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이 말하는 나의 앨범 - 김민규 원고의 나열

싱어송라이터 김민규는 이제 막 첫 앨범을 낸 신인이다. 여러 뮤지션이 그랬던 것처럼 솔로로 데뷔하기 전 밴드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최근 자기 PR의 대세에 맞게 온라인으로 음악을 공개한 것도 아니다. 미국 실용음악 학교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usicians Institute)에서 키보드와 레코딩 프로그램을 전공한 후 그저 혼자 집에서 음악을 만들어 온 보통 음악인이다. 지난 7월에 출시한 첫 앨범 < made in the livingroom > 역시 튀는 구석 없는, 평범한 자태를 지닌다. 하지만 이 안에서 묻어나는 자기 음악에 대한 집념, 순수한 표현이 시선을 채뜨린다. 그리고 남성 싱어송라이터가 그리 많지 않은 때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둔 앨범

중구난방 식이나 컴필레이션처럼 느껴지는 구성은 피하고 싶었어요. 첫 앨범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앨범 전체의 색깔, 혹은 이야기를 나타내려고 무척 신경 썼어요. 인지도가 전혀 없는 신인이 자비로 정규 앨범을 만드는 일이 위험한 모험이지만 그래서 싱글보다는 풀(full) 앨범을 내기로 결심했어요.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으로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분위기가 크레셴도(점점 세게) 되는 느낌, 마지막에는 다시 데크레셴도(점점 여리게) 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승전결까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있으면서도 하나의 큰 흐름으로 묶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요.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보다는 앨범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곡을 썼지만 뺄 수밖에 없었죠.

사운드에 욕심낸 반(半) 가내수공업 작품

제가 2007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요, 방 두 개짜리 아파트의 거실에서 생활했어요. 다른 룸메이트들은 각자 방을 썼고요. 드럼과 호른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악기를 거실에서 녹음했기 때문에 'made in the livingroom'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봤어요.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녹음을 진행했던 헝그리 정신을 기억해 보자는 의미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편하고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라서 '거실'이 갖는 편안한 느낌과도 잘 매치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운드만큼은 욕심을 냈어요. 톤 잡는 데만 매번 몇 시간씩 소비하기도 했어요. 드럼을 녹음할 때도 어떤 마이크를 사용할지, 마이크 위치를 어떻게 할지 모두 직접 체크했습니다. 기타는 연주자와 함께 몇 시간씩 톤만 만지기도 했고, 원하는 톤과 원하는 솔로가 나올 때까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다시 녹음했어요. 스트링을 실제로 녹음하면 워낙 큰 금액이 필요하니 정말 많이 고민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스트링을 미디로 할 것인가, 리얼로 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편곡을 시작할 때 이미 결정되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곡의 분위기나 편곡에 대한 방향이 실제 현악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과감하게 결정 내렸습니다.

그 흔한 댄스곡 하나 없는

솔직히 템포가 빠른 곡들은 잘 못 쓰겠어요. 처음에는 펑크(funk)곡이 좀 있었는데 앨범에 넣기에는 완성도가 낮다고 생각해서 뺐어요.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닌데 저는 그런 트렌드의 노래를 못 만들겠더라고요. 반복이 심하게 많은 후크송은 들을 때에는 좋은데 제가 만들면 꾀부리는 기분이 들어서요. 컴퓨터로 곡을 쓰는 게 아니고 건반 앞에 앉아서 오선지 펼쳐 놓고 연필로 채보해 가면서 쓰는 스타일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뭐 하나가 유행하면 우르르 따라가는 분위기에 대한 반감은 있어요. 특정 스타일이 유행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그런 분위기의 곡만 쓰는 상황이 답답합니다. 다양한 노래들이 나오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시장이 좁아질 텐데 당장 돈 되는 일을 하는 거죠. 힘 있는 분들이 그런 분위기를 좀 바꿔 주셨으면 하는데 그런 분들이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섭섭해요.

모든 것을 담당하는 험난했던 과정

작사, 작곡, 편곡, 연주의 어려움보다는 녹음을 진행하고, 녹음해 온 파일들을 편집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사실상 제가 엔지니어 역할도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학교 레코딩과에 있을 때 일곱 곡의 드럼, 베이스, 기타 녹음을 마쳤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보니 녹음 상태가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다 엎었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는 학교를 졸업한 후라 더 이상 학교 스튜디오는 사용할 수 없어서 외부 스튜디오를 예약했죠. 스튜디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거기서는 쫓기듯이 작업하고 집에서 편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작업했어요.

제가 원하는 방향을 표현하는 데 연주자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된 것도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예요. 아무리 제 앨범에 셔플(shuffle) 분위기의 곡이 많다고 해도 가요 느낌이 어느 정도는 표현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쉽지가 않았어요. 예전에 이승환 선배님이 세계적인 드러머 비니 콜라유타(Vinnie Colaiuta)와 작업을 했는데 그분의 연주는 앨범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외국 연주자들과 녹음해 보니 어떤 상황인지 실감했어요. 연주의 질을 떠나서 곡을 해석하는 방향 자체가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드러머를 바꿔 가면서 세 번을 녹음한 곡도 있어요.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죠.

김민규가 말하는 수록곡들

머릿곡인 '반갑다 친구야'가 가장 애착이 가요. 방에서 혼자 곡만 쓰던 놈이었는데 2005년에 이 노래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거든요.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찾아와 노래가 좋다고 이야기해 주고, 파일로 보내줄 수 있냐고 물어보고,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어요. 내가 만든 노래로 세상과 교류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때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어요.

'길'은 긍정적인 가사이지만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나왔어요. 멀쩡히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느냐 마느냐, 음악대학을 가느냐 마느냐 등등을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워낙 신중한 성격이라 그럴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뭐가 옳은 길일까?' 하고요. 시간이 정말 오래 지나서야 옳은 길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길이 있을 뿐이죠.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때 저처럼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는 의미로 썼어요. 정말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왔기에 나올 수 있었던 긍정적인 내용의 가사입니다.

'거닐다'는 좀 아쉬워요. 수록곡들이 원래 구현하고자 했던 사운드의 3분의 2밖에 표현되지 못했는데 이 노래가 가장 심한 것 같아요. 원래 제가 생각했던 스타일은 오케스트라를 동원하는 대곡 스타일이었습니다. 12인조 스트링을 쓰는 것도 저로서는 엄청난 투자이자 모험이다 보니 곡이 계속 바뀌었어요. 심지어 이미 악기 녹음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도 편집해서 또 고쳤어요. 너무 많이 바꾸고 편집하는 바람에 상처가 많이 난 것 같아 곡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원래 표현하고자 했었던 대곡 스타일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큽니다. 앞에 나오는 '서글픈 진심'이 사실 독립된 곡이 아니라 '거닐다'의 전주 부분에 해당하는 곡이었어요. 그렇게 나오면 러닝타임이 7분이 넘어서 분리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음악 외로도 다재다능한 뮤지션

저는 앨범 제작비를 한 편의 CF에 출연해서 마련했어요. 하기스(Huggies) 리미티드 에디션인 '청바지 기저귀(jeans diapers)' 광고에서 아이를 쳐다보는 동양인이었죠. 제 기준에서는 나름 큰돈을 이 광고로 벌어서 앨범을 만들게 됐어요. < 2008 S/S 서울 컬렉션 >에 모델로 나가기도 했고요, 미국에서 몇 편의 독립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어요. 그렇다고 모델이나 배우라고 생각하는 자의식은 없어요. 호기심에 도전하고 경험해 본 것이죠.

앨범을 구매한 분들은 사진이 멋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세요. 부클릿에 들어간 사진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제가 찍은 것이거든요. 미국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찍었는데 주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뉴욕이에요. DSLR로 찍은 게 아니고 모두 조그만 똑딱이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평소에 스냅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몇 만 장은 되더라고요.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다른 모습에 대한 고민

다음 작품으로 EP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곡은 거의 다 나와 있기는 한데 언제 또 생각이 바뀔지 몰라요. 이번 앨범에 스트링을 여기저기 써 놨더니 소규모 공연을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일단은 소규모 편성으로도 연주에 무리가 없는 스타일의 곡들을 좀 모아서 EP로 내 볼까 생각 중이에요.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의 곡들도 써놓았는데 이번에는 예산 때문에 빠졌어요. 그런 분위기의 곡을 더 써서 아예 일렉트로닉 분위기의 앨범으로 갈지, 아니면 지금보다도 더 어쿠스틱한 분위기로 갈지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네요. 미국에서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록 넘버도 있는데 록은 이상하게 잘 안 써지더라고요. 갑자기 록이 줄줄이 써지면 그런 앨범을 낼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제가 가장 하고 싶은 걸 할 것 같아요.

2011/09 한동윤 (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