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Jinbo) - Afterwork 원고의 나열

훌륭한 달란트를 지녔다고 해도 이것이 꼭 성공과 명예의 길로 자신을 인도하지는 않는 법이다. 실력이 뛰어남에도 음악에 대한 고집으로 막대한 흥행에는 늘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음악을 좀 쉽게 만들면 나을 텐데' 또는 '조금이라도 절충을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똬리를 튼다. 연주, 래핑, 노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미셸 엔디지오첼로(Meshell Ndegeocello), 자신의 사상을 음악에 녹여내 사회 변화와 혁신을 부르짖는 마이클 프란티(Michael Franti) 같은 뮤지션들이 대표적이다. 대중성이 부족해 멋진 음악 세계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는 이들이다.

진보(Jinbo, 한주현)의 정규 데뷔 앨범 <Afterwork>도 자기 음악에 대한 강한 집착이 느껴진다. 그래서 달리 말하면 대중적이지는 못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그가 여기서 추구하는 스타일이 듣는 이가 평소 좋아하던 양식이 아니라면, 감성 온도를 스스로 변경해 맞추지 않는 이상은 편하게 다가서지는 못할 것 같다.

앨범은 '몽롱한(spaced out)'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힙합의 동일한 리듬을 반복하는 특징은 똑같으나 전자음이 들어가 차가운 기운을 탑재하며 그것들의 조화로 신비감 있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힙합. 사라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즈(Sa-Ra Creative Partners)와 킹 브릿(King Britt)으로 대표되며 브로큰 비트(broken beat)로의 발화 전 단계에 위치하는 스타일로 영국 BBE 레코드사에서 기획, 제작한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시리즈가 이를 주도했다. 진보도 트렌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음악을 취택해 펼친다.

이쪽 형식이 느슨함을 전면에 내걸지만, 그는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게 소리와 구성을 잘 조절하고 있다. 'Move On/Are U There?', 'One Night Stay/In My Room'처럼 다른 주제를 한 곡 안에서 한꺼번에 선보임으로써 음악을 팽팽하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변주를 거듭하는 가운데 코러스까지 과장해서 풀이해 그로테스크한 멋을 완성한 'U R', 볼륨과 피치의 변화를 통해서 재미를 주는 '달아달아', 브라스, 신시사이저, 순화한 드럼 앤 베이스 비트의 혼합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흐름을 내보이는 'Midnight Cruisin'' 등은 프로듀서로서 재능을 과시하는 곡들이다. 쿨 앤 더 갱(Kool And The Gang)의 'Summer Madness'를 빌려 와 너른 공간감을 연출하는 '어지러워'는 앨범의 백미, 후반부에서도 타이트함을 잃지 않는다. 비트 공인(工人)으로서 빼어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간간이 들어가는 샘플링 음원, 번갈아서 삽입한 랩과 노래로 한층 밀도를 높이는 것도 특징이다. 리듬 앤 블루스 보컬리스트로 잘 알려진 진보이지만, 2005년 출시한 EP <Call My Name> 중 '너의 Man', 콰이엇(The Quiett) 3집 <The Real Me>의 '뛰어가'에서 랩을 들려줬던 그가 다시금 래퍼로 모습을 재현해 다채로움을 확보한다. 반주의 지향이 워낙 또렷한 탓에 보컬이 들어간 곡들이 그리 튀지 않아 아쉽긴 해도 '걱정하지마', '너없는', 'Lovin''에서는 그의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감긴다.

완연한 인스트루멘틀 힙합이 아니면서 보컬 앨범이라는 인상을 안기지 못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강한 사운드를 내고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하는 중독성 있는 훅으로 이뤄진 노래도 없고 언제나 저류에 머물 것만 같은 스페이스트 아웃 힙합을 틀로 잡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힙합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즐길 대상은 못 될 것이 뻔하다. 진보 본인도 그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인기와 상업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선보인다. 뮤지션이라면 이런 줏대는 있어야 한다. 멋스런 고집이다.

보컬리스트, 래퍼, 비트 메이커로서 그가 지닌 솜씨를 유감없이 드러냈으나 다수 흑인 음악 마니아를 현혹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보편적인 기호를 아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역량을 응집했다는 점과 중심 있는 선택을 했다는 사항은 음반을 귀하게 포장한다. 음악계에 뛰어든 이후 10년에 달하는 긴 세월을 에돌고 출시하는 정규 데뷔작이기에 그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 역시 남다르지 않을까 하다. 히트와는 방향을 달리 했어도 그의 달란트는 작품 안에서 충분히 빛나고 있다.

2010/01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Shamon 2010/01/09 09:47 #

    저는 진보의 음악을 굉장히 대단하게 들었는데 말이죠.

    그쪽 장르는 잘 모르겠지만, 어 이정도면 알찬 앨범아닌가...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모르더라는...OTL
  • tag 2010/01/09 15:48 #

    음... 요즘 심심찮게 이름이 보이는 것 같던데...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정답이겠네요. 대중적이지도, 마니아도 끌어들이지 못하는 음악이라니... 궁금하네요. :)
  • AbsoART 2010/02/25 03:57 # 삭제

    전 되게 좋게 들었어요. 일반적인 힙합음반과도, 알앤비음반과도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랩, 비트, 노래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기울지 않고 작품을 만든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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