내자식녀석들이라 이성이란 기대를 아예 안 함..;
  • 낭만여객 2008/06/30 23:54 #

    저도 상담전문입니다 ㅎㅎ 저 같은 경우 요즘은 여동생들이 주로 상담하는데,. 내가 남자로 안보여서 그런다나-_-;;;;
  • 지소낭자 2008/07/01 09:24 #

    가끔 생각도 안 했는데 연락이 오면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요...잊지 않고 있어준다는게 참 고맙고 말입니다.
    전 주변의 2/3가 남자인데 이놈들이 자기 여친 자랑 해대는게 패주고 싶은 기분이 자주 듭니다.....OTL
  • 한솔로 2008/07/01 14:56 #

    플라멩코핑크 /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겠어요.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으로도 스트레스가 약간은 해소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느 정도의 믿음도 작용해야 하는 것 같고... 이거 뿌듯한 일이네요 :)

    슈3花 / 저는 네이트온에 매일 접속하는 걸 보면서도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의외의 소심함이 있어서 일까요? 소원해진 친구분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

    양지훈 / 그래요. (아주 쪼오금~ 남녀의 차이를 적용하지만) 남녀 모두 반갑죠. 이성 친구, 선후배랑 자주 연락을 해놓을 걸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_ㅠ

    낭만여객 / 그만큼 낭만여객 님이 편하다는 의미겠죠? 부럽네요. 밀린 민원은 저에게 밀어주세요. (여성에 한해서~!!) 크하핫;;

    지소낭자 / 그러게요~ 저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더 반갑게 느껴지나 봐요. 금덩어리보다는 고민덩어리를 풀어놓긴 하지만요;
    그럴 땐 여친을 패세요. 자랑거리가 없어지니까요. 뭐든 근원을 처리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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