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누리 흑인 음악 동호회 SNP 시절부터 치자면 비솝(b-soap)도 힙합 신에서 10년을 지낸 인물이다. 크루시픽스 크릭(Krucifix Kricc)의 '오늘은', 'Fantasy Rider' 등과 마스터플랜의 컴필레이션 시리즈인 <MP Hip Hop 2002 風流 Part. 1> 수록곡 중 '10월 18일 날씨 : 흐림', 타프카 부다(Tafka Buddah)의 'Reflex', 최근에는 소울맨 앤 마이노스(Soulman & Minos)의 'Sad Movie'와 그가 속한 크루 오버클래스(Overclass)의 <Collage 1>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작업을 수행해온 그이지만 이번이 첫 정규 작품이다. 공식적인 데뷔 앨범인 셈이다.
본인도 그 긴 기다림에 어느 정도는 지쳤을 테고, 자의든 타의든 오랜 지속되는 이 침묵 아닌 침묵을 깨고 싶었을 것이다. 8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열아홉이나 되는 방대한 수록곡이 이를 방증한다. '흑인들은 할 말이 많기 때문에 향후 십 수 년이 지나도 랩 음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항간의 유랑꾼 같던 우스갯소리에 이내 수긍이 될 정도로 작정이라고 한 듯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마련해 두고 있다. 그동안 겪은 개인적인 고민과 생활, 혹은 힙합을 하는 음악가로서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나 기억들을 펼쳐서 듣는 이의 정서와 관심사를 공략한다.
나지막한 톤으로 조곤조곤 랩을 전개하는 스타일에 신경 쓴 듯 반주도 무턱대고 강한 음악보다는 적정한 세기로 그 음성과 억양에 호흡을 맞춘다. 드럼 프로그래밍도 'Nighthawks' 같은 곡에서는 다소 투박하거나 깔깔한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그리 튀지 않아 사뿐하게 다가선다. 이렇게 꾸민 드럼의 태에 걸맞게 첨가된 다른 악기들도 차분한 멋을 내는 데에 동참한다. 자상을 입힐 듯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트렌디한 신시사이저 연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몇 마디 반복되는 건반 연주라든가 기타 리프, 또는 뜨문뜨문 나타나는 관악기로 소곳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직조한다. 기계적인 맛은 덜해 확실히 화순하다.
음악적 틀은 정적임에 반해 앨범 전체의 구성은 일면 어지럽다.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언송하고, 다가올 날에 대해 기대하는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옛날과 지금을 오가는 적바림은 직렬로 늘어서지 않은 데다가 하나하나의 노랫말이 지닌 감성 또한 다 다를 수밖에 없기에 개별 소재와 내용을 크게 묶어줄 수 있는 게 필요한데 특별한 무엇이 없어 산란하다. 색조 단위로 본다면 때로는 어둡게, 때로는 밝은 노래들이 통일성 없이 흩어져 있고, 사랑 얘기를 한다든지, 어떤 장소나 시간을 스케치하며 이미지를 강조한다든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등의 내용 또한 중복되는 것이 있어 약간은 번잡하게 다가선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훅에 익숙한 청취자들에게 그와는 정반대의 모양을 띠는 비솝의 엷고 온화한 래핑으로 꾸민 그것은 단어 그대로 갈고리처럼 귀를 재빠르게 낚아채고 각각의 버스(verse)를 시원하게 연결시켜 주는 역할에는 미처 힘을 못 쓰는 실정이다. 작품의 총체에 복류하는 차분함이 여기에 와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 발산보다는 도리어 듣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반작용으로서 기능한다. 멜로디를 입힌다든지 'Nighthawks'나 'Pack Light'처럼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객을 들여 맡겼더라면 평이하지 않은 흐름이 되었을 것, 변화로써 흥미를 유발하는 볼록한 등마루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동안 축적해 두었던 상념과 체험들을 풀어내는 작업이 개인적인 의미에서 소기의 성과가 되겠지만, 반주나 가사에서 청취 욕구를 상승하게끔 만드는 자극이 부족해 한편으로는 지지부진하다. '유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미'를 품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그러나 감각보다는 감성이 도드라진 노랫말, 그것으로 만들어내는 듣는 이들 간의 정서 공유는 은은하게 지속된다. 앨범이 내세우는 가장 강한 경쟁력이다.
2008/09 한동윤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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