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고 탄탄한 우울함, 물렁곈(Moollonkyen) - Psychedelik 원고의 나열

앨범 전반에 퍼져 있는 공기는 무척 습하고, 어둡다. 노랫말은 고독, 외로움, 슬픔, 상처 등 부정적인 단어를 간헐적으로 곱씹는다. 혹은 그와 유사한 감각의 언어를 대거 대동해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곡들 또한 록을 근간으로 삼고 있음에도 그것의 기본 특성인 강한 소리를 터뜨리기보다는 싸늘함을 더 부각한다. '이상한 토끼를 위한 왈츠'는 제목처럼 춤곡의 형식을 갖췄지만 흥겨움 없이 우울함을 한껏 드러낸다. 가사와 음악이 합심해서 음험함을 연출하고 있다.

물렁곈(Moollonkyen)은 이 일관된 기운을 표출하는 작업을 지혜롭게 수행했다.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을 내내 이어 가도 이를 지긋지긋하게 하나의 틀만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가 감지하고 이야기하는 침울함은 어디에서는 좌절한 상태로 나타나며 어디에서는 지난 사랑에 대한 소극적 갈구, 체념, 분노로, 또 어떤 곳에서는 상실했던 것을 얻고 말겠다는 결의 등으로 저마다 색다르게 표현된다. 제목의 언어유희가 돋보이는 '루하의 하루'는 드라마 인물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을 대입해 처절한 외로움을 익살스럽게 가공한다. 다채로운 상태로 내면을 담아낸 까닭에 물렁곈의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한결같은 정서를 그리는 것은 앨범의 유기성과 통일성을 상승시키긴 하나 한편으로는 흥미를 떨어뜨리는 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물렁곈은 후자의 결과를 맞이하지 않았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영리하게 구현했다. 초반에 거세게 나서는 'Again'이나 강약을 조절하며 속도감 있게 나아가는 'Help'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곡이 축 처져 있으며 템포도 빠르지 않은 편이다. 이렇다면 무료해야 정상일 텐데 그렇지 않다. 'Fall'은 두 번째 후렴에서 드럼을 빼 적막함을 강조하고 후반부에 입힌 코러스로 엄숙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편성의 가감으로 말미암아 곡은 생동하는 진행을 얻었다. '이상한 토끼를 위한 왈츠'는 도입부터 고르지 않은 전자음을 깔아 노래의 야릇함을 부연하며 식상하지 않은 음으로 후렴을 완성해 이채로움을 높인다. 읊조리는 코러스로 흐릿함을 내면서 중반 이후에 클래식적인 접근으로 변화를 주는 'Get out', 은은함은 지속하되 뒤에 가서 프로그래밍을 추가해 입체감을 확보한 'Memory' 등 수록곡들은 작고 적은 장치를 통해 구성상의 재미를 보여 준다. 많은 악기와 여러 효과음으로 현란하게 치장하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멋스럽고 옹골지다. 슬기로운 편곡의 힘이다.

밴드가 아닌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첫걸음이다. 포의 미니 앨범 [Burnout (EP)]에 실렸던 'Fall', 'Help', 여기에서는 '둘이서'로 제목이 바뀐 'Paper cup'을 재생산한 결과가 오리지널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해 만족감은 덜하다. 물렁곈만의 특색 있는 풀이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그럼에도 물렁곈만의 매력은 [Psychedelik]의 면면에서 넉넉하게 엿볼 수 있다. 대중음악계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스타일과 더불어 재기 넘치는 표현력,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 변화무쌍한 보컬은 그녀에 대한 기대감을 더한다. 결코, 물렁하지 않은 이 싱어송라이터는 견고한 작법으로 탄탄한 우울함을 만들어 냈다.

2013/03 한동윤

네이버 뮤직 이 주의 발견 http://music.naver.com/todayMusic/index.nhn?startDate=20130314


덧글

  • 2013/03/19 17:11 #

    커버아트를 장콸 작가가 그렸네요. (처음에 다른 작가와 착각했네요;고쳤습니다) 물렁곈의 이미지와 어울려요. 포는 흥미롭게 들었는데 이 글 읽어보니 솔로도 좋을 것 같아요.
  • 한동윤 2013/03/20 11:00 #

    포를 들으셨다면 비슷하실 거예요. 어차피 포 시절도 물렁곈이 곡을 썼으니...
  • 클라 2013/03/19 22:33 #

    보컬과 가사 곡구성이 참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밴드시절 EP에 실렸던 곡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참 좋네요.
  • 한동윤 2013/03/20 11:01 #

    네. 뭔가 후덜덜한 구성이 아니면서도 뭔가 꽉 찬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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