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커(Casker) - Polyester Heart 원고의 나열

기술 집약적 운용과 이로써 편곡을 말쑥하게 해내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 최고 우위가 된 대표적인 장르가 일렉트로니카이지만, 이 군에 속하는 음악가 중 그것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지 않은 팀도 존재한다. 이준오와 이융진의 듀오 캐스커(Casker)가 그러하다. 이들은 광포한 공격성을 띄는 냉랭함보다는 감성에 잔잔하게 호소하는 따스함으로 청취자에게 접근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납게 밀어붙이는 음악이 아닌 살며시 감싸는 음악인 것이다. 그룹이 내세워 오는 기조, '심장을 가진 기계 음악'처럼 보이지 않는 36.5도의 눈금이 인간미가 느껴지는 노래로 체감된다.

이런 성향은 본 작품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아니, 한쪽으로는 더 강해진 듯하다. 데뷔 앨범 이후 비중이 확연히 늘어난 보컬은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아 인스트루멘틀이 조성하지 못하는 생기가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누군가와 함께함에 갈급하고, 사랑에 희구하며, 옛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노랫말이 자신의 삶이나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다른 이의 모습에 맞닿아 있어서 더욱 사람 냄새가 난다. 인간미의 극대화된 발로가 'Adrenaline'같은 클럽 지향의 본격적인 댄서블한 음악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쇳소리를 거두고 사람 냄새를 풍기고 있으나 앨범은 그 진해진 향으로 인해 무척 싸늘하다. 작품을 관통하는 감정은 순백색의 황량함, 옛 연인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머리와 가슴을 새하얗게 채색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러나 과거를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태도가 군데군데 드러난다. 어떤 곡에서도 행복에 겨운 밝은 면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을 서로를 비춰주는 빛에 비유하고 있으나 차가운 조도(照度)를 간직한 불완전한 것으로 해석하는 첫 세 곡 '역광', '빛의 시간', 'You'를 통해서 냉기는 이미 형성된다. 2집 <Skylab>의 'Tango Toy'에서 서서히 시작해 2006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Between>에서 본격화된 탱고와의 접목이 나타나는 '이명'에서는 사랑했던 이의 음성을 떼어버릴 수 없는 고통이 재현되며, 하동균이 객원 보컬로 참여한 힙합풍의 곡 '너를 삭제'에서도 기계처럼 간단하게 그(녀)의 존재를 지울 수 없어 답답해하는 이의 토로가 계속된다. 음울한 바이올린 연주가 삭풍처럼 불어오는 '2월', 건반 하나에 단출한 가사로 사랑의 덧없음을 시사하는 '너와 나' 등도 한결같은 상황이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접하면서 청취자가 차가운 공기를 느끼는 건 한 치의 틀어짐도 없는 계산된 진행, 혹은 자상을 입힐 듯이 귓가로 질주하는 날카로운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 탓일 때가 잦다. 하지만, 캐스커가 띄워 올리는 분위기는 음악 외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수에게 공감을 살 이야기와 일상의 소재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그룹을 다른 전자 음악 뮤지션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게 하는 점이고, 차갑지만 어쨌든 생활인의 정조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Polyester Heart>로 이들은 '심장을 가진 기계 음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또 한 차례 공고히 새기고 있다.

2009/02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덧글

  • Forever 2009/02/03 16:18 #

    앨범은 참 좋게 듣고 시디도 오옹 했는데
    중간에 하동균이랑 하는 노래는 왜그리 거슬리는지 에휴
  • Run192Km 2009/02/03 16:30 #

    CD사서 어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음원도 구할 생각도 안하고 있는 앨범이지요..

    그런데 하동균이라니..'ㅅ';;
  • Tag 2009/02/04 09:32 #

    그렇지 않아도 나오자마자 도시락으로 다운받아서 듣고 있는 앨범이네요. 워낙 예전부터 캐스커의 광팬인지라...ㅋ
  • 玄雨 2009/02/05 12:22 #

    칫솔 참 좋게 듣고 있습니다. 이번 앨범 괜찮기는 한데 오래 들을만하진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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