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2002년까지 출시된 일곱 장의 힙합 컴필레이션 <대한민국>은 뮤지션이나 팬들에게나, 우리나라 힙합의 역사 면에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임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기획물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2000년대에 이르러 만개한 힙합 문화의 음악적인 부분이 대중가요 안에서 얼마만큼의 자리를 차지했는지 조명하는 사례였으며, 동시에 스컬(Skul1), 허니 패밀리(Honey Family), 후니 훈, 태완(C-Luv) 등 현시대 흑인 음악 신의 거목으로 자리 매김한 아티스트들의 훈육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작금의 힙합 열기를 이끈 불씨이자 인정받는 뮤지션이 되는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앨범들은 그러나 항상 긍정적인 성과만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영미권이 아닌 아시아 대륙의 작은 반도 국가에서 흑인 음악 카테고리에 속한 뮤지션들의 결속을 이뤄내 이 땅에서도 힙합 문화가 대대적으로 움트고 있음을 천명했지만, 과열된 인기와 수익에 맛 들린 제작자들로부터 생겨난 분열, 거기에 따른 미진한 작품성으로 인해 몇 해 안 되는 기간에 명과 암을 확실히 드러낸 것이 첫째. 부피는 비대해졌으나 참여한 인원들 대부분이 본토의 것을 모방, 답습하기에 바쁜 나머지 랩 스킬과 비트 메이킹 부분에만 국한되는 실력 발휘의 각축장으로만 전락한 것이 두 번째 아쉬움이었다. 가파른 비약은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는 미완의 시약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6년 만에 다시 태어나는 이 시리즈가 과연 지금에 와서 지난날의 몇몇 안 좋았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에 어떠한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명색이 국호를 쓴 작품인데 한국적인 무언가를 곧추세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이는 우려에 더 가까울 듯하다.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생산되는 음악들이 대중과의 접점을 구축하기 위해서 클럽 튠으로 외형을 꾸미는 시점에서 이 음반 역시 그동안 잊혀 지내야 했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많은 이에게 간청할 수 있도록 무겁지 않은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기에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앨범은 그 걱정을 격정적으로 부응한다. 유행만 받아들였을 뿐 다른 눈여겨볼 내용이라곤 전무하다. 앨범 제작을 주도한 보컬리스트 유리의 지향과 기호가 반영될 수밖에 없겠지만, 지나치게 주류의 소리 골격에 경도돼서 다른 틀에는 아예 방만한 상태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변화 없이 똑같은 톤으로 평행을 긋는다. 57분에 달하는 총 러닝타임 중 50분 정도는 한국말로 듣는 클럽 디제이들의 세트 리스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일어나 대한민국'만이 록과 결합한 반주를 타 조금 달라 보이지만 나머지 노래는 다들 엇비슷하게 댄서블한 바운스를 지녀 서로를 '형님~', '아우~'라고 부를 형국이다. 아드레날린을 생성만을 목적에 두고 즐기기엔 적격이나 들으면 들을수록 허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MC들의 현란한 래핑을 감상할 장소가 되지도 않는다. 업타운(Uptown)의 스티브, 거리의 시인들 멤버 노현태, 사이드비(Side-B)의 테이크(T'ache, 임희택) 등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래퍼들이나 가끔 디지털 싱글로 팬들에게 생존의 소식을 안기긴 했어도 그것이 그리 주목받지는 못했던 이들의 참여로 얼마간은 환영하겠지만, 하나씩 접해보면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다. 나찰과 메타가 래핑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 색다른 맛을 제공하는 '로망' 외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다. 유리 또한 리듬 앤 블루스 가수라는 타이틀을 살리지 못한 채 특징 없고 감동 없는 노래로 면면을 메운다. 가사마저도 여기에 널린 업 비트 반주에 착색된 나머지 남녀 간의 애정이나 관념적이고 자존적인 이야기로만 일관해 재미를 떨어뜨린다.
'2008'이라는 연도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바로 대표성이다. 시대를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때 주로 이런 제목을 쓴다. 하지만, 앨범은 우리나라 힙합 전체를 묶어 대변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회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현상을 보여줘야 시대성을 나타내는 것일진대, 작품은 시대가 아닌 시류만을 담는 데에 급급했다. 2008년에 환생한 이 편집 음반은 과거 작품들이 지닌 조금의 성과도 제대로 살리지 못할뿐더러 제호를 납득할 수 있는 내질의 구축에도 실패했다. 차라리 <2008년에 내는 대한민국 클럽 힙합 모음집>이라고 명명하는 편이 더 정확했겠다.
2008/11 한동윤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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