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힙합의 온전한 융화, Guru - Jazzmatazz, Vol. 1 원고의 나열

재즈 힙합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활성화되었으나 서로 다른 두 장르를 교합하려는 시도는 1980년대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랩이라는 수단을 동반하지 않았지만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은 1983년에 발표한 <Future Shock>에서 힙합의 자양분이 되었던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 초기의 턴테이블리즘과 재즈를 버무린 음악을 선보였고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1989년 출시한 <Back On The Block>에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 아이스 티(Ice T) 같은 래퍼들을 초빙해 재즈와 랩 음악의 혼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1988년에 나온 스테차소닉(Stetsasonic)의 'Talkin' all that jazz'가 인기를 누리고 나서 얼마 후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어스쓰리(Us3), 디거블 플래닛츠(Digable Planets) 등이 배턴을 이어받아 재즈 힙합의 공식적인 붐을 일으켰다.

이들 음악의 대부분은 재즈와 힙합의 균형 있는 결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재즈 연주곡의 일부를 추출해 곡을 만들거나 적극적으로 관악기를 활용해 재지(jazzy)한 분위기는 냈으나 '재즈 느낌이 나는 힙합'이라는 부분에서 재즈 힙합이라고 지칭할 뿐이었지 재즈가 지닌 멋과 랩의 매력을 온전히 살린 퓨전 음악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마지막 앨범에 실린 'The doo bop song'만이 그나마 재즈와 랩의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 줬을 뿐이었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랠 작품을 만나는 데에는 다행히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tep In The Arena>와 <Daily Operation>으로 미국 힙합 황금기를 장식하며 동부 힙합의 거성이 된 갱 스타(Gang Starr)의 엠시 구루(Guru)는 1993년 재즈다우면서도 랩 음악다운 면모를 동시에 보여 주는 힙합을 세상에 공개한다. 그의 주도하에 제작된 재즈 힙합 프로젝트 <Jazzmatazz> 시리즈의 첫 작품은 재즈와 힙합의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어울림을 음반 전체에 드러냈다.

기존에 나온 재즈 연주 음악을 재가공해 반주를 구성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고 거의 모든 곡을 실제 악기로 만든 점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재즈 기타리스트 로니 조던(Ronny Jordan), 트럼페터 도널드 버드(Donald Byrd), 색소포니스트 코트니 파인(Courtney Pine)과 개리 바너클(Gary Barnacle) 등 기라성 같은 명연주자들의 참여 또한 음악의 품질을 상승시킨 요소였다. 각 수록곡에서 이들의 연주는 구루의 랩에 보조를 맞추며, 때로는 대결하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잼(jam)을 하듯 자유롭게 흐르기도 한다. 랩과 함께 시종 트럼펫 연주가 이어지는 'Loungin'', 후반부로 갈수록 공격적으로 뻗어 나가는 색소폰이 인상적인 'Slicker than most', 색소폰과 플루트의 뒤섞인 연주가 노랫말이 내는 황량함을 배가하는 'Sights in the city'가 일련의 특징을 대표한다.

브랜드 뉴 헤비스(Brand New Heavies)의 엔디아 데이븐포트(N'Dea Davenport)와 칼린 앤더슨(Carleen Anderson), 디시 리(D. C. Lee)의 음성은 랩만으로는 자칫 팍팍해질 수 있는 위험 요인을 거둬 내는 역할을 했다. 구루의 낮은 톤이 안정감은 있으나 후련하게 다가서는 편은 아니기에 이들 여성 보컬리스트가 참여한 노래에서는 한결 가벼운 멋을 감지하게 된다.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The Love Unlimited Orchestra)의 'Satin soul' 샘플과 로니 조던의 명징한 기타 리프 위에서 펼쳐지는 코러스로 싱긋한 분위기가 나는 'No time to play'와 엔디아의 목소리로 인해 감미로움이 면면에 묻어나는 세레나데 'Trust me'는 그래서 무척 대중적으로 느껴진다.

앨범의 진가 중 다른 하나는 랩과 음악의 야릇한 조화다. 건조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펼쳐 나가는 구루의 래핑은 수록곡들이 내보이는 탁한 공기, 밝다고는 할 수 없는 기류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음악을 들으며 뿌연 연기가 가시지 않는 라이브 클럽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면 아마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하다. 힙합의 느낌도 살리면서 재즈 하면 연상되는 특유의 그림과 그 음악이 오롯이 나타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재즈와 힙합의 견고한 화합은 안타깝게도 다음부터 급격하게 쇠하기 시작했다. 2년 뒤에 낸 <Jazzmatazz, Vol. 2: The New Reality>는 전작의 공법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며 신선한 변화를 보이지 못했고 새천년에 발표한 <Jazzmatazz, Vol. 3: Streetsoul>은 'Keep Your Worries'와 'Plenty' 같은 좋은 멜로디의 곡을 들려주었으나 거친 질감의 재즈 랩을 원하는 이들의 바람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했다. 2010년 4월, 폐암에 따른 사망으로 마지막 연작이 되고 만 2007년의 <Jazzmatazz, Vol. 4: The Hip-Hop Jazz Messenger: Back To The Future>는 보통 힙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음악이었기에 경쟁력마저 없었다.

끗발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구루는 <Jazzmatazz>를 통해 그의 동료이자 비트 장인인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가 없어도 충분히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 기획물로 래퍼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곡 만들기와 프로듀싱에도 출중한 재능이 있음을 대대적으로 알린 셈이었다. 게다가 재즈 랩이라는 특화 상품으로 신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게 다질 수 있었다. 재즈와 힙합 이 두 장르의 매력이 온전히 융화, 공존하는 작품은 1990년대에서는 <Jazzmatazz, Vol. 1>이 거의 유일한 것이었다.

2010/04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doobie 2010/04/25 17:15 # 삭제

    아마 후련하게 하는 랩 스타일 자체를 구루는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보통의 힙합뮤지션들과는 좀 다르게, 구루는 뉴욕대 출신의 나름 엘리트였다는 점도 이런 음악적 성향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었습니다.
  • 한솔로 2010/04/26 12:09 #

    어찌 보면 그게 구루만의 특기로 작용했죠.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의 음악에서는 곡과 전혀 안 어울리는 래핑일 수도 있겠어요.
  • doobie 2010/04/25 17:21 # 삭제

    그리고 퀸시 죤스가 랩을 도입한 것은 1989년보다 훨씬 일찍 "the dude"(1981)앨범에서 시도되었죠. (동명타이틀곡에서) 랩이 동반하지 않은 훵-소울적인 어프로치는 허비행콕의 70년대부터 꾸준히 천착되었던 것이구요.

    퀸시 죤스나 구루의 어프로치는, 물론 곡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즈적인 어프로치보다는 아마 네오소울 계통의 뮤지션들의 뿌리인 70년대 올드스쿨적인 요소의 도입이 강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당시 소울뮤직에는 분명 재즈적인 코드진행이나 요소가 다분했지만요. (CTI같은 레이블에서 나온 수 많은 재즈뮤지션들의 음악이나 GIL SCOTT HERON같은 뮤지션들의 음악, 혹은 LEON WARE같은 음악이 소위 '재즈힙합"이나 '애시드재즈'의 원류이겠지요)
  • 한솔로 2010/04/26 12:15 #

    두비 님 덕분에 음악 글에 덧글이 많이 달려 좋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허비 행콕이 재즈에 펑크를 접합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초기의 힙합에서 본다면 퓨처 쇼크가 그것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겠고 퀸시 존스의 듀드 앨범은 리듬 앤 블루스 이상의 성격은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힙합과 재즈가 다른 스타일이라고는 했지만 한가족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고 모두 같은 흑인음악이라는 점에서 출발하면 재즈 힙합에 대한 원류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안 해도 되는 논제일지도 모르겠어요. 재지한 힙합, 재지한 소울 이렇게 나아가는 것도 특이할 것이 없기도 하고요.
  • yjhahm 2010/04/25 19:21 #

    잘 읽었습니다. 트랙백을 걸어보았습니다.
  • 한솔로 2010/04/26 12:15 #

    네, 감사합니다. 글 잘 봤습니다. ^^
  • tag 2010/04/25 20:46 #

    아... 이거 좋겠네요. 꼭 한 번 들어봐야겠습니다. :)
  • 한솔로 2010/04/26 12:16 #

    음원도 스트리밍 사이트에 거의 다 등록되어 있을 거고요, 음반도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
  • tag 2010/05/12 14:33 #

    하아~ 이제서야 듣고 있는데, 단 한 곡도 버릴 곡이 없네요. 너무 좋네요. 정말 감동입니다. ㅠ ㅂㅠ 한솔로님, 감사합니다.
  • 한솔로 2010/05/12 15:11 #

    아유~ 감사는요 무슨. 구루에게 고마운 거죠. ^^
  • 잠곰 2010/04/26 11:52 # 삭제

    아 갑자기....................

    이 앨범 리뷰를 보니까 1996년 홍대앞 모 술집도 떠오르고.
    갑자기 20세기의 모든 기억이 훅 하고 불어날린 먼지처럼 풀썩 일어나는 기분이네요.

    아 정말 이 앨범 마르고 닳도록 어어어어엄청 들었었는데. 어흥.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한솔로 2010/04/26 12:17 #

    추억을 끄집어내는 글이 됐군요. 좋은 기억이었길 바랍니다.
  • 잠곰 2010/04/26 11:53 # 삭제

    잠시, 그런데 댓글 보다 보니 구루가 사망했나요?
    어므나아. 이런.

    R.I.P. 구루-
  • 한솔로 2010/04/26 12:18 #

    네, 미국 날짜로 4월 19일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사망 소식이 끊이질 않네요.
  • doobie 2010/04/26 13:59 # 삭제

    네 동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back on the block"이 "the dude에 비해서 딱히 재즈적이냐 하는 얘기인 것이죠. ^^ 동일선상에 있다고 보거든요. ROD TEMPERTON-QUINCY JONES-BRUCE SWEDIEN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리듬앤블루스.
  • 한솔로 2010/04/26 19:11 #

    네, 그런 면에서는 온전한 재즈라고 콕 집을 수는 없겠죠.
    아무튼 듀드 앨범은 정말 비단결 같이 고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doobie 2010/04/26 14:03 # 삭제

    좀 다른 얘기(제가 좋아하는 ^^)지만, 우리나라 재즈연주인들에게 항상 아쉬운 부분이 바로 연주에 있어서 "아프로 아메리칸"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재즈를 외국에서 10년 20년 공부해와도 구루같은 곡이나 훵쏘울적인 연주는 예나 지금이나 참 못하더군요. FUNK라고 듣는다는 것이 맨날 죤 스코필드만 듣고. (물론 조승필의 음악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허나 블루스를 한다고 하면서 게리 무어만 듣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한국에는 허비행콕같은 마인드의 연주인은 요원한 것인지.
  • 한솔로 2010/04/26 19:13 #

    아무래도 배우는 것과 문화적으로나 유전학적으로나 타고 나고 습득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겠죠? 물론 연주, 음악적 지향까지 그것이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현지의 풍토와 우리나라의 풍토가 확연히 다른 것도 언급하신 결과에 기인하는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 2010/04/27 10:0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솔로 2010/04/27 11:26 #

    앗. 그러시군요. 아쉬운데요?
    재밌는 얘기는 다 지나간 상황에서 마지막만 들으셨다니... 계속 그 시간에 나오니까 시간 되시면 들어 주세요. ^^
    재즈 좋아하시면 저 음반도 맘에 드실 거예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