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을 꼭 기약하고 싶은 기쁜 만남, 오 르브와 시몬 원고의 나열

에리카와 애니, 헤더 세 여성은 2008년 말, 리믹스 앨범 < Reverse Migration >을 선보여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팬들에게 기쁨을 안겼고 올해 5월 세 번째 정규 앨범 < Still Night, Still Light >를 발표하면서 꾸준히 창작에 대한 열의를 드러내고 있다. 이즈음에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오 르브와 시몬이 소개된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한편으로는 신보가 공개된 지 몇 개월이 흐른 시점인데다가 아직은 따끈따끈한 온도를 내보일 새 앨범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들의 음악이 국내에 상륙하기만을 기다려 온 추종 세력들에게는 약간의 아까운 맘도 이내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다. 이번에 라이선스되는 특별 에디션은 두 번째 앨범 < The Bird Of Music >의 11곡과 보너스 트랙으로 첫 앨범 수록곡 중 세 곡을 추려 총 14곡으로 구성되었다. 2집과 함께 데뷔 앨범의 절반에 달하는 노래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으니 이 덤으로 섭섭함은 상쇄된다.

빈티지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으로 주조하는 이들의 음악은 의도된 투박함 덕분에 많은 이가 쉽게 정감을 느낄 듯하다. 그러나 세련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왠지 친숙한 이 음악은 어떤 한 가지 표현으로 압축하기가 쉽지 않다. 보컬은 상당히 쾌활하며 아름다운 하모니는 넉넉함이 우선 전달된다. 온화함과 달콤함은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듣는 이가 자연스럽게 감지할 오 르브와 시몬 제일의 특징이다. 'The Lucky One'은 바닷물 위로 눈송이가 떨어질 때처럼 스르르 녹는 기분이 들며 'Don't See The Sorrow'는 슬픔을 겪고 있을 때 친구가 옆에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보너스 트랙으로 담긴 1집의 'Stay Golden'은 '그냥 편하게 생각해. 지금 현재로서도 괜찮은 거야'라는 내용을 잔잔한 멜로디에 실어 흘려보낸다.

이들이 발산하는 여러 분위기는 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로 제작되어 여러 동영상 사이트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Sad Song'과 'Fallen Snow'는 듣기에 부담 없는 일렉트로팝의 전형을 구축, 발랄함과 산뜻함을 과시한다. 록의 향기를 머금은 'A Violent Yet Flammable World'와 'Night Majestic'은 각각 어두움과 생기 그득한 면모를 보이며 'The Disco Song'은 사뿐한 드럼 비트와 옛날 오락 게임에서 나올 법한 키보드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귀여운 멋을 한껏 나타낸다. 드림 팝과 함께 일렉트로니카와 록의 문법까지 다양하게 갖췄다.

다채로운 곡의 분위기 덕분에 오 르브와 시몬은 드라마와 영화 사운드트랙과도 조금씩 인연을 맺는 중이다. 3집에 수록된 'Another Likely Story'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미국 TV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에 삽입되었고 'The Lucky One'은 《어글리 베티 Ugly Betty》의 세 번째 시즌 12회에 클로징 테마로 쓰였다. 2집의 'Sad Song'은 독일 코믹 멜로 영화 《귀 없는 토끼 Keinohrhasen》로, 'Don't See The Sorrow'와 'The Lucky One'은 일본 영화 《유어 프렌즈 Your Friends》를 통해 독일과 일본 각국의 대중에게 전달됐다. 2007년에는 패션 디자이너 로버트 노르망드(Robert Normand)의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직접 연주와 노래를 해 패션계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대규모는 아니지만,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잠재 청취자들에게 다가서는 그들이다.

큐 매거진(Q Magazine)에서는 오 르브와 시몬의 음악을 두고 '사랑스러움을 적재한 멜로디'라고 말하는가 하면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은 '순수하고, 세련되고, 새로운 음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특징 덕분에 이들과 마주하는 순간이 무척 설레고 기쁘다. 만남의 소중함,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새롭고 친근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음악에서 숨 쉰다. 어쩌면 에리카와 애니, 헤더는 청취자들을 현실의 시몬으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여정 중 만나는 사람들에게 만남의 기쁨을 준 뒤 다음을 기약하며 정해지지 않은 길을 떠나기 때문에…. 즐거움을 예비한 그들과의 귀한 첫 만남은 영원히 붙잡고 싶은 순간이 될 것이다.

한동윤
2009/10 음반 해설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