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Big Bang) - Remember 원고의 나열

플레이한지 몇 초도 안 되어 체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며 자연스럽게 고갯장단을 짓게 하는 댄스 음악이 있는가 하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분을 들뜨게 하거나 감흥을 제공하지 못하는 곡도 있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일면 당연하게도 빅뱅의 음악은 후자에 속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이런 이야기가 될 듯하다. 건조한 드럼 루프와 건반 하나, 혹은 다른 단출한 편성으로 흥을 유발하고 열을 지피는 작품과는 달리 빅뱅은 있는 힘껏 부풀린 볼륨감을 동반한 거친 전자음으로 도입부부터 저돌성을 보이지만, 그다지 경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편이라는 것이다. 과장과 작위가 서로 부둥켜안고 열띠게 호흡할 뿐, 근사한 댄스 음악이 갖는 천연의 멋은 느껴지지 않는다.

YG 엔터테인먼트의 뛰어난 음악 감독이라 할 용감한 형제나 테디와 쿠시, 빅뱅의 프로듀서 지드래곤이 한 번 대중에게 어필했던 스타일에 대해 강한 고집을 내비친 나머지 복제품에 가까운 닮은꼴의 사운드를 구성한다는 것이 앞에서 진술한 문제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지금 팝 음악에서 각광받는 스타일이 중독성 있는 신시사이저 훅으로 매끈하게 다림질한 것들이라서 이러한 경향을 흡수한다고 해도, 좀처럼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식상하다. 다이내믹한 레인지를 부상시키고 프로그래밍한 악기를 쪼개서 오로지 속도감과 긴박감을 보강하는 데에만 전념한다. 빠르고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보편적인 성향에만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카랑카랑한 전자음으로 전체를 휘감은 'Remember', 리듬 파트를 빼곡하게 끼우고 디지털 사운드를 창처럼 늘어놓아 가사와는 반대되는 공격성을 띠는 '반짝반짝',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의 'Sexy Back'에다가 아니타 워드(Anita Ward)의 'Ring My Bell'을 전사(轉寫)하여 포개놓은 듯한 'Strong Baby' 등은 현란하기만 했지 훌륭하지는 않다.

선배 뮤지션의 곡 일부를 사용한 곡에서도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이들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과 힙합 음악의 제조 방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샘플링 혹은 기존에 만들어진 노래의 중요한 보컬 라인을 차용하는 룰을 대입해 데뷔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히트 행렬을 이어오고 있지만, 한편 이에 따른 반작용 또한 출현 이후 쭉 동반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작품 중 원본이 되는 음악의 일부 인용이나 그것을 개찬하는 방식을 사용한 노래들은 유려함보다는 진부한 편곡을 드러냄에 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블랙 머신(Black Machine)의 'How Gee'를 샘플링한 동명의 것과 마룬 파이브(Maroon 5)가 부른 'This Love'의 주요 루프를 빌려온 곡,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에서 일부분을 가져다 쓴 'Crazy Dog'마저도 오리지널과 별반 차이 없는 마디의 즉결 이행이 그러하다. 이렇게 생성된 특별한 이미지는 좋게 말해 '원곡을 무척 아끼는 가수', 이게 전부다. 그러나 이는 댄스 음악이나 힙합에서는 반드시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 지나친 겸손이며 다소 불필요한 진솔함이다. 감각과 신선함을 담보하지 못한 작법의 남용은 빈약한 창작력과 아이디어 부재라는 약점을 동네방네 대놓고 알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붉은 노을' 역시 그들 특유의 제조 공정과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인해 발생한 심히 재미없는 결과물 중 하나로 남을 듯하다. '붉은 노을'은 코러스 선율이 쭉쭉 뻗어 귀에 잘 들어온다는 큰 장점을 지녔지만, 반복되는 키보드 반주도 상당히 매력적인 곡이다. 빅뱅은 코러스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앞에 있는 선율이 일단 분위기를 달궈줘야 코러스가 확 터지고 살아나는데 탑과 지드래곤의 랩은 산만하기만 하고, 새롭게 만든 버스(verse)와 브리지는 종결 멜로디에 가까워 기운을 한 번 빼버린다. 더욱이 원곡의 후렴을 고스란히 이동시킨 탓에 랩만 곁들여서 다시 부르는 수준에 머물고 말아 노래는 어중간하다 못해 아예 '묽은 노을'이 되어버렸다.

'오, 아, 오'는 또 어떤가? 스캣맨 존(Scatman John)의 1994, 95년 히트곡 'Scatman (Ski Ba Bop Ba Dop Bop)' 후렴구를 아무런 가감이나 변형 없이 원형 그대로 떼어 와 사용함으로써 평범한 악기를 하나 더 입력한 정도에 그치는 상황을 초래했다. 우리나라 댄스 그룹 지오(Zio)가 1995년에 이 노래의 스캣을 이용해 불렀던 '나만의 노래 (삐빠빠)'가 소박하긴 해도 어떻게든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묻어나 보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너무 쉽게 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

안일한 방법으로 편하게 가는 것도 좋고 현재 모습을 지키는 것도 괜찮다. 지금처럼 뾰족한 신시사이저 소리를 첫째로 두고, 강하게 드럼을 울리고, 날쌘 모양을 띠면 현상유지는 될 테니까. 그러나 강도(强度)로만 공략하는 가혹한 댄스 음악은 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가 처음에만 끌리다가 금방 물리는 음식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멀리하기 십상이다. 또한, 조립, 합체형 단순 샘플 운용은 아무리 해도 걸작과 격원하니 '좋은 댄스 음악'으로 남기에는 어렵다. '자극 대신 자연스러움을, 상투 대신 참신성을', 빅뱅이, 그리고 나아가 YG가 정해야 할 강령이다.

2008/11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낭만여객 2008/11/17 16:20 #

    아아...좋은 평론이었습니다만 요즘에 빅뱅 팬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기에, 일단 몸조심을 ;ㅁ;
  • 국화 2008/11/17 17:31 #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분을 들뜨게 하거나 감흥을 제공하지 못하는 곡 .
    에 동감 한표 .
  • kyungvin 2008/11/18 17:03 # 삭제

    제가 20대 중반 빅뱅빠인데요 ㅠㅠ
    정말 이번 정규음반 같은 경우는 빠심으로도 쉽지 않더군요.
    트랙 처음부터 끝까지 오토튠을 떡칠해놔서 한번 돌리면 귀가 아파요.
    차라리 리믹스트랙들 빼고 그냥 '오토튠'이라고 미니앨범을 내는게 어땠을지 -_-;
    뭐, 메인스트림을 따라가는 것도 좋지만 (Kanye West가 새로 낼 음반도 오토튠 떡칠 작렬이더군요 ㄱ-)좀 심했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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