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 Sean - My Own Way 원고의 나열

하루에도 수많은 가수들이 뜨고 지고를 반복하는 팝 음악 신에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란 절대 녹록지가 않다. 총과 포탄만 없을 뿐,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각축장,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이들 사이에서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각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작곡, 프로듀싱 능력이 출중하다거나, 악기 연주에 천재성을 보인다거나,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노래 실력 정도는 지녀야 이 살벌한 무경계의 전지(戰地)에서 승승하고 장구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또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특한 어법으로 음악팬들의 귀를 단숨에 사로잡는 경우도 많다.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미묘한 음색, 그와 더불어 래핑과 노래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보컬 기술을 자랑하는 넬리(Nelly), 리듬 앤 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부드러움과 힙합의 공격적인 면이 공존하는 에이콘(Akon), 레게 스타일의 자유분방하고 속도감 있는 래핑으로 1990년대 힙합 역사에 이름 석 자를 돋을새김한 스노우(Snow) 등이 그러한 뮤지션일 테다. 현재 활동 여부를 떠나서 이들의 존재감은 언제 어디에서든 분명히 나타난다.

유니크한 양식으로 음악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 인물 중 남북아메리카 대륙 출신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R&B 보컬리스트 제이 숀(Jay Sean) 또한 그쪽 카테고리에 넣어도 될 만큼 유별난 보컬 표현으로 짧은 기간 동안 입지를 확고히 다진 음악가 중 하나다. 남아시아 미국인, 영국인들이 ‘양쪽 문화에 걸쳐 있다’는 의미의 '데시(Desi)'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시 비트'는 그의 음악을 규정해 주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주류 힙합에 적을 둔 매끈한 비트와 호소력 짙은 리듬 앤 블루스 보컬,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래핑으로 서양 음악의 요소를 구축하는 동시에, 선율과 리듬이 맛깔스럽게 화친하는 뱅그라(bhangra, 펀자브의 민속 음악과 팝 음악을 융합한 춤곡)풍의 반주로 아시아 국가의 정취를 배합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시타르 같은 현악기나 전통 타악기가 사용되기도 한다) 게다가 직접 노래를 만드는 송라이터로서의 재능도 구비한 터라 벌써 영국 흑인 음악의 유망주로 자리 잡고 있다.

카마르지트 싱 추티(Kamaljit Singh Jhooti)가 본명인 제이 숀은 영국계 아시아 혼혈이라는 이유로도 자국 음악계에서 더 눈에 띈다. 그는 사실 가수에 대한 꿈이 확고하지 않았다. 의사가 되고자 바츠 치의대(Barts School Of Medicine And Dentistry)에 진학했으나 재학 시절 짬을 내 녹음한 'One Minute'(후에 데뷔 앨범에 수록됨)의 테이프가 친구를 통해서 프로듀서인 리시 리치(Rishi Rich)에게 전해졌고, 노래를 들은 그가 자신의 스튜디오에 와서 노래를 불러볼 것을 권유했다. 경험쯤으로 생각한 제이는 망설임 없이 응했고 리시 리치가 속해 있는 투포인트나인 레코드사(2Point9 Records)를 찾아가 테스트를 받게 된다. 그의 실력을 단번에 알아본 리시는 곧장 앨범을 제작할 것을 제안했고, 제이 또한 공부를 잠시 그만두는 결정까지 내리며 펀자비 가수인 저기 디(Juggy D)와 함께 녹음에 착수한다.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03년, 리시 리치, 저기 디와 합작한 'Dance With You (Nachna Tere Naal)'가 영국 싱글 차트 12위에 오르며 성공을 맛본 제이는 이에 탄력받아 더욱 발 빠르게, 그리고 자유롭게 정규 앨범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11월 공개한 데뷔작 <Me Against Myself>에서 커트된 'Stolen'과 'Eyes On You'가 각각 4위와 6위를 기록하면서 무려 세 곡이나 영국 차트 20위권 안에 안착시키는 획기적인 약진을 이룬다. 흑인 음악과 전통 인도 음악의 색채를 겸비한 새뜻한 사운드 골격은 대중성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에게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인도에서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며 2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수록곡 중 'One Night (Dil Mera)'는 싱글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볼리우드 영화 <How Cool Are We (원제 : Kyaa Kool Hai Hum)>에 삽입되어 영화 팬들로부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한 특유의 퓨전 양식이 이번 앨범 들어서는 한결 고르게, 보다 안정적으로 나타난다. 얼핏 들으면 마치 니요(Ne-Yo)의 음악을 마주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미국 메인스트림 리듬 앤 블루스의 경량화된 틀에 맞춰 매끈한 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며, 과하지 않은 빠르기와 적당한 바운스감을 유지해 춤추기에 좋은 비트를 구축했다. 처녀작과 비교한다면 많이 달라졌다는 판단이 선다. 2008년 1월 공개된 첫 싱글 'Ride It'가 제이 숀의 기존 스타일과 변화된 모습이 잘 드러나는 곡, 래핑과 싱잉(singing)을 오가는 편안한 보컬과 동양적인 멜로디 루프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싱글 차트 11위로 데뷔한 이 노래는 또한, 영국 아시안 뮤직 어워드(UK Asian Music Awards)에서 '최우수 비디오 부문'의 트로피를 그에게 안겨줌으로써 3년 동안의 다소 긴 공백이 어떤 걸림돌도 되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뒤이어 나오는 'Maybe'는 미디엄 템포의 반주에 맞춰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노래로 인해 '니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키드 데이트나(The Kid Daytona)의 랩 피처링으로 무게 있게 들리는 'I Won't Tell', 탄력적인 드럼 프로그래밍 위에 첨부한 신시사이저와 보컬 편집으로 야릇한 기운을 품은 'Runaway'가 깔끔한 편곡으로 세련미를 획득하는가 하면, 'Stuck In The Middle'과 'All Or Nothing'으로는 팝 보컬리스트로서 감정을 잘 녹여내는, 때로는 스트레이트한 창법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음을 자랑해 보인다. 모델 겸 가수 타라 프라샤드(Thara Prashad)와 제이의 맑은 음색이 청량감을 살리는 'Murder'와 보드랍게 나풀거리는 기타 연주와 따라 부르기 좋은 코러스가 돋보이는 'Easy As 1, 2, 3'가 앨범의 후반부에 위치해 앨범 초입의 선명함과 깔끔함을 끝까지 담보한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사랑 노래나 댄스 음악에만 천착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는 하나의 곡에 지금까지 겪었던 삶과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주장을 압축해 놓았다. “나는 내 어머니의 피부를 가졌고, 아버지의 눈동자를 가졌어요. 그건 부정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숨기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라는 자기 술회적인 가사로 시작하는 'Good Enough'에서는 혼혈인으로서 받아야만 했던 편견과 그로 인한 아픔을 끄집어낸다. 제이도 힙합이 좋아서 열한 살 때부터 랩을 했지만, 인도 사람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 힙합 신에 들어서는 데에 걸림돌이 되었고, 결국 리듬 앤 블루스로 음악적 지향을 옮기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외모만 보고 너무도 빨리 판단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보내는 원망이 아니라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기에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이와 같은 숙고와 고민 서린 노랫말을 읽자니 제이 숀이 부쩍 성숙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집과 지금의 앨범 재킷이나 음악을 비교해보면 그 변화는 어느 정도 뚜렷하다. 캐주얼 복장에서 넥타이를 올려 맨 정장 차림으로, 업 비트가 주를 이뤘던 전작에 비해 지금은 차분한 컨템퍼러리 R&B 또는 팝 지향적인 양식으로 사운드에서도 조금은 어른스럽게 옷을 갈아입었기에 그러한 단안이 나온다. 그러나 곳곳에서 전과 동일하게 그만의 데시 비트가 춤을 추며 청취자를 안내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지난번보다 유순해졌을 뿐, 뱅그라와 흑인 음악의 독자적이고 진기한 조합이 이뤄낸 음악들은 여전히 흥겹고 반들반들하다. 제이 숀을 만나는 순간은 영국을 대표할 리듬 앤 블루스 싱어의 또 다른 발견이 될 것이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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