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기억될 경이로움의 첫 기록, Stevie Wonder - Live At Last 원고의 나열

팝의 거장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를 압축해서 나타내는 표현으로 '경이'와 '새로움'이란 단어만 한 게 또 없을 것이다. 1960년대 초반 11살이란 어린 나이로 음악계의 문을 두드린 이후 반세기 가까이 되는 오랜 세월 동안 불휴의 활동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하며 세계 각지의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매번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수상자 대열에 오름으로써 음악의 작품성도 인정받아 왔다. 그리고 그가 주조한 곡들에서 재즈, 레게, 리듬 앤 블루스, 소울, 펑크(funk) 등의 흑인 음악 주요 문법이 실현되었음을 확인하고 나면 그에 대한 놀라움은 더욱 금할 수 없게 된다. 그 궤적이 이름처럼 경이의 순간이며, 경이의 기록이다.

찬탄해 마땅한 음악 세계는 새로움을 동반한다. 스무 장이 넘는 앨범을 선보였지만, 언제나 참신하며 생생한 맛을 보장해 많은 사람을 만족시켰다. 단 한 번도 그의 음악은 남루하거나 초췌하지 않았다. 신선한 멋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오는 러시아의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껍질을 벗겨도 제 모양을 잃지 않는 양파처럼 늘 한결같았다. 시대가 가고 세대가 달라져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스티비 원더의 노래가 사랑을 받고 널리 불리는 이유가 이 새로움 때문이었다. 대중음악의 모든 멜로디와 형식은 이미 다 소진하고 말았다는 냉혹한 이야기는 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듯했다.

미국, 호주, 유럽 등을 순회한 <A Wonder Summer's Night Tour>의 일환으로 2008년 가을 영국 런던의 《오투 아레나(O2 Arena)》에서 펼쳐진 공연을 담은 이 실황 역시 '경이'와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 가수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면 투어든 단발성이든 라이브 무대를 갖고 이것을 편집해서 발표하는 일이 잦은 반면에 데뷔한 지 50년이 차오르는 음악계의 위인인 그가 이제 첫 영상물을 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또한, 이와 같은 희소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완벽한 공연을 접하지 못했거나 영미권에 살지 않는 탓에 직접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에게는 초유의 경험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스튜디오 작품만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스티비 원더를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선명한 화질과 뛰어난 음질로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이다. 현장의 생생함이 느껴지는 선명한 비주얼, 게다가 돌비 디지털이 48kHz/16bit로 재생되는데 반해 이 영상물이 채택한 LPCM(Linear Pulse Code Modulation) 규격은 96kHz/24bit의 비율로 재생되기에 다른 오디오 전용 포맷보다 더 높은 음질로 감상 가능하다. 그야말로 단숨에 이목을 포획한다.

감동은 당연히 이에 그치지 않는다. 두 명의 키보디스트, 두 퍼커션 주자, 두 대의 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과 트럼펫 10명의 밴드가 이뤄내는 환상적이고 튼실한 사운드와 네 명의 백 보컬리스트의 아름다운 하모니가 스티비 원더를 도와 여기에서 상연하는 31곡의 음악을 한결 풍성하고 실감 나게 만든다. 무대 위의 뮤지션들과 관중이 조성하는 분위기를 필설로는 다 밝힐 수 없겠으나 브라운관이나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게 아쉬울 정도다. 이 영상을 접하는 사람들 누구라도 기기를 뚫고 현장으로 들어가고 싶은 치기 어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스티비 원더의 음악을 도와 왔으며 이번 콘서트에도 베이시스트로 세션에 참여한 네이트 와츠(Nate Watts)가 음악 감독을 맡은 이 공연은 철저히 음악에만 충실하고 있다. 간간이 뒤에 있는 조명 판을 통해 그래픽으로 꾸며진 시각 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평평한 세트가 갑자기 융기한다든가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레이저 조명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등의 드라마틱한 연출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여느 댄스 가수나 아이돌 그룹의 공연처럼 전문 댄서들이 등장해 역동적인 무대를 완성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스티비 원더와 연주자, 코러스 팀의 호흡은 거친 열기를 토해내서 쉴 새 없이 깜빡이는 램프와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무희들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게 한다. 그저 음악 하나로 수 만 명의 관객에게 강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All Blues'를 하모니카로 연주하며 등장해 워밍업을 하는 그는 <Hotter Than July>에 담긴 노래들로 서서히 장내에 열기를 지핀다. 업 비트의 'As If You Read My Mind'를 비롯해 밥 말리(Bob Marley)에게 헌정하는 레게 곡 'Master Blaster (Jammin')', 이 앨범의 초입을 장식하는 경쾌한 펑크(funk) 넘버 'Did I Hear You Say You Love Me', 후렴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사랑 노래 'All I Do'를 연결해 공연장의 대기를 가볍게 정제해 나간다.

잔잔한 운율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나서 토크 박스를 입에 물고 인사를 건넨다. 노래를 마치고 건조하게 이야기를 하는 여느 가수들과 달리 이런 순서마저도 음을 태워 내보내는 행동에서 음악이 삶이고 삶이 곧 음악인 스티비 원더다움이 느껴진다.

영국에서 갖는 무대인 만큼 그곳 사람들을 배려해 소리로 녹여내는 것도 별미 중 하나다. 동요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을 선곡해 웃음을 짓게 하는가 하면, 비틀스(The Beatles)의 'Fool On The Hill'과 'I Want To Hold Your Hand',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Satisfaction' 같은 영국발 거성들의 히트곡을 메들리로 들려주고 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현지인을 위한 색다른 방식의 보답이다.

30분을 넘게 달려옴에도 휴식이라곤 전혀 없다. 아니, 끝까지 쉬지 않고 달리니 이것도 또 하나의 '경이'다. 장기간 라이브 무대를 서면서 단련이 된 가수라 할지라도 누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노래가 끝나면 바로 다음 노래에 몰두한다. 그나마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가 칙 코리아(Chick Corea)의 재즈 연주곡 'Spain'의 합주다. 여기서 밴드 멤버들을 소개하는데, 각 세션 연주자들의 기교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이들의 탄탄한 화합 덕분에 공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무척이나 근사해서 어깨를 들썩이지 않고는 못 배길 연주다.

관객들에게 호응을 이끌어내고 참여형(形) 공연으로 만드는 능력으로 인해 즐거움은 계속해서 상승한다. 미국에서만 1,000만 장 이상 판매된 더블 앨범 <Songs In The Key Of Life>의 'Knocks Me Off My Feet'를 부르는 끝 무렵에는 스티비 원더와 객석의 모든 사람이 스캣을 주고받음으로써 열띤 분위기를 형성, 교회에서 찬양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연상되며, 'Part-Time Lover'는 모두가 파트를 나누어 도입부를 열창해 하나가 되고, 'My Cherie Amour'를 합창할 때에는 그는 반주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노래를 각각 선물로 나누는 것처럼 보여 유쾌하다.

친딸 아이샤 모리스(Aisha Morris)와 함께 만드는 무대 또한 감동으로 다가설 듯하다. 공연 시작할 때 스티비 원더의 팔짱을 끼고 함께 나온 백업 코러스의 일원이 바로 그녀다. 아버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사이 콜맨(Cy Coleman)이 작곡한 스탠더드 재즈 'I'm Gonna Laugh You Right Out Of My Life'를 솔로로 열창하는 것도 멋있지만, 'Isn't She Lovely'를 부를 때 카메라 앵글이 그와 아이샤의 얼굴을 함께 잡는 순간의 그림이 꽤 아련하게 느껴져 전과는 상이한 감동을 전한다. 앞을 못 보는 아빠가 딸을 두고 '그녀가 사랑스럽지 않나요? 난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내용의 가사는 기쁨과 애틋함의 감정을 교차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첫 DVD라는 반가움도 크지만, 어떤 면에서는 섭섭해 하는 이도 꽤 될 것 같다. 세트 리스트가 무려 30여 곡이나 됨에도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많이 모자란 양이기 때문이다. 개개인마다 스티비 원더와 매치하는 자기만의 애청곡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1999년 출시된 <At The Close Of A Century> 같은 네 장짜리 박스 세트가 아닌 다음에는 백인(百人)의 취향을 모두 아우르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에 자신이 선호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아쉬워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다.

소중히 여기는 노래의 누락 때문에 발생하는 서운함은 아마도 잠시 동안일 것이다. 살아 있는 전설의 공연을 감상하고, 소장한다는 기쁨이 이를 씻고도 남는다.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미국의 새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선거 캠페인 노래로 쓰이며 다시금 많은 이의 입으로 전해진 1970년의 히트곡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사랑의 인기 테마로 남을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넘실거리는 리듬의 향연이라 할 'Superstition' 같은 골든 레퍼토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헛헛한 감이 다소 있더라도 금세 상쇄될 수밖에 없다.

두 시간 넘는 상영 시간이 그 반도 안 되는 것처럼 짧게 느껴질 정도로 공연은 대규모의 흥분과 고온의 환희를 안긴다. 또한, 시종을 정열적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들도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Live At Last>는 그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가인지, 그가 지휘하는 공연이 얼마나 펑키한지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시청각 체험 현장이 된다. 스티비 원더와, 그리고 그의 음악과 교분이 두터운 사람일지라도 이 콘서트를 현람한 뒤에는 다시 한 번 새로움을 느낄 것이다. 팽팽한 리듬과 유려한 선율이 신선한 영상으로 기록되었기에 그 경이의 역사는 계속된다.

글 / 한동윤

DVD 해설지 전문


덧글

  • 땅콩 2009/03/30 13:52 #

    갖고싶네요!!! 한솔로님 해설 보니까 더욱더!
  • 한솔로 2009/03/31 13:58 #

    사세요~~!! 이런 건 질러 줘야 합니다.
    언제 또 공연 비디오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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