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hanna, 풍성한 감정,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온 준비된 R&B 여왕 원고의 나열

외국의 처자에게 우리나라 속담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리아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는 게 어울릴 듯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고. 원래 스타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 끼를 억누르기가 어려운가 보다. 리아나는 그녀가 다니던 컴버미어 중학교의 반 친구들과 장난삼아 3인조 보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학교 축제와 함께 열린 미인 선발 대회에서 1위에 뽑히기도 했는데 그때 부른 노래가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Hero'였다고. 그렇게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그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데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친구의 공이 컸다. 그의 주선으로 보이존(Boyzone), 루벤 스터다드(Ruben Studdard),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등의 음반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에반 로저스(Evan Rogers)를 만나게 된 리아나는 이후 그녀의 노래 실력에 반한 에반과 그의 파트너 칼 스터큰(Carl Sturken)의 후원을 입어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고, 마침내 이것이 제이 지(Jay-Z)의 귀에 들어가 메인스트림 힙합의 요충지 데프 잼(Def Jam)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된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순식간에 데프 잼의 신데렐라가 된 리아나는 2005년, 전 세계적으로 2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데뷔 앨범 <Music Of The Sun>을 발표했고 그녀의 보컬 모델이기도 한 머라이어 캐리의 'We Belong Together'와 경합을 벌인 첫 싱글 'Pon De Replay'를 3주 동아 2위에 랭크시켰다. 두 번째 싱글 'If It's Lovin' That You Want'는 앞서 나온 'Pon De Replay' 만큼의 장대한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영국과 캐나다, 멀리 필리핀에서까지 큰 사랑을 받으며 그녀의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큰 지지가 되었다. 이외에 'That La, La, La'와 'Rush', 일본에서만 비공식적으로 공개된 'Let Me' 등의 다양한 업 비트 댄스홀 뮤직을 선보인 리아나의 데뷔작은 그녀에게 '댄스홀의 여왕'이라는 아깝지 않은 수식을 붙여줬다. 여성 댄스홀 뮤지션을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기에 그러한 별명이 타이밍을 제대로 맞춘 것이었을지는 몰라도 단순히 팝 댄스, 섬나라의 정취를 나타내는 레게 가수로 리아나를 정의할 수는 없었다. 대중에게 어필한 것은 경쾌한 음악이었지만 그녀는 비욘세(Beyonce)나 알리샤 키스(Alicia Keys)의 노래를 힘들지 않게 소화할 정도로 디바형의 보컬 실력까지 갖춘 준비된 재목이었던 것. 그녀의 스타성을 애초에 알아본 제이 지도 어쩌면 성장 가능성 이전에 탄탄한 기본기에 반했던 것이 아닐까? 데프 잼이 앨범을 제작한다는 의미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 어린 소녀가 원 히트 원더는 기본적으로 넘을 인물이 될 것이라는 명백한 계산에 기반을 둔 것이리라.

“제 삶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일 년 동안 마치 다섯 살은 먹은 것 같은 느낌 있죠.”라며 신이 나서 지난날을 술회하는 리아나는 데뷔한 해에 대선배인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의 투어 공연을 함께 하며 화려하게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녀의 농담 섞인 말도 고지 고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누구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냈기에 보통의 사춘기 소녀가 겪어야 할 일들과는 멀게 지낸 지난 시간은 친구들과는 또 다른 성장의 여로를 이어가는 힘들고 외로운 걸음이었다.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 모두를 바베이도스에 남기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왔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곁에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은 두려움과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은 리아나에게 헌신과 책임감을 가르쳤으며 그것이 그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줬다. 5시가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안무와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학교 공부, 리허설, 인터뷰에 비디오 촬영까지… 눈 깜짝할 새에 하루를 다 보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매력적인 일인 것 같지만 그건 스타가 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현실이었다.

앨범을 준비하고 활동한 과거 몇 년을 고독하게 보냈던 탓에 다음 음반을 녹음하던 시기 리아나는 자기 나이 또래의 누군가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절절 끓었다는 표현이 이럴 때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람들은 우리가 어리기 때문에 생각이 복잡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우리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언니들과 마찬가지로 생활과 사랑, 시련의 아픔을 똑같은 방식으로 겪어요.” 인터뷰를 통해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한 이제 막 18살이 된 그녀는 소포모어 앨범 <A Girl Like Me>에 젊은 여성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여러 사연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결심한다. 글로리아 존스(Gloria Jones)의 원곡을 영국 신스 팝 그룹 소프트 셀(Soft Cell)이 1981년에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 버전으로 재해석한 'Tainted Love'를 샘플링 한 타이틀곡 'S.O.S.'는 한 소녀가 사랑에 빠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된 심적 상태가 또래 가수인 리아나를 통해 충분히 반영되어 젊은이들의 사랑을 표현하는 활기 넘치는 찬가로까지 인정받기에 이른다. 어디 그뿐인가? '댄스홀의 여왕'이라는 호칭은 유효했다. 아니, 이번 기회에 승부를 냈다고 하는 게 적당한 표현인지도… 록과 레게리듬의 혼합으로 더욱 진드근하고 최면성 짙은 베이스라인을 뽑아낸 'Kisses Don't Lie'가 중심에서 섬나라 소녀의 위용을 유지했다면 레이블 동료 니요(Ne-Yo)와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듀싱 팀이 공동으로 작곡한 'Unfaithful'은 아티스트로서의 발전하는 모습을 드러낸 트랙이 되었을 것이다. 리듬 앤 블루스와 레게에 뿌리를 둔 그녀의 이전 작품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이 노래는 비록 콧소리의 장막을 두껍게 친 탓에 순도 100%의 보컬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리아나가 댄스 음악, 비주얼 적인 면만 부각되는 가수는 아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에 하나 더, 2006년은 영화 <Bring It On : All Or Nothing>과 멜로드라마 <All My Children>, TV 시리즈 <Las Vegas>에 조연으로 캐스팅되며 연기자로서 스크린과 브라운관 데뷔까지 함께 이룬 뜻 깊은 해였다.

6월 초 발매를 앞둔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Good Girl Gone Bad>는 그녀가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지 팬들과 평단의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지난 3월 라디오 전파를 타고 출현을 알린 첫 싱글 'Umbrella' 말고는 딱히 신보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궁금증이 더 가중되는 시점에 공개된 화려한 참여진은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기에 충분하다. 스콧 스토치(Scott Storch), 팀버랜드(Timbaland),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윌아이엠(will.i.am), 션 가렛(Sean Garrett) 등 현재 주류 흑인 음악계를 주름잡는 작곡가, 프로듀서들이 총집합했다. 반항기 있어 보이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리아나의 성장을 슬며시 알려주는 힌트처럼 보인다. '착한 소녀가 나빠졌다'라는 말은 아이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좀 더 거칠고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는 아닐까? 아론 홀(Aaron Hall) , 블루 캔트럴(Blu Cantrell), 타이리스(Tyrese) 등 유명 R&B 가수들의 음악을 제작한 크리스토퍼 스튜어트(Christopher Stewart)가 프로듀싱하고 제이 지가 랩 파트를 맡은 'Umbrella'는 강하게 내리찍는 심벌즈와 오밀조밀하게 박힌 신시사이저의 융화가 미래지향적인 힙합 사운드를 완성해 세련되게 다가선다. 레게 스타일의 보컬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부분마다 R&B 창법의 요소를 첨부해 변화를 꾀한 노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이 곡의 뮤직비디오인데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로 언급하기도 한 마돈나(Madonna)를 향한 오마주가 담겨 있는 듯하다. 'Umbrella'의 뮤직비디오 중 은빛으로 바디페인팅을 하고 희한한 포즈를 취하는 씬은 리틀 윌리 존(Little Willie John)의 노래를 커버한 'Fever'의 뮤직비디오에서, 코르셋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은 1986년 발표한 'Open Your Heart'에서 따로따로 가져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흡사하다. 또한, 이 노래는 여성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싱글 차트에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의 'Crazy', 미카(Mika)의 'Grace Kelly'에 이어 실질적인 음반 발매 없이 다운로드 판매로만 1위에 등극하는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아직 스무 살이 채 안 된 어린 나이임에도 댄스홀뿐만 아니라 컨템퍼러리 R&B, 힙합에 이르기까지 어떤 음악에든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을 맞출 줄 아는 그이기에 새 앨범에서 리아나의 광활한 음악적 재능이 어떻게 발휘될지 더욱 고대된다. 이제는 '댄스홀의 여왕'에서 'R&B의 여왕'으로 별명을 교체해야 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다.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2007년 6월호 오이스트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