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과 깊이가 있는 인간미 넘치는 음악,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 [Super Session] 원고의 나열

앨범은 관록과 연륜으로 찬연하게 빛을 발한다. 아무나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이들만의 울림, 세월, 깊이가 음악에서 묻어나기 때문이다. 연주의 매무새는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단아하며, 그런 중에도 포근한 온기를 낸다. 오랜 기간 다진 공력과 인생의 축적, 음악에 대한 헌신이 없으면 좀처럼 가능하지 않았을 표출이다. 괜히 대선배들이 아니다.

우리 대중음악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융성하던 시기를 호령한 거장들이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고 할진대, 셋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여전히 진취적인 태도를 취했다. 단 한 곡도 리메이크를 들이지 않고 열네 편의 수록곡 모두 새 작품으로 꾸몄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예전에 인기를 누렸던 음악인 중 다수가 긴 휴면을 끝내고 재등장할 때 자신의 히트곡을 다시 부름으로써 옛 기억을 더듬는 일이 흔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세월이 흘러도 새로움을 갈구하고 창작에 전념하는 거장들의 강직한 자세에 경배를 금할 수 없게 된다.

이들이 드러내는 양식 또한 우직하다. 한국 록 음악의 거물들답게 이들은 록과 그것의 원류인 블루스로 향한다. 요즘 같아서는 개인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는 이상은 결코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이다. 기타 솔로와 오르간 연주가 고즈넉함과 습도를 배가하는 '강', 사랑에 실패한 이의 애절한 심정이 절제된 부르짖음으로 나타나는 '상심의 바다', 노래와 연주에 비애감이 가득 서린 '비, 그대 그리고 블루스' 등은 근래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블루스의 진한향과 인간적인 감성이 느껴진다.

록에 대한 희구는 그야말로 뜨겁고 정력적이다. 그 덕분에 몇몇 곡은 은근한 유쾌함을 자아낸다. '바람불어'는 중반부부터 페이드아웃이 될 때까지 힘을 잃지 않는 연주로 원기가 넘치고, '밤마다'는 아기자기한 연주와 예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코러스로 흥미를 전달한다.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와 '아주 특별한 날'은 다른 곡들에 비해서 한결 가벼운 공기와 명확한 후렴으로 앨범이 지닌 얼마간의 무게를 더는 역할을 한다.

음반을 관통하는 무거움은 그러나 답답함과 부담스러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 멤버의 경험과 삶에서 전달된 것이다. 수록된 노래들은 지금까지의 생을 되돌아보고 거쳐 온 날들을 사려 깊게 관조한다. 거기에 담긴 진솔하고 담담한 가사를 통해서 듣는 이들은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 보게 된다. 음반이 내는 '깊이 있음'은 사람을 중심에 둔 내용과 온기를 띤 연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스함은 없고 비트 테크놀로지만이 음악을 관장하는 시대, 몇 번 흥얼거리고 나면 아무런 감동도 남지 않는 부사로 된 노랫말이 넘쳐 나는 시대에 인간적인 음악을 만나는 감명이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의 앨범에는 존재한다.

판에 박힌 댄스음악이 범람하며, 15초 남짓한 시간에 히트 여부를 가늠하고 3분의 미학을 강요하는 때다. 거기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공명과 진실한 삶의 묘사가 [Super Session]에 담겨져 있다. 이들과 같은 멋진 뮤지션이 있고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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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oobie 2010/11/06 12:33 # 삭제

    참 반가운 뉴스입니다. 하지만, 왜 굳이 알 쿠퍼의 명반인 "super session"의 이름을 차용했을까요? 옥의 티 치고는 참... 저 시대분들의 영미 아티스트들, 특히 블루스계열의 아티스트들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목과 팀명을 붙이는 쎈쓰는 좀 아쉽네요.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좀 '없어보입니다'. 간만에 앨범들 내셨는데.
  • 한솔로 2010/11/07 12:18 #

    두비 님 오랜만에 글을 남겨 주셨네요. 잘 지내셨죠?
    앨범 타이틀은 뭐,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마음과 그래도 몇몇 분들에게 익숙한 제목이라 눈에 더 들어올 수도 있고요. 확실히 네이버 뮤직 페이지의 올라온 댓글 수를 보니 이분들에 대한 인지도가 얼마나 낮은지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 doobie 2010/11/09 12:33 # 삭제

    네 한솔로님도 잘 지내셨죠? 좀 아쉬워서 그렇지요. 아무튼, 저런 뮤지션들의 음악이 대중적으로도 히트해서 아이돌 사이에서 조금 뻘쭘하다 할지라도 차트프로그램에서도 보는 장면을 상상해보는 건 좀 오바인건가요. ^^ 80년대말까지만 해도 미국빌보드에선 40대뮤지션들이 왕왕 차트 1위를 차지하곤 했지요. 스티브 윈우드나, 마이크 & 더 매카닉스, 브루스 혼스비 같은 사람들..
  • 한솔로 2010/11/09 16:29 #

    예전에는 순위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분들이 가끔 나온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가 않네요. 기대를 한다는 게 너무 큰 기대인 듯 싶습니다. 빌보드 차트도 사실상 우리나라 음악계와 다를 바는 없지만 그래도 그쪽은 거기에 못 오르는 음악도 다들 어디에선가 수용이 된다는 점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실정이겠죠. 씁쓸함은 감추기 어렵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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