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nker Tones - Wild Animals 원고의 나열

수많은 음악팬 중에는 특정 장르에 대해 선입관을 갖는 이들이 존재한다. 죽어도 자신은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편식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음악 형식에 대해서는 은연중에 자기만의 단정을 내리기 마련인 것이다. 예를 들어, 헤비메탈은 너무 시끄럽고 우악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클래식 음악은 단 몇 분만 들어도 잠이 올 정도로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컨트리는 닭살 돋게 촌스럽다거나, 재즈는 괜히 고급스러운 게 부담된다거나, 블루스는 자체가 우중충하다는 둥, 랩 음악은 말이 많은 게 정신 사납다는 둥 몇몇은 조금 흥분한 톤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전자 음악에 대해 보편적으로 갖는 대중들의 편견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날카로움, 현란한 소리에서 느껴지는 어지러움, 젊은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음악 등 아마도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이와 비슷한 판단이 자리 잡지 않을까 싶다. 이런 걱정이라면 이번에는 붙들어 매어도 된다. 핑커 톤스(The Pinker Tones)의 이 음반은 날카로운 것보다는 조금 무딘, 현란한 것보다는 다소곳한,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것보다는 어른스러운 사운드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사한 이유로 일렉트로니카를 어렵게 느꼈다면, 우려의 그래프가 대폭 낮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핑커 톤스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두 번째 앨범 <The Million Colour Revolution> 이후 국내에 두 번째로 라이선스되는 음반이다. 더욱이 약 1년 전, 이들의 노래 'Pink Freud'가 기아 자동차 CF에 삽입되어 관심을 모았으니 지금은 익히 아는 음악팬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페인 출신의 두 청년 미스터 퓨리아(Mister Furia, 본명 : 살바도르 레이)와 프로페서 맨소(Professor Manso, 본명 : 알렉스 리오베트)는 2001년 그룹을 결성하기 전에는 그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대학 친구 사이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레이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방송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그와 가깝게 지내던 리오베트에게 권유해 프로젝트를 함께하게 됐고 자신들의 유닛을 핑커 톤스라고 명명, 현재의 별명으로 무대에 서며 뮤지션으로 활동하기에 이른다. 순수하게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뭉친 이들은 바르셀로나의 어느 한 편, 작은 다락방에다 작업실을 차리고 그곳을 '핑커랜드(Pinkerland)'라고 이름 지었다. 여기에서 만든 첫 앨범 <Pink Connection>을 2003년도에 발표한 이들은 영국의 아웃스탠딩 레코드사(Outstanding Records)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설 채비를 갖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식 데뷔 앨범인 <The BCN Connection>이 전 세계 곳곳에 발매되었고, 싱글 커트 된 일렉트로니카 넘버 'Mais Pourquois?'와 'Viva La Juventud'가 뮤직비디오로 제작되며, 독특한 영상미에 힘입어 단숨에 대중의 관심과 기대를 사게 되었다. 음악은 물론 공개된 비디오의 중독성과 흡인력은 실로 대단했다.

일렉트로니카를 주 메뉴로 내세우지만 견고한 퓨전 양식을 달리는 이들의 음악 세계는 무척이나 방대해서 지향과 성향을 딱 잘라 말하기에는 좀처럼 쉽지 않다. 라운지, 스윙, 펑크(funk), 뉴 웨이브, 심지어는 힙합까지 다양한 장르가 복합되어 나타난다. 음악 스타일이 다양하게 가지를 뻗은 것처럼 곡의 가사 또한 여러 나라 말로 구성된다.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비롯해 영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까지 많게는 무려 5개 국어를 사용해 지역적 장벽을 허물고 언어의 담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독어와 일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국제화 시대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러한 시도를 통한 결과로 핑커 톤스는 동시대 세계인들이 흠모해 마다치 않는 최고의 음악가로 급부상했는데, 2005년 소포모어 앨범 <The Million Colour Revolution>을 발표한 이래 미국, 일본, 러시아 등 40개가 넘는 국가에서 3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친 사실이 이들의 엄청난 인기를 방증한다. 또한, 콘서트를 위해서 오랜 기간 동료로 지낸 디제이 니뇨(DJ NINO)를 영입, 핑커 톤스 디제이 크루(Pinker Tones DJ Crew)라는 세션을 갖추고 본인들의 레퍼토리와 함께 그들이 제작했던 작품을 리믹스할 정도로 팬과 관중에게 매번 신선한 음악을 선사한다. 자신들의 음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새롭고 근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야말로 정말 음악가다운 음악가일 것이다.

핑커 톤스 음악의 특징을 하나 더 꼽는다면,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예 팀을 결성할 때부터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노라고 목표를 세우기라도 한 것처럼 시원한 소리 골격으로 소소한, 때로는 대규모의 흥분을 안겨준다. 휘황찬란한 편곡에 강한 비트의 곡이 아님에도 이렇게까지 신나는 분위기를 낸다는 것 자체로서도 무척 새롭기에 바르셀로나 출신의 이 두 남성 미스터 퓨리아와 프로페서 맨소가 만들어가는 음의 조직은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핑커 톤스는 그럼에도 결코 유려함을 잃지 않는다. 재미를 만족하려다 보면 깊이나 완성도 면에서 미비한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이들이 제조한 음악은 실망을 안겨주는 법이 없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매번 우량아, 인큐베이터에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 튼튼하고 실한 내용을 자랑한다. 일렉트로니카, 스탠더드 팝, 힙합, 보사노바 등 다양한 양식을 도입하고, 한 앨범 안에서도 수십 번의 변화를 꾀하는 중에도 어색한 점이라든가 틈 따위의 약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에는 하지만 특유의 유쾌함이 약해져 약간은 생경하게 느끼는 팬들도 있을 듯하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던 가벼운 멋은 기화라도 한 듯,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향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은 아니니 일정 부분 전작들에 비해 무게감 있는 면모를 갖췄다고 보는 게 옳겠다. 이들의 음악 형식이 과거에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나 라운지에 밀착해 있었다면, 현재의 모습은 예전 스타일이 일정 부분 거둬지고 어덜트 컨템퍼러리나 얼터너티브 팝과 조금씩 절충을 꾀하는 상황이라 할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전까지 선보인 그 밝은 성향을 '치기의 발산'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정도로 이번에는 어른스러운 인상을 준다. 첫 곡 'Hold On'은 전자 음악의 요소를 내재하면서 귀에 쏙 들어오는 기타 리프를 전면에 내세워 록의 골격을 갖추는데, 이는 80년대 팝 음악을 선호하던 이들을 배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치 내레이션을 하는 것처럼 침착하게 진행되는 프랑스어 버스(verse)와 민요풍 멜로디의 영어 코러스가 만나 이질적인 모양을 띠는 'On Se Promenait'를 비롯해서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 스캣으로 얼마간 쓸쓸한 기운을 내다가 후반부 들어 오르간 연주를 통해 흐름을 180도 전환하는 'Biorganised'와 턴테이블 스크래칭이 곁들여진 힙합 비트를 타고 느긋하게 노래하는 'Happy Everywhere' 등은 핑커 톤스의 성숙을 일러주는 노래다. 여러 음악과의 배합을 주도하면서도 보컬을 강조하고 악기마다 갖는 감성을 십분 살려서 평소보다 더 깊은 멋을 내고 있다.

다른 곳곳에서는 여전히 쾌청하고 아기자기한 음악이 청취자를 반긴다. 보코더 효과를 준 음성과 가벼운 신시사이저 터치가 바운스감을 살리는 'S.E.X.Y.R.O.B.O.T.', 관악 편곡과 라틴어 보컬이 더해져 이국적인 맛을 내는 'Electrotumbao'는 밴드가 기존에 품었던 음악적 지향을 엿보는 동시에 핑커 톤스의 독창성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는 트랙이다. 레게와 스카가 결합되어 음향적 채도를 높인 'The Whistling Song'은 반주가 워낙 경쾌해서 시트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며, 1970년대 오리지널 펑크(funk)를 재현하지만 장르가 지닌 본래의 걸쭉함을 가성의 보컬로 순화시킨 'Working Bees'는 중간 중간에 들어간 변조된 목소리와 스크래칭을 통해 프리스타일 댄스 계열의 브레이크비트 느낌을 접할 수 있다. 후반부에 몰아서 달린 열기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Let Go'는 기타 연주와 단순한 음절을 반복하는 코러스로 은은하게 대미를 장식한다.

이전 앨범들을 경험했던 이라면 약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를 제공하는 요소는 100% 유지되며, 두 멤버가 공동으로 완성하는 사운드의 '유창함'과 '깔끔함' 또한 그대로다. 수많은 청취자의 기호를 만족할 다채로움을 담보하면서도 전혀 난잡하지 않고 늘 정돈된 소리를 들려주는 이들이기에 달라진 모습에 당혹스럽더라도 그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만약 일렉트로니카에 대해 편견을 하나쯤 품고 있다면, 그것은 핑커 톤스의 이 앨범 <Wild Animals>를 듣는 순간에는 말끔히 사라질 듯하다. 날카롭거나 현란하지 않은, 그래서 어떤 연령대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자 음악이 여기 알차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음반 해설지 전문


덧글

  • Ginger 2009/01/20 01:02 #

    처음 들어보는 팀인데 꽤 재밌을거 같네요. 나중에 구입해서 들어보고 싶군요.
  • 한솔로 2009/01/20 16:37 #

    재밌기는 전 앨범이 더 재밌어요. 이번 앨범은 좀 건전해진 느낌이에요.
    나중에 꼭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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