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대한 상상, 7곡의 연주곡 앨범 원고의 나열

연주 음반은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낮다. 가사가 나오는 노래에 익숙한 대중은 연주만 계속되면 지루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러한 까닭에 연주곡이 싱글로 히트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연주곡으로 채워진 앨범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례로 2007년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동료 프로듀서 페니와 함께 결성한 '이터널 모닝'의 연주 앨범 < 사운드트랙 투 어 로스트 필름(Soundtrack To A Lost Film) >의 판매량은 8300여장에 불과했다. 꽤 선전한 편이지만 같은 해 출시돼 12만장 넘게 팔린 에픽하이의 4집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연주 음반이 대중에게 청원하는 힘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이 독한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9월 말 주목할 만한 연주 음반 한 편이 나왔다. 뉴에이지나 재즈 쪽에서는 늘 그렇듯 연주 음반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지만 문제의 앨범은 대중음악계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앰비언트(ambient·특정 대기의 전달에 초점을 맞춰 공간감을 조성하는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를 표현 수단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또 솔로 뮤지션의 작품이라면 대수롭지 않겠지만 장르가 다른 두 뮤지션이 만나 내놓은 앨범이라 더 관심이 간다. 이 프로젝트의 한 축인 레인보우99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한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의 솔로 앨범을 통해 다소 난해한 록과 전자음악을 선보여 왔다. 또 다른 주연 윤재호는 재즈 피아니스트다. 성향이 확연히 대비되는 음악가들의 조합이기에 결과물에 대한 궁금증은 커진다.

이들의 앨범 < 노이즈, 피아노, 서울(Noise, Piano, Seoul) >은 음반 제목처럼 레인보우99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바탕에 두고 윤재호의 피아노 연주가 곡을 이끄는 방식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면면을 표현한다. 일곱 편의 수록곡들은 둥둥 떠다니는 듯한 다소 탁한 배경음과, 진행과 쉼을 비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동일한 마디 없이 흘러가는 피아노 연주 때문에 언뜻 서로 비슷하게 들린다. 화려하게 기교를 부리는 연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마저 다들 정적이라 보통의 대중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재미없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자신들의 실험적 결합과 새로운 시도에만 초점을 맞춘 듯하다.

두 뮤지션이 만든 까다로운 작품은 연주 음반의 약점인 낮은 상업성을 부연하는 자취만은 아니다. 연주곡은 가사의 부재를 이용해 청취자의 상상력을 부추기는 매력도 지닌다. 뮤지션이 애초에 생각한 뜻과 심상이 존재하겠지만 듣는 이들도 음악을 감상하며 자신들의 경험과 처한 환경에 따라 저마다의 이야기를 생각하거나 각자의 풍광을 그리게 된다.

앨범의 수록곡들 '새벽녘', '2호선', '아침', '길고양이', '뉴타운', '대한문', '십자가'는 누군가에게는 황량한 이미지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담화를 여는 형상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상상은 자유니까.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노래들은 개인의 경험담이나 일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 혹은 보수 성향의 맹목적 예찬 위주였다. 반면에 < 노이즈, 피아노, 서울 >은 연주 음반이기에 어떠한 의미 부여도 허용될 것이다. 서울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을 보장하는 일곱 개의 시선이다.

(한동윤)

2013 10/29ㅣ주간경향 104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