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한 감이 없잖아 있다. 아니, 많이 측은하다. 최근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서 팬들의 찬양이 오가고, 아카데미를 설립해 한류 스타를 양성하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야심찬 계획마저 나오는 상황이지만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에 대해서는 대중도, 정부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안쓰럽게 느껴지는 게 괜한 이유가 아니다.
홀대받고 있음에 수긍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대중음악과 비교해 수용 인구가 턱없이 적다고 해도 국악을 다루고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KBS의 <국악한마당>이 유일하다. 국악 전문 방송국을 제외한 라디오 채널 역시 한 개밖에 되지 않는다. 말만 전통음악이지 이 전통을 유지하고 전달하는 창구는 매우 부족하다. 등한시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음원 사이트 내의 장르별로 분류된 항목에서도 대부분 맨 아래쪽, 또는 눈이 잘 가지 않을 은벽한 곳에 카테고리가 배정돼 있다. 이러니 애정을 갖고 찾아 듣지 않는 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는 지극히 어렵다. 대중의 선호도가 낮다고 해서 그들에게 존재를 호소할 최소한의 기회조차도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 국악의 현실이다. 음악계 소외층이라고 달리 불러도 될 정도다.

모두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형태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듣기 편하고 대중음악을 즐겨 듣는 청취자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질 음악도 얼마든지 있다. 지난 5월에 출시된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의 세 번째 앨범 <오아시스>는 아기자기하고 공상적인 노랫말과 밝은 멜로디로 젊은 세대의 감성에 부합할 매력을 발산한다. 이보다 두 달 앞서 출시된 해금 연주자 꽃별의 5집 <숲의 시간>은 고요하고 서정미 충만한 곡들로 뉴에이지에 준하는 안온함을 일군다. 결코 낯설지 않다.
서구 대중음악과 결합한 이채로움이 돋보이는 음악도 있다.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콜럼버스의 데뷔작 「Columbus」에 실린 ‘Sad Mess’는 트립 합(trip hop, 느릿한 힙합 리듬을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을 제공하는 몽환적인 음악)풍의 반주에 창(唱)을 실어 신선함을 자아냈고, 8인조 밴드 토다는 6월 발표한 데뷔 음반 「TODA (T.O. To Dream Age)」를 통해 국악과 프로그레시브 록(환상적이고 모호한 이미지, 극적인 짜임새를 주로 표현하는 록)의 멋진 앙상블을 나타냈다. 국악은 내수용 음악이라는 관념을 깰 작품들이다.
이렇듯 국악은 많은 사람에게 살갑게 다가서기 위해 애쓰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자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을 이해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퓨전 국악은 물론, 전통성을 유지하는 국악에 대한 흥미가 자연스럽게 커질 듯하다. 정부 또한 현재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국악도 나라의 문화 경쟁력을 키우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국악에는 전통음악이라는 명색만으로 치장하기에는 아까운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근사함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애정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한동윤)
2011 07/26ㅣ주간경향 935호
덧글
말씀하신대로 국악에 대한 편견이 큰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해철옹의 Monocrom 처음 들었을때 국악과의 접목이 참 신선했는데,
(지금도 들으면 참 좋습니다. 물론 국악보다는 테크노가 좀 더 강한 쪽이긴 하지만.)
주류 뮤지션이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해외에서 매년 극찬받는 앨범을 살펴보면 다양하고 아름다운 악기를 많이 쓰는데..
음악 들으면서 우연히 좋은 걸 접한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론 아직 모르는 게 많을 걸 생각하면 그것도 씁쓸하죠.
정악을 보세요. 요즘같이 쿰짝쿵짝 빠른 "비트"이외의 다른 리듬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3박4일 늘어지는 이 리듬은 당연히 낯설죠. 하지만 이것이 고매한 정신 세계를 추구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는 만만히 볼 음악이 아닙니다. 가우리는 바로 옆에 진주를 놓아두고 유리조각을 갖고 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진주가 나 좀 봐 달라고 유리조각 흉내를 내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