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에 묻힌 비운의 1992년생 음악 원고의 나열

지난 3월로 '서태지 데뷔' 스무 해를 맞았다. 1992년 혜성처럼 등장해 한순간에 한국 대중음악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그였으니 20주년에 각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에 한 자리를 꿰차는 것은 물론 일간지, 웹진 등 다수 매체에서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20년이 흘렀지만 위용은 조금도 쇠하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데뷔곡 '난 알아요'는 실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우리말로 된 랩, 흡인력 있는 후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역동적인 춤, 의상 등 모든 것이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한 연예 프로그램의 신인을 소개하는 코너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젊은 대중은 이미 그들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방송이 나간 주말을 지나 월요일이 되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학생들을 어느 학교에서든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파급의 위력을 설명해 준다.

'난 알아요'를 필두로 한 1집의 엄청난 히트는 랩·댄스음악의 성황, 대중화의 국면을 열었지만 동종의 음악을 한 가수들 대다수가 이 흐름의 혜택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꽤 괜찮은 음악을 선보였음에도 1992년의 대중음악 전반을 장악한 서태지라는 거대한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이들도 존재했다. 애처로운 이면이다.

양준일이 그 중 하나다. 자넷 잭슨의 히트곡 'Miss You Much' 일부분을 차용한 댄스곡 '리베카'로 1991년 데뷔한 그는 이듬해 흑인음악의 성격을 강화한 2집 < 나의 호기심을 잡은 그대 뒷모습 >을 출시했다. 여기에서 양준일은 국내 최초로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리듬 앤드 블루스의 멜로디 요소와 힙합 특유의 강한 리듬을 결합한 흑인음악의 하위 양식)을 들려줬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이 스타일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이현도보다 공식적으로 먼저였던 것이다. 미국인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현지에서 인기 장르로 부상하던 음악 문법을 발 빠르게 입수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목을 집중해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 정서를 감안하지 않은 지극히 서구적인 곡 분위기 탓이 컸다. 그러나 이 시도만큼은 유별한 자취로 남기에 충분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자로 참여하다가 캡틴 퓨처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송재준의 두 번째 음반 < It's Future Now > 역시 1992년에 외면당한 수작이다. 송재준은 펑크(funk)와 랩, 록 등 다채로운 장르를 융합하며 퓨전의 선봉에 섰을 뿐만 아니라 이때만 해도 가요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아카펠라와 비트박스를 함께 연출함으로써 한국에서의 흑인음악과 댄스음악에 새 양상을 표출했다. 그는 또한, 수록곡 전부를 작사·작곡하고 연주, 편곡, 노래, 코러스까지 담당하는 등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로서 재능을 뽐내며 1인 밴드의 본보기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흥행의 참패는 완성도와 작품성의 획득, 흔치 않은 유례의 기록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랩, 댄스음악의 기세는 여전히, 나날이 높아져 가는 중이다. 모든 게 혁신적이었던 서태지가 이 시류에 전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더라도 중대한 근원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난 알아요'가 랩, 댄스음악의 큰 인기에 증폭제 역할을 하고, 이후 완성도 높은 댄스음악이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그 자취를 기억하고 추앙함이 마땅하다. 다만 의미 있는 작품들이 당시의 막강한 흥행 파고에 묻혀버린 것이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측은하게 느껴진다. 20주년을 기념할 만한 비운의 1992년생 작품들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한동윤)

2012 04/24ㅣ주간경향 9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