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국악의 덕목 원고의 나열

퓨전 국악의 통상적 미덕은 전통 국악보다 즐기기에 수월함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전통음악은 애써 찾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접할 일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국악은 한국인에게마저도 꽤 낯선 존재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빈번하게, 심지어 무방비로 마주하는 대중음악의 인자를 주입하면 친밀감이 조금이나마 더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퓨전 국악은 한결 쉬운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퓨전 국악이 그러한 장점을 내보이지는 않는다. 혼합의 공정에서 동원되는 대중음악의 요소가 대중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으며, 그것들의 조합이 평면적인 이음으로 그치지 않고 얼기설기한 모양새로 나타날 때도 무수히 많다. 퓨전이 꼭 용이함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말에 나온 밴드 고래야(Coreyah)의 첫 정규 앨범 <웨일 오브 타임(Whale Of A Time)>도 음미하기에 다소 까다롭다. 우리 전통음악의 색을 강직하게 유지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방법으로 이들이 택한 성분이 마냥 친근한 것이 아닌 탓이다. 대중성을 획득하고자 유행하는 장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최소한의 구색 맞추기용으로 반주에 국악기만 끼워 넣는 퓨전 국악이 허다하다. 하지만 고래야는 서구의 것을 융합하면서 트렌드를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생소한 월드 뮤직을 접목한다. 게다가 보컬에서조차 전통적 형식과 정서를 보전하려고 노력한다.

전통악기와 서양악기가 균등한 비중으로 곡을 이끌며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양탄자 도둑', 중반을 지나 장단에 변화를 주면서 창과 켈틱 음악의 느낌, 뉴에이지를 한꺼번에 표출하는 '우주소녀', 왈츠와 자메이카의 음악 스카를 오가는 '검은 새' 등은 유행에 초연한 이들의 진취적인 혼합 작풍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일련의 곡들에서 전통음악적인 바탕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노래에서의 고집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물에서 빠져나온 개구리가 바깥세상의 천적들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개구리', 나무 하는 총각과 나물 캐는 처녀의 풋풋한 연애 감정을 그린 '어드로 갈꼬' 등은 마당극 형식으로 보컬을 진행한다. 무난한 팝 형태를 띤 '넘어갔네'에서도 소리꾼의 톤과 음색을 잃지 않는다. 퓨전을 행하면서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가요의 일반적인 창법을 그대로 따라가는 일부의 행동과는 퍽 다르다. 보컬에서도 우리의 것을 고수하려는 줏대가 느껴진다.

이와 같은 태도는 이름에 이미 나타나 있다. 옛 고(古), 올 래(來), 끌어당길 야(惹)를 조합한 한자 이름은 옛것으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온 감성으로 동시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음악을 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2010년 결성해 2012년 KBS 오디션 프로그램 '톱 밴드 2' 16강에 진출하며 인지도를 높인 고래야는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차근차근 선전하는 중이다.

이들 음악의 전파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퓨전 국악이라고 해도 익숙할 요건이 덜하기에 대중이 금방 편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친숙함의 구비가 퓨전 국악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우리 전통음악과 다른 음악을 합치면서 각각의 성격은 간직하되 어울림과 이채로운 멋을 발산하는 것이 퓨전 국악이 지향해야 할 더 중요한 덕목일 듯하다. 그 조항에서 고래야의 음악은 근사한 퓨전 국악이라 단언할 수 있다.

한동윤

2013 04/09ㅣ주간경향 1020호

덧글

  • 로사 2013/04/04 12:34 #

    근사한 퓨전 국악이라니, 함 들어봐야겠네요 ^^
  • 한동윤 2013/04/04 16:51 #

    빠르게 와 닿을 음악은 아니지만 괜찮은 작품이에요~ :)
  • 링고 2013/04/04 14:09 #

    고래야 이런 그룹이 있는 줄은 몰랐었네요.

    대체로 전부 퓨전국악에 신경 쓰고 있는 사이에 전통국악은 사그러 들까봐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전통국악 몇 곡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국악 공연을 보러 가보니 춘향가가 안 불리어 지는 곳이 없더군요. 전통국악에서 청중이 들을 수 있는 레퍼토리가 매우 협소한 것도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동윤 2013/04/04 16:55 #

    엄청난 인디 마니아가 아니라면 톱 밴드를 즐겨 본 분들만 조금 익숙한 이름일 거예요.
    말씀처럼 전통 국악은 소통할 수 없는 길이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민요나 교육을 통해 배우는 판소리 정도 외에는 뭐 거의 대중에게 알려지는 게 없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난제와 풍토 때문에 전통 국악은 소외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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