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태춘, 박은옥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원고의 나열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길들기를 무의식적으로 동의한 대부분의 어린 세대들에게 이 음반은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혹여나 '이 주의 앨범' 코너에 소개됐다는 이유만으로 호기심에 들어 본다고 한들, 인내심은 마지막 곡까지 동행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10대, 20대 초반 음악팬들이 소비하는 노래들과는 또 다른 멋이 존재한다. 그래서 도드라져 보인다.

수록곡들은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삶과 생활을 조명한다. 노랫말은 그 어떤 치장도 없이 소박하면 소박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주변의 풍경, 살아가면서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표현한다. '서울역 이씨'에서는 존재감도 없고 무력한 이의 처절한 흐릿함이 엿보이고, '강이 그리워'는 낭만적이고 쓸쓸한 감정을 수수하게 그린다. 목가적인 대기를 조성하는 '꿈꾸는 여행자',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의 한탄 같은 '눈 먼 사내의 화원', 노동자의 참담한 실상이 읽히는 '날자, 오리 배...'와 험난한 삶 속에서 안온과 이상을 기대하는 정서를 내비치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등도 관조적으로 생을 이야기한다. 노래는 살면서 경험하는 처연함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함께 내보낸다.

치정의 주연을 자처하거나 뜬금없는 영어단어로 도배된 요즘 히트곡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산문과 시의 어느 사이에 있는 듯한 가사는 우리 대중음악에도 일상에 근거하는 노래가 생존함을 확인하게 한다. 또한, 직설적이지 않은 언어는 청취자로 하여금 노래를 주도적으로 해석해 볼 여지를 마련한다. 이것이 앨범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다.

다른 매력 하나는 음악적 여백에서 오는 인간미일 듯하다. 주류 음악계를 지배하는 경향은 짜릿한 자극과 화려함이 제일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청취자에게 즐거움이나 감동을 안기는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다. 기타, 키보드, 아코디언 등이 이끌고, 적은 양의 프로그래밍과 악기가 첨부된 반주는 담백함으로 편안한 청취를 돕는다. 더러는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찬 공기가 주위를 감싸는 여느 밤처럼 음습하고 무겁지만, 그것 역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감정의 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흔히 '홍대 여신들'이라 일컫는 가수들을 통해 포크도 이제는 음악팬들에게 친숙한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포크는 그런 부류와는 완전히 다르다. 젊은이의 감수성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아니며, 순정만화 같은 아기자기한 일상을 서술하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격양된 투쟁의 기치를 뽑아든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맞닿은 내용을 이야기한다. 인생이라는 피곤한 노정의 솔직한 벗이 되기에 순간의 재미와 비교할 수 없는 감흥을 얻을 수 있다.

(네이버 뮤직 2월 셋째 주 이 주의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