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e's Day 솔로들이 저주하는 영화와 음악 원고의 나열

올해도 어김없이 연인들의 날은 온다. 빨간 날은 대폭 사라졌는데 기원이 불분명한 '데이'가 꼬박꼬박 적힌 달력을 보면 절망의 한숨은 더 크게 터진다. 1월 14일 다이어리데이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커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전유 날짜'가 시작된다.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에 온 것이다. 이즈음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마주하는 로맨틱 영화와 거기에 삽입된 음악은 솔로들에게 <쏘우 Saw>에 나오는 직소 박사의 고문과도 맞먹는다. 그렇다고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만은 없는 일, 짝 없음에 목 놓아 울부짖는 '외로움 氏'들이 저주할 만한 영화와 사운드트랙을 감상 및 대응의 팁을 달아 소개한다.


<러브 스토리 Love Story>
Francis Lai 'Snow Frolic'

불치병의 애인을 떠나보내는 남자의 사랑을 그린 에릭 시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겨울철 어김없이 등장하는 커플 영화의 고전이 되었으며 음악을 맡은 프란시스 레이의 곡은 아카데미 시상식 작곡상을 받았다.
(tip) 슬픈 사랑 이야기이지만 솔로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나 잡아 봐라' 놀음의 장면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속이 뒤틀린다. 이들이 다이빙하는 눈밭에 뾰족한 짱돌 하나 박혀 있기를, 이들이 던지는 눈덩이에 큼지막한 연탄 조각이 들어 있기를, 이들이 먹는 눈송이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 가득 들어 있기를 염원한다면 못된 심보일까. 처절한 생활이 악을 키우는 것,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Mr. 히치 -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Hitch>
Heavy D & The Boyz 'Now That We Found Love'

알레그라와 앨버트가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아주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엔딩 장면에서 그 부부와 히치, 사라 커플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출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tip) 결혼, 누가 안 하고 싶겠는가. 결혼 정보 회사에 등록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맨투맨 상담 및 지도라도 받고 싶은데 무료로 조언자가 되어줄 이 없으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력으로 애인 혹은 인생의 동반자 찾으려고 버디버디, 스카이러브에 몰두하는 것이 아닐까. 헤비 디 앤 더 보이즈의 신나는 노래에 맞춰 주인공들처럼 막춤 한 번 과하게 추면 결혼 못해 받는 스트레스 2% 정도는 날릴 수 있다.


<더티 댄싱 Dirty Dancing>
Bill Medley & Jennifer Warnes '(I've Had) The Time of My Life'

영화의 마지막, 자니와 베이비가 끈적끈적한 눈빛을 교환하며 사뿐사뿐 스텝을 밟을 때, 행복에 겨워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일 때, 두 주인공만큼이나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빌 메들리와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가 왠지 야속하게 들린다.
(tip)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파트너를 들어 올리는 리프팅을 선보이고 무릎으로 턴을 하는 화려한 댄싱 기술만을 감상해야 한다. 그래도 마음이 뒤숭숭하다면 멋진 공연 잘 봤다는 의미로 브라운관 앞에 동전 몇 개 던져야 기분이 좀 나아진다.


<첫 키스만 50번째 50 First Dates>
The Beach Boys 'Wouldn't It Be Nice'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하루만 지나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고군분투 러브스토리. 그녀와 사랑할 수 없음을 알고 홀로 배를 타고 머나먼 여행을 떠나려던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 헨리가 울먹이며 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결국, 그는 다시 그녀에게 돌아오게 되지만.
(tip) 이게 당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떨까? 키스를 매일 같이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이 짧은 거다.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 상당히 레트로액티브스러운 행동을 매일 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어떻게 사랑을 했고, 결혼은 어떻게 했고, 또 애는 언제 가졌으며 등등의 자초지종을 하루도 빠짐없이 설명해야 하는데? 사는 동안 하. 루. 도. 빠. 짐. 없. 이. 이런데도 비치 보이스의 ‘좋지 않은가요?’가 귀에 들어올까? 단기간 내에 솔로 탈출이 어렵다고 생각되거든 커플의 어두운 면만을 바라보라.


<사랑과 영혼 Ghost>
The Righteous Brothers 'Unchained Melody'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다. 데미 무어 뒤에 패트릭 스웨이즈가 앉아 둘이서 오붓하고 사랑스럽게 도자기를 빚는 장면은 영화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패러디 되고 있다.
(tip) 살면서 도예가를 만나고 그 사람과 사랑하게 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지 계산해 보자. 게다가 그 여자가 또렷한 이목구비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갖췄을 경우는? 조금 전까지 생각했던 확률에서 한참은 더 떨어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몇몇 커플들이 그들의 사랑놀이를 따라 하려고 이천 도자기 마을에까지 가서 체험해 봤으나 습진만 걸려 왔다는 검증되지 않은 후문을 들으면 도예가와 사랑하는 것과 영화 속 두 사람의 연애 행각에의 동경이 사라질 듯하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0 Things I Hate About You>
Frankie Valli 'Can't Take My Eyes Off You'
부모님으로부터 이성교제 허락을 받기 위해 언니(캣 스트랫포드)의 선(先) 연애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동생과 그녀의 친구는 언니의 배필이 될 만한 사람으로 패트릭을 매수한다. 얼마 후 패트릭이 매수된 사실을 안 캣은 상처를 받는데, 다음 날 패트릭이 캣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자신을 붙잡아 달라고 요구할 때 이 노래를 부른다.
(tip) 영화 속 구애 장면에서는 이벤트가 빠질 수 없다.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많은 사람 사이에 있는 캣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히스 레저. 거기에 있던 학생들이 그의 멋진 모습에 박수를 아끼지 않으니 이를 보는 솔로들은 '나는 언제 저렇게 해 보나'하며 신세를 한탄할 듯.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부러움을 억누르기 위해서 <다크 나이트> 조커의 망나니 아버지 감정을 이입해 본다. '와이 쏘 씨리어스? 아우, 그냥 입을 확~!!'


<라붐 La Boum>
Richard Sanderson 'Reality'

파리로 전학 온 빅이 파티에 참석해 잘 생긴 남학생 마티유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마티유가 워크맨의 헤드폰을 빅의 귀에 씌워 주고 'Reality'에 맞춰 둘은 서로의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춤을 춘다.
(tip) 솔로들은 둘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쓰자마자 밖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헤드폰을 탐스러워해야 한다. 정말 고성능 아닌가? 허름해 보이는 헤드셋이 알고 봤더니 스튜디오 전문가용이었다는…. 그게 아니라면 볼륨을 최대로 올렸을 것, 소피 마르소는 이 영화 이후로 극심한 난청에 시달리게 된다. 믿거나 말거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If Sun Rise Up From West>
Cliff Richard 'Early In The Morning'

야구 심판이 된 범수와 시구자로 나선 인기 탤런트 현주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영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클리프 리차드의 1969년 히트곡.
(tip) 범수가 유학 가는 현주의 차를 쫓아 달려가는 신에서도 이 노래는 흐른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기를 솔로들은 바랄 것이다. 이것이 외로운 집단이 염원하는 참다운 해피엔딩이다.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주인공이 입 맞추며 그 이상의 행복을 키워나갈 것을 암시하는 마지막이 마련돼 있으니 노래는 이별의 테마에서 재회의 테마로 바뀐다. 솔로들은 이때 야구장에 있는 몇 만 명의 관중이 빨리 경기나 속개하라며 야구 배트, 야구공, 음료수 병, 각종 오물 등을 던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 속 편하다.


<보디가드 The Bodyguard>
Whitney Houston 'I Will Always Love You'

경호 임무를 마친 프랭크는 활주로에서 떠나는 레이철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 마지막 인사지만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포옹. 그러나 사랑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레이철은 비행기를 돌려 프랭크에게 달려가 진한 키스를 나눈다.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의 것을 커버해 빌보드 차트에 14주 동안 1위에 머무른 노래가 둘의 사랑을 축복하듯 울려 퍼진다.
(tip)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커플이 될 시, 안 좋아질 상황을 상상해야 한다.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프랭크는 그녀를 지키려고 총 한 발을 맞았다. 이 인기 가수랑 1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한 해 동안 4,380발의 총알을 가슴에 아로새겨야 한다. 인간 벌집이 되는 셈이다. 미모에 돈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지만, 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다 죽느니 혼자가 낫다.


<무서운 영화 4 Scary Movie 4>
Lionel Richie 'Hello'

5편까지 제작되며 장수하는 패러디물 <무서운 영화>의 네 번째 시리즈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패러디한 장면. 텐트 안에서 서로 사랑을 느끼던 이들 사이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마음속에서 당신을 품은 채 외로웠어요, 꿈속에서 나는 수천 번씩 당신에게 키스를 해요', 조심스럽게 감정을 확인하더니 이내 웃옷까지 풀어헤치며 서로 가슴에 로션을 발라주는 진풍경을 펼친다.
(tip) 미안하지만 이제는 팁이고 뭐고 없다. 이 장면을 보고도 슬퍼한다면 솔로 생활의 끝까지 간 것이다. 선택은 둘이다. 이성 찾기를 포기하고 동성과 만나든지 그게 내키지 않는다면 애완동물을 키우며 여생을 보내든지.

(한동윤)
월간 음악 잡지 프라우드 2009년 2월호


덧글

  • 땅콩 2009/02/12 15:27 #

    최근에 다시 본 라붐의 반전. 소피가 뒤를 돌자 더 잘생긴 남자애가 짠! 하고 나타나더군요. 식스센스 이전에도 반전은 존재했나니...ㅎㅎㅎ
  • 한솔로 2009/02/12 20:50 #

    그런 장면이 있었나요? 기억이 잘 안 나요. 역시 사람은 급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군요.
  • megalo 2009/02/12 16:54 # 삭제

    <내가 널 사랑할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히스레저가 부른 Can't take my eyes off you 가 생각나네요. 거참 노래도 잘하던데... 아쉬운 배우입니다.
  • 한솔로 2009/02/12 20:52 #

    경찰들도 잘 따돌리고요. 그런데 왠지 저때가 더 나이가 들어 보여요.
  • Tag 2009/02/12 19:19 #

    무서운 영화...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보고 우울하면 정말 막장인데요.
  • 한솔로 2009/02/12 20:52 #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저 정도도 못 된단 말인가 하면서요...
  • Tag 2009/02/13 08:37 #

    듣고 보니 저도 좀 그랬던 것 같기도...쿨럭~
  • 국화 2009/02/12 19:44 #

    이야 하나하나 다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게하죠 .
    특히 러브스토리 . 으앙 ..
  • 한솔로 2009/02/12 20:53 #

    사랑 영화는 기쁘게 끝나든 슬프게 끝나든 어쨌든 마음을 짠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불편합니다.
  • Run192Km 2009/02/12 20:06 #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여자가 본 시리즈의 그 여인이군요..
    얼굴이 팍 알 수 있는 얼굴..

  • 한솔로 2009/02/12 20:55 #

    여자가 본 시리즈라고 해서 무슨 의미인가 한참 생각했네요. 하하.
    저는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로 처음 접했어요. 어설픈 춤이 압권이었죠.
  • 쏘닉 2009/02/13 01:34 #

    이건 진짜 엄청난 노동과 노력이 동반된 기념비적 아티클
    진심 ㅎㅎㅎ
  • 한솔로 2009/02/13 11:34 #

    아, 이건 의외로 노동과 노력이 덜 들어갔어. 이번에 얼떨결에 맡게 된 나머지 두 꼭지들이 더 시간을 잡아먹었지. 근데 이걸 쓰면서 확실히 내가 멜로보다는 액션에 강하구나 싶더라고;
  • 한솔로 2009/02/13 11:36 #

    Tag / 이 블로그 시스템은 덧글에 덧글 달기가 한 번밖에 안 되나 봐요... (그래서 이 엄청 아래에다...) 처음에는 폭소를 터뜨렸지만 몇 초 지나니까 두려움이 배럴 단위로 밀려 오더라고요. 솔로는 역시 씁쓸합니다.
  • 나태한고양이 2009/02/13 17:18 #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런 글을 쓰신다는 것 자체가..
  • 한솔로 2009/02/15 10:20 #

    이게 뭘...
  • 개같은고양이 2010/03/17 00:32 # 삭제

    ㅋㅋㅋ 마지막에 무서운영화4
    팁이고 뭐고 없다 여기까지 갔으면 갈데까지 갔다 부분에서 울컥하면서
    뿜었네요......
    여생을 안그래도 고양이와 지내볼까 생각중입니다 ㅠㅠ
    Hello........
  • 한솔로 2010/03/17 10:05 #

    만약 여생을 동물과 함께 보내야 한다면 저는 멍멍이를 택하겠어요. 도도한 고양이보다는 그래도 살가운 개가 낫지 않을까요? 아, 개의 품성을 지닌 그런 고양이라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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