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se De Racket, 록과 일렉트로니카의 결합 위에 펼쳐지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원고의 나열

일렉트로니카, 록, 프렌치 팝 등이 유쾌하게 버무려진 우스 드 라켓(Housse De Racket)의 데뷔작은 오랜 산고 끝에 완성됐다. 어렵게 만든 음악을 저장해 놓은 하드 드라이브를 날려 버리는 대형 사고를 겪은 이들은 모든 것을 새롭게 제작해야 했고 아이디어를 재검토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결과는 전에 구상했던 것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치밀하며 호전적인 작품으로 나타났다. 첫 작품부터 콘셉트 앨범이라는 사실이 이를 일러 준다.

2008년 10월 출시되었고 2010년 1월 국내에 라이선스된 본 작품은 테니스, 록 음악, 타향살이 등을 소재로 한 남자의 혼란스러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머리가 배추로 변하는 변태 살인마를 소재로 한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의 <L'Homme à Tête de Chou>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듣는 공상과학물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처럼 듀오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작들 같이 무게감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젊은이들의 감성과 소통할 수 있도록 형식 면에서 조금은 힘을 뺐다.

이야기는 밝지 않다. 한 테니스 선수가 그웬돌린(Gwendoline)이라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온전하게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자 그녀의 관심을 사기 위해 운동을 그만두고 가수가 되어 돌아온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스타로 변신했음에도 그웬돌린은 여전히 냉랭함으로 일관할 뿐이다. 거기에 상처받은 남자는 어찌할 줄 몰라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결국에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길을 선택한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진부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짰다는 게 사랑 노래 특유의 상투성을 벗어 던진다. 결말은 비록 어두울지라도 나름대로 참신함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은 반대로 꽤 밝고 흥겨운 편이다. 가벼운 맛으로 가사에서 오는 무거움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Forty love, I want your love'라는 가사를 감춘 듯이 전달하는 인트로 격의 첫 곡 'Forty Love'를 들으면 넓은 규모의 장대한 일렉트로니카가 나오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록의 비중이 더 큰 노래를 감상하게 된다. '난 미래를 위한 엄청난 계획이 있어. 그녀에게 어필하기 위해 난 이런 인물이 될 거야. 스티비 원더, 잽 앤 로저,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아이즐리 브라더스…'라고 미래를 다짐하는 경쾌한 록 넘버 'Oh Yeah', 현장감이 느껴지는 연주로 흥을 돋우는 'Gwendoline', 펑크로 방향을 바꿔 단순미를 한껏 과시하는 '1-2-3-4'는 록에 열광하는 청취자들에게 소구력을 보일 것 같다. 특히, 'Oh Yeah'는 라코스테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면서 유럽 각지에 팬들을 확보하는 데 공을 세웠다.

가사와 다양한 스타일의 전개가 빚는 향연은 다른 곡에서도 발견된다. 그웬돌린에게 고백하는 내용을 그린 'Champions'는 2분을 지나 나오는 기타 솔로와 합창, 신시사이저의 삽입 등 아트 록적인 면모를 풍기는 변주가 무척 멋스럽다. 테니스를 관두고 록 스타가 되어 돌아와 무대에 선 모습을 표현하는 'Synthetiseur'는 전자음악과 록의 차진 배합으로 강한 흡인력을 나타낸다. 또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다프트 펑크의 'Veridis quo'와 교차되는 'Dans L'avion'은 '우주를 유영해요. 자줏빛 구름과 노란 구름 사이에서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을 찾고 있죠. 우주 바깥의 깊은 곳에서 난 길을 잃고 말았어요'라며 사랑에 실패한 이의 씁쓸한 심정을 나타내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주인공의 심경을 읽을 수 있는 'Le Virage'는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여운을 남긴다.

음악을 접하고 나서도 그룹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팀 이름은 '라켓 커버'라는 뜻. 'housse'가 영어 'house'와 철자가 비슷해 하우스 음악을 아우른다는 의미를 내포하려는 목적에서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타이틀 <Forty Love>의 작명에서도 재치가 드러난다. 테니스 경기에서 포인트는 '0(러브, love)', '15(피프틴, fifteen)', '30(서티, thirty)', '40(포티, forty)' 이런 식으로 매겨진다. 서버의 점수를 먼저 부르는 방식에 따라 포티 러브라고 하면 40:0의 스코어로 서버의 통쾌한 완승을 가리킨다. 음악계를 지배하겠다는 자신감과 자축의 메시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데뷔작은 그룹만의 강직함과 스타일을 확실히 드러낸다. 대중성을 전면에 두고 어떻게든 이름을 알려 보려는 것이 보통 신인들이 하는 생각이며 태도인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듯 두 청년은 콘셉트 앨범과 록, 전자음악의 퓨전이라는 고집스런 선택을 했다. 동네의 한 음악 학교에서 만난 소년들이 친목 이상으로 이룬 훌륭한 결과가 여기에 담겨 있다. 통쾌한 완승을 노리는 멋진 신고식이다.

2009/11 한동윤

음반 해설지를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