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RAMA), 의식성과 자신만의 어법을 겸비한 랩 저널리스트의 두 번째 고찰 원고의 나열

음악은 철저히 사람들의 감성에 복무하는 예술이다. 세상 그 어떤 음식보다 당도 높은 멜로디로 듣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기도 하며, 가슴 한구석을 절절 끓게 하는 선율로 애잔함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기능을 하는 것은 단지 음표들로 이뤄지는 곡조뿐만이 아니다. 앰비언트는 황량하고 우울한 심리 상태를 대변하고 업 비트의 댄서블한 곡들은 기쁨을 증가시키는 동반자로, 혹은 슬픔을 감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음악은 이런 요소를 통해 청취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증여한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이 꼭 감성에만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정서의 구체적인 표현을 담보하는 노랫말이 들어가는 대중음악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꿈에 그리던 사람과의 만남, 이별, 과거 연인과의 재회 등은 전체 대중음악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사랑 노래의 보편적인 제재가 되어 왔기에 여전히 감성 지향적인 작품이 대다수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이가 간과해 왔던 실상을 들춰내고, 권력의 남용으로 소외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을 조명하고,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일들을 꼬집는 가사를 녹여내 사유를 부추기는 노래도 존재한다.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인 이성(理性)에 청원하는 것이다.

랩 음악은 그래서 중요하다. 유희의 일환으로 출발하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적 이슈와 정치 문제를 언급하며 비판의 각을 높이 세움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을 자각하고 변혁의 기운을 고취하는 장르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힙합 팬들에게나 팝 음악 역사에서나 명곡으로 통하는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Fight The Power'가 대표적인 예, 최근의 세븐쓰 옥타브(The 7th Octave)나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 소말리아 출신의 래퍼 케이난(K'naan) 등은 남녀의 애정사만이 만연한 음악계에서 부지런히 사회상을 다루며 미약하게나마 이성과 소통하려는 움직임을 행하고 있다.

음악 시장의 규모가 큰 외국마저도 이런 내용을 전하는 뮤지션들이 소수이니 우리나라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수많은 래퍼가 연정을 주된 소재로 꺼내들고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 스타일만을 좇는 데 급급하거나 기껏해야 자아 탐구에서 비롯된 뜬구름 잡는 식의 관념어만을 탕진하는 사례가 잦아진 대한민국에서 정치사회적인 견해를 직설 화법으로 전달하는 '라마(RAMA)'는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된다.

데뷔 앨범을 낸 지 4년이 넘었지만 국내 힙합의 열광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아직 많이 생소한 인물일 듯하다. 유희재가 본명인 1981년생의 이 래퍼는 1990년대 후반부터 러프 스터프(Rough Stuff)라는 팀으로 클럽 공연을 해 오다가 2005년 군 제대 후 자체 제작한 앨범 <전형적인...>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힙합 신에 첫발을 내디딘다. 재치 넘치는 언어와 다수의 공감을 사는 소재의 편성으로 흥미를 제공하는 동시에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부익부빈익빈 현상과 잘못된 정치 행태를 유감없이 짚어냄으로써 세상을 반영하는 임무도 충실히 수행했다. 2005년에 출시된 음반 중, 아니 새천년에 탄생한 힙합 앨범들 중 주목받아 마땅한 수작이었다.

같은 해 11월, 동료인 팔로알토(Paloalto), 지엘비(GLV), 소울 원(Soul One), 테비(TEBY), 사마 디(Sama-D) 등과 함께 개화산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선택>을 내며 힙합 신에서의 약진을 지속한다. 그해 말에는 프로듀서 에이조쿠(Aeizoku)와 함께 <전형적인...>의 리믹스 판인 <RAMA+Aeizoku: 전격적인>을 공개하며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정력적인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 2월 <Gene Recombination>과 6개월 후 <RAMA Presents STG Is The Future>에 이르는 비정규 작품으로 유쾌한 어휘 구사와 익살스러움을 과시했고 대외적으로는 국내 힙합 필드에 믹스테이프 붐을 일으키는 데 큰 공을 세운 그였다. 2007년 여름에는 그가 결성한 또 다른 그룹 칠린 스테고(7人 ST-Ego)의 <Lucky #7> 앨범으로 이전보다 대중성을 강조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으로 창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운 인물로 라마를 기억하는 이도 많다.

이후 1년 가까이 소식은 뜸했다. 유머와 진지함을 완벽하게 조합한 첫 앨범의 수려함이 차기작으로 계속되기를 기대하는 팬들의 바람은 점점 커져 갔다. 그나마 2008년 9월 디지털 싱글인 <7막 7장>으로 숨죽여 왔던 존재는 확인 가능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히 해소될 수 없었다. 귀에 잘 들리고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을 찾는다면 주변에서 손쉽게 발견 가능했을 터, 그러나 라마의 노래는 그 이상의 매력을 보유했고, 감성뿐만 아니라 이성의 창을 두드리는 메시지로서 다른 힙합 뮤지션들과 구분되는 것이었다.

다시금 라마 표 음악의 특장(特長)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무려 4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 2집 <Live For Today>는 라마 특유의 재기 발랄한 표현과 사회를 반영하는 무게감 있는 전언으로서의 내용이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다. 1집 수록곡 '병'의 도입부로 시작하는 '악인은 잘도 잔다'는 비리와 잘못된 행각을 저지른 정치인들이 죗값을 치러야함을 역설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하며, '10월 1일'은 학원 폭력을 매개로 법보다 돈과 권력이 더 강한 힘을 갖는 한국의 문제점을 내보인다. 에스코(Esco)와의 듀엣곡 'R.A.P (Resistance Against The President)'에서는 국민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는 현 정부의 막무가내식 통치에 대해 일갈을 날리고 '7막 7장'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자며 시원하게 랩을 펼쳐 나간다.

이와 같이 자신의 줏대를 굳게 세워 돌격성과 저항을 드러냄에도 부담 없이 들리는 것은 그의 가사와 연출하는 라임에 늘 경쾌함을 잃지 않는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봤대 (No One Mix)'의 후반부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 듀스의 '나를 돌아봐' 등 기존 히트곡들의 가사를 재활용해 끝까지 재미를 유지, 가공하는 것은 라마 특유의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라면라마'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조리법을 열거함에도 신화 속 인물을 대동해 흥미를 유발하는가 하면, 각 라면 제조 회사를 일일이 거론하며 청취자 경험에 밀착하는 기분의 일치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삶에 관한 고민, 생활을 돌이켜보는 이야기를 담아 다수가 공감할 만한 내용을 탑재하려는 노력도 놓치지 않는다. 보컬로 도움을 주는 갱자의 청명한 음성이 돋보이는 '지금을 살아라'는 학업, 사랑, 군대에 대한 기억을 묶어 이야깃거리를 확장한다. '달콤한 데이트'는 연애할 때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법한 설레는 마음과 갑작스런 이별 통보에 대한 반전을 두어 상실감을 강조해 연모의 이중적인 면을 보여준다. 데뷔작 중 '낭만의 인명록'이 그가 래퍼로 활동 하면서 접해 온 힙합 신의 서술이라면 '소년R'은 시제를 그보다 더 과거로 옮겨 랩을 처음 접했을 당시의 상황과 그때 품었던 꿈에 대해 열거해 마니아들과 체험을 교환한다.

감성의 기운을 나누는 음악은 많다. 라마의 랩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일부분 할애하지만, 이에 경도되지 않고 이성의 귀를 두드리는 노력을 수반해 다른 뮤지션들과 구분되는 독자성을 획득한다. '신기루'의 가사처럼 자신을 '펜과 마이크를 거머쥔 랩 저널리스트'로 규정하며 잠시 잊고 지내던, 혹은 인식에서 멀어진 세간의 사각지대를 언급하고 관심의 환기를 유도한다. 오락과 가벼움만을 희구하는 요즘, 인기를 위해 중독성에 탐닉하고 번지르르한 외양에만 몰두하는 힙합이 대세가 된 시기에 '의식성'과 '독특한 어법'이 튼실하게 배어든 그의 음반은 어떤 작품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첫 자취 이후 이번에도 그 매력은 계속되고 있다.

2009/06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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