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과 생각들 2010-11 불특정 단상


(음악이라도 밝은 것 듣자)

01
며칠 동안 뉴스에서는 어두운 얘기만 그득하다. 초계함 침몰에, 최진영 씨 자살 소식에, 이런저런 사건, 사고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들만 내내 나와서 괜히 내 기분마저 침울해지는 것 같다. 밝은 기운이 넘쳐 나야 할 소생의 절기에 소멸의 일만 범람하는구나. 안타깝다.

02
어떤 연예 프로그램에서 최진영 씨의 빈소를 촬영하는데 고인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지금 심경이 어떠세요?'라고 질문하더라. 그걸 꼭 대답을 들어야 알겠나. 어이가 없었다. 그거 촬영한다고 퓰리처상이라도 받나? 개념을 돈꾼형으로 쪽쪽 빨아 잡숫고 살았나 보다. 뭘로 맞아야 정신을 차릴까?

03
생애 처음으로 전동차 문의 공격을 받았다. 원체 급하게 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횡단보도 신호등의 파란불 게이지가 반쯤 떨어져 있으면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계단을 내려갈 때 열차가 도착해 있는 걸 보더라도 절대 뛰지 않으며 살았다. 어제 지하철을 타려고 승강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마침 열차가 와 있었다. 계단을 다 내려갔는데도 열차 문이 닫히지 않아서 타도 되겠다 싶었다. 보통 걸음으로 걸어가 열차 안에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전동차 문이 양 어깨를 때렸다. 그 힘이 꽤 세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의 희생으로 뒤따라오던 한 아주머니는 유유히 열차에 탈 수 있었으나 내 몸에는 이미 쪽팔림의 피가 들끓고 있었다. 냉큼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수 초가 지나니 이상하게 짜릿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오~ 이 느낌 나쁘지 않은데?' 하며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에 '문에 일부러 끼이면서 전철 타는 걸 즐기는 사람'으로 방송에 나올지도 모르겠다.

04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 만우절은 크리스마스만큼이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날이었다. 심하지만 않다면 모든 장난은 용서가 되고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즐겁게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장난을 칠까?' 생각하며 마냥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장난기가 유독 심했던 탓에 한 번은 친구 두 명을 저승사자에게 인계할 뻔하기도 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 하나 기억나는 건 다른 사람의 장난으로 피해를 입은 일이다.

중학교 때였다. 어린 승냥이들이 득시글한 남자 중학교였던지라 노는 것 자체가 무척 과했다. 전투 말뚝박기에, TNA가 무색할 정도로 유혈이 낭자하는 프로레슬링을 서슴지 않았다. 놀다가 뼈가 부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곳에서 만우절 장난은 사람만 안 죽이는 수준으로 심하게 자행되었다. 아마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부반장은 만우절을 그냥 넘기면 항문에 가시가 돋칠 것만 같았는지 안절부절못했다. 만만한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희생양으로 결정된 인물은 당연히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사랑의 매라곤 들어 본 적 없는 여자 도덕 선생님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부반장은 바깥에 나갔다 오더니 음흉한 미소를 띠며 뒷문으로 들어왔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 녀석이 어떤 장난을 쳐 놨을까도 궁금했다. 5, 4, 3, 2, 1, 땡! 미닫이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하게 열렸다. 그리곤 들려 온 남자의 살의를 띤 목소리. "어뜨언 수웩뀌야?!!!!!!!!!!!!!!!!!!!!!!!!!!!!!!!!!!!!!" 입에서 불이라도 나올 기세였다. 아뿔싸, 가끔 예고 없이 수업이 교체되는 사례가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 그것도 수학 선생님 앞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또 한 번의 고성이 들렸다.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은 채로 반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사랑이 듬뿍 담겨 쫀득쫀득하게 달라붙는 사랑의 매를 처.맞.았.다. 그런데 맞으면서도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이 문을 열고 첫 멘트를 날리는 순간 오른손을 들어 보였을 때 목격한 장난의 소품 때문이었다.




오른손 손등을 타고 흐르던 그 엄청난 양의 가래 덩어리들이란...

덧글

  • 딸뿡 2010/03/31 19:51 #

    으악. 마지막 그 덩어리들 자꾸 상상하게 돼요 ㅠㅠ
    그러고보면 학창 시절의 만우절은 두근두근 설렘의 절정이었다니까요.

    가라앉은 기분이 마지막 만우절 에피소드로 그야말로 꽈당.
  • 한솔로 2010/04/01 16:45 #

    어쩔 수 없이 남은 가공의 형상들이 빨리 사라지길 바랄게요. 며칠 동안은 묽은 음식을 드실 때마다 생각 날 수도 있어요... 만우절인데 재밌는 일 하나 안 터지네요.
  • Run192Km 2010/04/01 00:22 #

    연예인 죽으면 지들은 신났는지 사진이나 계속 찍어대고 있고..
    매우 별로죠..;ㅅ;
  • 한솔로 2010/04/01 16:46 #

    좋게 봐 줘야 투철한 직업 정신이 되겠지만 무례하고 생각 없는 행동이죠.
  • 국화 2010/04/01 14:51 #

    아아 진짜 밑에글괜히읽었다아
    이번엔 머라이어캐리언니네요 :)
  • 한솔로 2010/04/01 16:48 #

    피해자가 한 명 더 늘어났군요. 본의 아니게 안 좋은 기분을 안겨 드려 미안해요. 머라이어 캐리 언니를 한 번은 메인 사진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제야 실현에 옮겼어요. (그런데 원본 사진은 다리가 너무 짧아서 아주 조금 늘려 줬어요.)
  • 뇌를씻어내자 2010/04/05 12:45 #

    변태. ㅡ,.ㅡ
  • 한솔로 2010/04/06 13:31 #

    남자들만 있는 곳에서는 지저분한 장난도 부지기수라죠.
  • Makaveli 2010/04/07 17:44 #

    전 제발 만우절에 자주 연락도 안하는 여자 동생이나 친구가 전화 와서 나 이번에 결혼해...이 드립만 안쳣으면 좋겟네여..뭔 레파토리가 맨날 똑같에여..도통 속아줄수가 없어요 -0-
  • 한솔로 2010/04/07 19:12 #

    하하~ 드립이라고 하니까 그 뻔한 장난의 어이없음이 더 살아나는 듯하네요. 저는 결혼한다는 참 소식이 너무 많이 들려와서 괴롭습니다. 죽을 맛이에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