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 디오씨(DJ D.O.C) - 풍류 원고의 나열

댄스 그룹이 아닌 힙합 그룹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었던 4집, 태도의 앨범이란 무엇인지 악다구니로 환산해 보인 5집, 트렌드와 팝 감성을 배합해 경량화를 꾀한 지난 여섯 번째 앨범까지 디제이 디오시(DJ DOC)는 늘 멋진 모습을 선보여 왔다. 걸음은 비록 더뎠을지라도 음악에 대한 의욕은 충만했으며 아주 큰 편차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변화에 대한 욕심이 매번 서려 있었다. 팬들은 장수(長壽)를 향한 억척스러운 행보에 감탄하기보다는 조금씩 뭔가를 이뤄 내려는 의지를 좋아했다. 띄엄띄엄 앨범을 내는 탓에 받아야 했던 야속함은 그런 노력으로 보상되었다.

신작은 6년을 기다린 보람이 없다.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도 높게, 신선미 있게 꾸리려는 욕구를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45RPM의 2집 <Hit Pop>에 실린 'Tonight'를 편곡한 '이리로'는 유명한 래퍼들이 동석했다는 점 빼고는 별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없고, 'I Believe'는 김장훈이 객원 보컬로 참여한 것 말고는 원곡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양을 채우고자, 혹은 레이블 식구의 홍보를 위해 덜 알려진 곡을 재활용하는 데에 급급한 것 같다. 너무 오래 쉬었으니까 이제는 슬슬 음반을 낼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의무감 내지는 팀을 지속해야겠다는 고집 정도만 헤아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빠 그런 사람 아니다'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를 얻는 댄스풍 트로트로 가볍게 접근하기 위해서라든가 김창렬의 솔로 무대를 생각해 두고 삽입한 듯하지만 뜬금없는 출현으로 흐름을 해치기만 한다. 이는 마치 헤비메탈 페스티벌 중간에 에스 클럽(S Club) 같은 팀이 출연하는 격이다. 앨범 말미에 자리 잡은 45RPM의 'Fat Girl'도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노래다. 디제이 디오시가 부르지 않았다고 해도 앨범의 콘셉트에 부합하는 곡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니 존재 자체가 의아하기만 하다. 끼워 넣기 행사가 모든 소비자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지는 않음을 이들은 몰랐나 보다.

멤버들의 응집력도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이하늘과 정재용이 주도해 제작했던 5집 <The Life... DOC Blues>나 김창렬이 프로듀싱을 담당한 6집 <Love & Sex & Happiness>도 파트 배분만큼은 비교적 고르게 이뤄진 반면에 이번 음반은 정재용의 참여가 그리 많지 않으며 작사에도 극히 소극적이다. 김창렬도 보컬 외에는 부각되는 면이 없다. 셋의 치열함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판단되지 않는 게 당연한 결과다.

이런 탓에 6집처럼 대체로 외부 뮤지션으로부터 곡을 조달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흥겨운 분위기는 충분히 그들답지만 이 안에서 디오시가 발산하는 재기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명창은 아닐지라도 후련함은 느껴지던 김창렬의 목소리에는 오토튠의 빗금이 군데군데 쳐져 있어 그 맛을 되새김할 수 없고, 고음임에도 찰기를 과시하던 이하늘의 플로우는 꽤나 무덤덤하게 들린다. 한국 대중음악 유행의 첨병이 돼 버린 용감한 형제로부터 도움을 받은 '투게더'는 당연하게도 그들 스타일에 팀을 맡긴다.

당당했던 기세마저 엿볼 수 없어 아쉽다. '돌아보면 靑春'에서는 가슴 찡한 회한과 자기 고찰을 보여 주는 중에도 지금까지의 삶을 자랑스러워 했던 반면에 여기에서는 '어디로 뒤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그냥 끌려가는 늙은 노새'('서커스'), '나도 돈 좋아 명예 좋아'('In To The Rain')라며 현재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 이런 사람이야'에서 드러내는 배짱은 곡의 업 템포 비트로 말미암아 흐르자마자 순화되기 바쁘다. 거리를 자신의 삶이라고 동일시했으나 이제는 그 공간이 예능 프로그램의 세트장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 테다.

세 멤버는 자기들이 이제 아저씨가 되었다고 한다. 데뷔 때만 해도 20대 초중반이었던 이들은 15년 넘게 활동하며 세월의 날카로움을 경험했다. 그러나 디제이 디오시가 단지 이런저런 부침과 시간만 지나쳐 온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음악 역사에서 여러 성과를 만들어 온 순간도 존재한다. <풍류>는 이전의 그러한 결실을 재현해보겠다는 의욕 없이 그저 모양만 내려는 안일한 구상이 많은 부분에 깃들어 있다. 도처에 깔린 빈약함과 무성의함이 증명한다. 아저씨가 되었다고 지레 느슨하게 생각하지 말고 음악을 잘하는 아저씨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게 더 이들다운 모습일 것 같다.

2010/08 한동윤 (www.izm.co.kr)


덧글

  • elle79 2010/08/05 13:08 # 삭제

    저도 이번 앨범 완전 기대하고 들어봤는데 솔직히 좀 아니었어요. 4, 5집은 진짜 최고였는데... 이번 앨범은 내줘서 고맙긴 한데 님 말씀대로 덜 치열한 것 같더라구요. 트렌디한 댄스음악이랑 별 차이 없는 곡들도 많았고요. 아쉽네요.
  • 카군 2010/08/05 18:00 #

    이번앨범에서 조금 이슈가 된곡은 강월래와의 이야기 뿐....조금 아니었다는 의견에는 저도 동감이네요.
  • 클라 2010/08/06 00:13 #

    여러모로 아쉬운 앨범이긴 하지만 생각없이 신나게 듣기에는 좋더군요.
  • mikstipe 2010/08/07 09:23 # 삭제

    솔직히 5집과 같은 앨범은 다시는 못나올지도 모르죠..
    당시 그들의 상황 속에서야 나올 수 있는 음반이었으니까요...
    이미 어느 정도 돈맛(?)을 다시 본 상황에선 그런 헝그리정신이 못나오거든요.

    하지만 전 이번 앨범도 대체로 좋아합니다...
    이하늘의 태도가 진실한 것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에서 '양아치'를
    이들만큼 일관되게, 때론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친구들은 없을 겁니다.
  • 뇌를씻어내자 2010/08/07 23:33 #

    '나 이런 사람이야'인가요? 전 그거 듣는 순간 딱 흥미를 잃었어요. DOC답지도 않았고, 그저그런, 아니, 그저그렇지도 못한 댄스곡으로의 퇴보 그 자체였으니까요. 다들 열심히 살고 있어서 응원하고 있었고, 이번 역시 새로운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웬 걸. 좀 더 신중히 만들었으면 좋았을 뻔 했어요.
  • 오리지날U 2010/08/14 05:17 #

    딱 제가 느낀 걸 그대로 써주셨군요ㅎㅎ 99% 공감합니다 !
    특히 용감한 형제의 곡마다 들어가는 그 낙인.. 전 무슨 애프터스쿨 노랜 줄 알았다능;
    DOC 진짜 뭐하는 짓인지..
    뭐 그냥저냥 음반 안 내고 버라이어티에서만 노는 것보다는 낫지만요..
  • 2010/08/29 00:17 # 삭제

    이 앨범은 이렇게 앨범이나 음원으로 듣는 거 보단 퍼포먼스 라이브로 봐야 멋진 거 같아요. 확실히 질러주는 맛이 무대에서 있더군요.
    저는 무대에서 처음으로 접했는데 앨범 나왔나 보다 하고 음원도 받아 들었는데 그닥 별로더군요. 무대용 음악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추임새가 장난 아니더군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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