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아닌 것들과 놀아 보기 불특정 단상

01
몇 주 전에 겪은 일이다. 한낮에 집 앞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조그만 쥐가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마도 새끼인 것 같았다. 그 조그만 것이 킁킁거리며 뭔가를 찾는 게 귀여워 보여서 재밌게 구경하게 됐다. 그러다가 이 놈이 내 앞까지 오더니 신발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초 동안 하다가 갑자기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서 트위스트 추듯이 오른쪽 다리를 휘휘 저어 털어 냈다. 쥐는 나의 행동이 멋쩍었는지 땅에 내려와서는 다시 킁킁거리며 다른 쪽으로 향했다. 쥐는 날 구조물 따위로 생각한 걸까? 아니면 나랑 뭔가 통한다고 생각해서 잘 지내 보려고 달려든 걸까? 속이 궁금했다.

02
저녁에 담배를 피려고 나왔다가 한 고양이가 쓰레기 봉투들을 뒤적이고 있는 걸 봤다. '거긴 내가 담배 피는 장소인데 고양이 놈이 선점해 버렸군' 하며 불을 붙이며 그쪽으로 갔다. 보통 고양이들 같았으면 인기척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갔을 텐데 얘는 먹이 찾기에 푹 빠진 듯 내가 옆에 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촉이 왔는지 뒤를 싹 돌아봤다. 그러더니 무슨 코미디 콩트에서 개그맨들이 약간 과장해서 연기하듯이 소스라치게 몸을 떨었다. 정말 놀랐는지 눈동자도 커졌다. 무지 웃겼다. 그러곤 고양이는 재빨리 옆에 주차된 차 밑으로 들어갔다. 고양이가 그렇게 놀라는 표정은 처음 봤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봐, 난 널 놀라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 너가 뭘 먹든지 관심도 없고, 뺏어 먹을 생각은 더더욱 없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걸, 너희 종들의 습성 때문에 네가 날 피한 거란 걸 알아야 해'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03
어디를 통해 잠입했는지 파리가 윙윙대며 집 안 여기저기를 날아다닌다. '딴 데 가서 좀 놀지, 텔레비전 보시는데 왜 이렇게 귀찮게 해?' 그렇게 속으로 이야기하면서 파리가 옆에 오면 무의식적으로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내가 맘에 들었는지 계속 내 옆에서 비행했다. 그런데 아무리 팔을 흔들어도 윙윙거리는 특유의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짜증이 차 오르던 중에 머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불쾌한 느낌에 머리카락을 손으로 탁탁 터니까 거기에서 파리가 튀어 나왔다. 윽. 파리가 머리에 앉았다가 울창한 숱과 배배 꼬인 미로 같은 털들에 갇혀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 너도 당황했겠지만 나 역시 그랬다.

그건 그렇고 난 왜 이렇게 된 거지?

덧글

  • Run192Km 2010/08/31 07:32 #

    2번은 막 눈에 그려집니다. ㅎㅎ
  • 한솔로 2010/08/31 11:01 #

    그걸 동영상으로 찍었다면 우울할 때 보기에 딱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동물도 그렇게 놀라기도 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 2010/08/31 08: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한솔로 2010/08/31 11:03 #

    01 페스트에 걸리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을 하게 됐죠.
    02 길고양이들 중에서도 사람한테 잘 다가서는 애들이 아주아주 간혹 보이긴 하는데 걔네들은 사람들의 좋은 면을 봤나 봐요.
    03 물 부족 국가에서 저 하나라도 아껴야죠. 나갈 일 없으면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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