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m - Down To Earth 원고의 나열

'미드(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 영국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젬(Jem)의 음악은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의 'Wish I'와 'They', <스몰빌 Smallville>의 '24', <오씨 The O.C.>에서는 'Just A Ride'와 폴 매카트니의 노래를 커버한 'Maybe I'm Amazed'를,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Sex And The City>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It's Amazing' 등을 통해서 독특한 음악을 대중에게 알려왔기 때문이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드라마/영화 삽입곡 계의 여왕' 반열에는 진작 들은 인물이다.

'미드'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를 외치며 극진한 애정을 보이는 열혈 애호가들에게만 젬의 음악이 가까웠던 것은 아니다. 데뷔 싱글인 'They'는 다니엘 헤니와 기네스 펠트로가 출연한 모 의류 광고에 삽입되어 우리나라 음악팬들에게도 은연중에 친숙하다. 또한, 2005년에는 하유선이 부른 'Question'의 영상 중 한 부분이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따라 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해서 여러 매체와 웹 커뮤니티에서 그녀의 이름과 노래를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스타들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알고자 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뮤지션, 국내에서의 위치는 이랬다.

젬은 그러나 몇 편의 드라마와 광고 삽입곡으로 유명한 가수라든가 표절의 대상으로만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다. 일렉트로니카를 자신의 음악적 토양으로 삼지만, 이 안에서 뻗어나가는 스타일의 변모가 화려해서 큰 매력을 지니며, 장르와 장르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과시하면서도 전혀 어수선하지 않은 완성도를 구축한다. 트립 합, 뉴웨이브, 일렉트로팝에다가 포크까지 잇대는 선들은 무척이나 견고하다. 더군다나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하고 프로듀싱까지 하니 음악적인 면으로 인정받아야 할 뮤지션에 속할 것이다.

자국을 벗어나 디트로이트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녹음한 소포모어 작품은 일렉트로니카에만 그녀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몽롱하고 신비한 기운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작과 비교하면 훨씬 다채로운 내용을 선보인다. 펑크(funk) 리듬의 도입으로 변화를 모색한 'Crazy', 드럼 앤 베이스와 힙합의 비트를 혼합한 'Aciiid!', 완연히 록의 얼개를 갖춘 'How Would You Like It' 등이 그러하다. R&B 그룹 블랙스트리트(Blackstreet)의 'No Diggity'에서 사용된 건반 샘플을 삽입해 중량감을 살리는 첫 싱글 'It's Amazing'은 어둑어둑한 그루브를 타고 흐르는 단조의 보컬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후반부 이펙트를 준 보컬을 지나고 나서 성가대 합창과 브라스 프로그래밍이 뭉치는 파트에서는 종교적 경건함과 카니발의 즐거움이 덩이진 듯한 독특한 경치를 조성해 즐거움을 준다.

앨범의 묘미는 멜로디를 강조한 곡에서도 나타난다. 건조한 보컬로 목소리를 분(扮)함에도 명징한 울림을 내는 'And So I Pray', 파도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선율을 퍼뜨리는 'On Top Of The World'에서는 자신의 음색을 살린 말끔한 음의 조합이 돋보인다. 가수 겸 사회 운동가인 남아프리카의 싱어송라이터 부시 말라셀라(Vusi Mahlasela)와 함께한 'You Will Make It'은 9/11 테러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만으로 이뤄진 반주에 아무런 기교 없이 직선으로 흐르는 젬의 슬픈 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 막바지에 흐르는 나지막한 톤의 내레이션, 중간 중간에 들어간 부시 말라셀라의 주문 같은 스캣으로 노래는 숙연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힘 있게 들린다.

젬의 음악은 한편으로는 포티스헤드(Portishead)와 타투(t.A.T.u.), 더 버드 앤 더 비(The Bird And The Bee)를 섞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로써 나타나는 '애매함'은 스타일의 함몰이 아니라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채로운 색을 엷게 퍼뜨리는 그녀 음악의 특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아마존닷컴(Amazon.com)에서 실시한 '2004년 에디터 선출 100'에서는 69위를 기록했으며, 큐 매거진(Q Magazine)과 가디언(The Guardian)이 호평을 아끼지 않은 처녀작 <Finally Woken>에 이어 이번 작품 또한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젬의 연타석 히트로 자리 잡을 <Down To Earth>는 2008년이 내놓은 쾌작 중 하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2008/11 한동윤 (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