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 Price, 광활한 다운템포의 세계를 여는 관능적 사운드 원고의 나열

일렉트로니카의 많은 서브 장르 중 다운템포는 가장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로맨틱한 무드를 조성하기도 하고, 약간의 발랄함으로 춤을 유도하기도 하며, 때로는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것처럼 우중충한 그루브로, 혹은 최면에 빠질 것 같은 단조로운 반복 구조로 청취자의 귓가에, 마음속에 서서히 투침한다. 딱 잘라 규정하기에는 어려운 팔색조 같은 면모를 보인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까지 일렉트로니카를 많이 접하지 못한 이라든가 이 장르에 대해서는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 낯선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자 음악이라고 하면, 원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댄서를 동반한 테크노나 발라드 원곡의 리믹스로 만나는 하우스 일색이기에…. 그런 면을 감안해 볼 때 조나단 폴(Jonathan Paul)과 다미르 프라이스(Damir Price)로 구성된 듀오, 폴 앤 프라이스(Paul & Price)의 <Sounds Like Sex>는 다운템포와 나아가 칠 아웃, 앰비언트 같은 스타일을 제대로 접하고자 하는 음악팬에게 아주 좋은 기회이자 편람이 될 것이다.

투즐라의 유고슬라비아인 마을에서 태어났고 폴 앤 프라이스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다미르는 여섯 살 때부터 엄격하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색소폰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연주를 볼 때마다 무척 흥분했고 그가 봐 왔던 모습은 음악가가 되는 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일찍이 버클리 음대에 진학할 생각을 했지만, 모든 일이 기대한대로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열일곱이 되던 해에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간 그는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생활했는데, 그가 묵고 있던 집의 가족들이 다미르의 꿈을 알고는 음악인 양성 프로그램이자 지원 단체인 <업 위드 피플 Up With People>에 참가자로 지원해 볼 것을 권유했다. 거기에서의 경험이 신시사이저와 전자 음악에 흥미를 갖게 해줬다고. 종국에는 버클리 음대에 들어가 필름 컴포지션과 뮤직 신서시스를 전공했다.

다미르와 달리 조나단은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1990년대 초반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예술과 건축을 공부한 그는 패션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활동을 했으며, 가구 디자인과 광고 회사에서 아트 디렉터로서 분주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년시절부터 디제잉과 드럼 루프에 열광했던 탓에 조나단은 음악을 만들고 디제이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음악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요. 그것은 지속적으로 내 인생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라고 이야기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 혼자 힘으로 부단히 음악 제작을 해오던 어느 날 그의 음악이 산타 모니카 대학의 라디오 방송국인 KCRW을 통해 전파를 타게 되는 기회를 얻었고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KCRW의 음악 감독 닉 하커트(Nic Harcourt)는 조나단의 음악에 매료되어 자신과 알고 지내던 다미르를 소개해줌으로써 함께 음악을 해 볼 것을 권유했다. 둘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태어나고 자란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음악에 대한 공통분모는 그들을 팀으로서 굳건하게 지탱해준다. 물론, 인간적인 매력도 서로를 강하게 끌었을 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동일한 음악적 목표와 취향은 둘을 하나로 만들었고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각자의 성(姓)을 사이좋게 사용해 폴 앤 프라이스로 이름을 지었고, 레드콜라(redCola)라는 그들만의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다. 2004년 처녀작 <Sounds Like Sex>로 공식 데뷔한 후, 2005년 <Sip Of Sunshine>을 발표한 이들은 섹시하면서도 나른한 다운템포와 라운지, 하우스 음악으로 전 세계 마니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 뮤지션으로서 순조로운 출항을 알렸다. 당시의 이국적, 몽환적 정취는 다른 음악가들에게서 좀처럼 발견할 수 없던 것이었기에 이 생경한 마력에 동화된 이들은 폴 앤 프라이스를 숭배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Hotel Costes, Vol. 9>에 참여했으며, 2007년에는 포트 녹스 파이브(Fort Knox Five), 봄베이 덥 오케스트라(Bombay Dub Orchestra)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이 참여해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Bob Marley & The Wailers)의 노래를 리믹스한 편집 음반 <Roots Rock Remixed>에 'Small Axe'의 리믹스 버전을 수록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2008년 12월 중순 출시 예정인 재즈 리믹스 앨범 <Rewound & Reworked, Vol. 2>와 각종 싱글 트랙까지, 아직 신인이라는 딱지를 떼기엔 어려운 짧은 경력이지만 작품의 분만은 오랜 기간 활동한 선배들 못지않다. 조나단과 다미르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음악은 유기적인 리듬과 단순하게 들리지만 어딘가 튐이 있는 멜로디의 앙상블을 선보인다.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폴 앤 프라이스의 이 앨범은 데뷔작 <Sounds Like Sex>와 2007년 봄에 선보인 <Sounds Like Sex, Vol. 2 : After Midnight Music>, 리믹스 트랙을 담아 같은 해 발표한 EP <Paul & Price>에서 몇몇을 뽑아낸 모음집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누락된 노래들이 많아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음악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는 장점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팀이 말하는, 눈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인 '섹스와도 같은 사운드 Sounds Like Sex'를 다양하게 접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이들의 다운템포를 위주로 구현하는 전자 음악은 곳곳에 차가운 기운이 배어있지만 그 이면에는 강렬한 사운드의 일렉트로니카가 담지 못하는 따스함도 묻어난다. 이러한 느낌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객원 가수들의 참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관능미를 배가하는 역할까지 한다. 허스키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많은 팬을 확보한 팝/얼터너티브 록 밴드 와일드 콜로니얼스(Wild Colonials)의 리드 싱어 안젤라 매클러스키(Angela McCluskey)가 참여한 'I Adore You'는 간헐적으로 울리는 색소폰과 땡그랑거리는 종소리가 귓가를 자극하는 동시에 그녀 특유의 목소리가 적막함을 깨는 신비로운 멋을 낸다. 이 노래는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가 출연한 나이키 광고를 위해 제작된 음악이기도 한데, 영상이 공개된 이후 동영상을 게재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배경음악이 누구 노래인지 알려달라는 글이 몰려들어 폴 앤 프라이스의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중반부터 흐르는 플루트 소리가 애잔함을 더하는 'Little White Roses'의 보컬 라인은 무척 육감적으로 들리는데, 'Darling'에도 이름을 올린 토드 아이비(Todd Ivy)는 'Little White Roses'와는 또 다른 변신을 꾀한다. 여기서 갑자기 가성으로 옮기는 창법을 선보일 때에는 케이트 부시(Kate Bush)나 비요크(Bjork)의 그로테스크함이 연상될 정도, 기이하면서도 즐겁다. 완전한 록의 골격을 갖춘 'Fallen Angel'과 팝과 다운템포를 절충함으로써 선율과 무드의 접점을 찾는 'Papillion' 또한 사람의 음성에 따라 바뀌는 미묘함이 스미어 있다.

인스트루멘틀 중심의 곡에서 폴 앤 프라이스는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를 시도한다. 드럼 비트에 조금 무게를 주어 트립 합의 모양을 내는 'Lemonade', 보사노바에 구식 오르간으로 깊은 향을 가미한 'Bossa Nostra', 팔세토로 풀어내는 여성 보컬과 단출한 리듬 사이에서 뾰족하게 튀어 오르는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이 돋보이는 'Solemn Song'은 앞에서 언급한 팔색조의 이미지를 상기하게 하는 곡들이다. 짧은 시간임에도 강한 임팩트를 전달하는 'He's My Friend'는 이국적인 색채가 청각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보컬이 들어간 곡이 다운템포에 충실한 것이라면 연주곡은 다른 모양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음악적 전환을 맛보기에 좋은 작품이 될 듯하다.

폴 앤 프라이스의 음악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섹스와도 같은 사운드'라는 이들이 내건 표어는 어쩌면 사람들의 시선을 포획하기 위한 극단적인 홍보 문구로만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습하고 무거운 대기 사이를 관통하는 신비로운 흥취, 온화한 비트와 은은한 보컬이 조성하는 무한의 중독성을 직접 경험하고 나면 왜 이들이 이런 다소 노골적인 표현을 타이틀로 사용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같은 장르를 묶어 놓은 웬만한 편집 음반 부럽지 않을 만큼 실한 구성, 폴 앤 프라이스의 음악 세계를 맛보고 광활한 다운템포의 평야를 활보할 적시에 다름없다.

2008년 12월 한동윤

음반 해설지 전문


덧글

  • 2009/02/19 09:2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솔로 2009/02/19 11:39 #

    비공개 님의 글을 보고 폭소를 금치 못 하였습니다. 자극적이라서 확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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