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얼 - Principle Of My Soul 원고의 나열

리듬 앤 블루스가 리듬 앤 블루스가 아닌 시대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이든, 신인이든, R&B 영역을 할거하는 뮤지션들 다수는 민첩하고 화려한 전자음에 목소리를 의탁하기 바쁜 요즘이다. 본토인 미국은 물론 팝 시장의 점유율이 높은 영국과 유럽 각국의 리듬 앤 블루스 가수들은 하나같이 일렉트로니카 트렌드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영국의 디온 브롬필드(Dionne Bromfield), 조스 스톤(Joss Stone)과 이견의 여지가 있을 아델(Adele), 더피(Duffy), 팔로마 페이스(Paloma Faith), 미국의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과 메이어 호손(Mayer Hawthorne) 정도가 주류의 저항군으로 남은 상태다. 전자음의 군림은 특정 장르의 선천적 성질과 기존 세력을 약화시켰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리듬 앤 블루스는 그러한 경향에 심각하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신 자체가 저류이며 대중의 관심도 덜하다 보니 여파가 미쳤다고 한들 드러날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뮤지션들 나름대로 음악에 대한 확고한 고집과 줏대가 있기에 새천년 이후의 리듬 앤 블루스, 다시 말해 무도회장의 군중에 봉사하는 전자음 위주의 반주에 보컬만 멋을 부려 넣는 리듬 앤 블루스 풍토에 휩쓸리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변화를 종용하는 모진 바람이 계속해서 부는 상황이기에 R&B 고유의 틀을 고수하는 음악인들이 대단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익히 아는 인물 중 나얼이 그 군에 속한다. 앤섬(Anthem)부터 시작해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와 브라운 아이드 소울(Brown Eyed Soul)까지,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으나 데뷔 이래 13년 동안 선율과 하모니, 편안함과 세련미에 초점을 둔 (1990년대의 미국적인) 리듬 앤 블루스를 선보여 왔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리듬 앤 블루스의 대명사 격이 된 이유다.

솔로 정규 데뷔 앨범인 < Principle Of My Soul >은 평소 성향에서 시절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Soul fever'는 갬블 앤 허프(Gamble And Huff) 듀오라든가 샐소울 오케스트라(The Salsoul Orchestra)를 21세기에 다시 만나는 필라델피아 기반의 디스코-펑크(funk)이며, '기억리듬'은 바 케이스(The Bar-Kays)나 블러드스톤(Bloodstone)의 발라드를 템포를 조금 높여 만든 것 같고, 'You & me'는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나 델포닉스(The Delfonics) 같은 그룹을 연상시키는 가성 창법과 특징적인 편곡으로 필리 소울의 옷을 입었다. 흑인음악 마니아들이 감격할 모양의 연출이다.

일련의 회귀 행보가 전면적이지는 않다. 'Missing you'와 '여전히 난'은 브라운 아이즈 시절이 기억나는 평범한 중간 템포의 발라드이며, '바람기억'은 미필적고의가 보컬 기량 과시로 나타난 작품이고, '이별시작'은 흑인음악과 우리 대중음악의 정취가 어중간하게 배합된 애절함 부각의 노래다. 리듬 앤 블루스 애호가들에게 이 노래들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다가올지 몰라도 대중의 보편적 기호를 만족하기에는 더없이 알맞다고 할 수 있다.

초반에 자리 잡은 몇 곡은 흑인음악 마니아를 공략하고, 다른 곡들로는 나얼 특유의 감성을 재연한다. 앨범은 그래서 포괄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격은 13년째 이어져 온 애매함의 지지부진한 연장이라 할 만하다. 리듬 앤 블루스를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적 향은 면면에 밴 절충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해 보고 싶었던 음악과 해 오던 것의 합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Soul fever'와 'You & me'는 습작 이상의 새로운 해석이나 진취적인 가미가 두드러지지 않아 무척 아쉽다.

그럼에도 앨범은 충분히 가치 있다. 저마다 히트를 위해서 자극적인 소리를 신봉하는 시대에, 리듬 앤 블루스 시장이 몹시 협소한 땅에서 트렌드를 거부한 이런 음반이 나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70년대 스타일의 재현도 고맙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

2012/09 한동윤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24301&bigcateidx=1&subcateidx=3&row=1&cTp=4


덧글

  • 박수정 2012/09/24 14:46 # 삭제

    평론가셔서 그런지 흠도 잡네요. ㅋㅋ. 저에게는 흠이 없음. 종교없는데 stone of zion 수십번 들었어요. ㅋㅋ
  • 한동윤 2012/09/26 13:24 #

    잡을 게 더 남아 있는데 못 썼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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