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영, 1세대 힙합 싱어송라이터 원고의 나열

1992년 하반기는 현진영이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무대에서 입었던 배기팬츠와 후디는 그 시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패션 아이템이 되었으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춘다고 하여 이름 붙은 '엉거주춤 춤'은 연예인, 일반인 가릴 것 없이 정말 많은 사람이 따라 했다. 배기팬츠와 후디는 미국 빈민가 흑인들이 보편적으로 입는 옷이었고 '엉거주춤 춤'은 래퍼들이 랩을 할 때 리듬을 타면서 무릎을 굽혔다 펴고 팔을 흐느적대는 특유의 제스처에 기반을 둔 동작이었다. 그 두 가지 요소를 탑재한 현진영의 1992년 히트곡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이처럼 미국 흑인 사회에서 발생한 문화인 힙합을 집약해서 보여 줬다. 그는 이 노래로 우리나라에서 힙합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엄숙하게 시작하는 도입부와 달리 끝까지 펑키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노래 중간에 삽입된 'Hit it!', 'Let's go!' 등의 짧은 구호와 '흘러가는 시간 속에 (속에)', '나의 모습 찾을 수가 없어 (없어)' 같은 주고받기식의 래핑으로 대중성을 확보했다. 노래방에 가서 누군가 이 노래를 부르면 동행한 사람들은 대개 이 부분을 제창한다. 후속으로 방송에서 부른 2집 수록곡 '너는 왜? (현진영 go 진영 go)' 역시 비슷한 패턴이다. 추임새 같은 부분과 한 번 들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훅이 이어진다. 권투 동작을 주요 소재로 쓴 노래의 안무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의 연장이라 할 만하다. 현진영은 랩 음악, 댄스음악, 힙합을 쉽고 재미있게 한국에 소개했다.

흑인음악 사절의 개시는 1990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 New Dance 1 >이었다. 현진영은 수록곡 '슬픈 마네킹'과 '사랑 찾기'로 당시 우리나라에는 생소했던 한국어 랩을 선보였다. 또한, 일명 '토끼 춤'이라고 불린 '로저 래빗 댄스(The Roger Rabbit dance)'와 '러닝 맨(The Running Man)' 같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스트리트 댄스를 전파했다. '슬픈 마네킹', '야한 여자', '추억 그리고 아픔'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큰 인기를 얻은 R&B의 하위 장르인 뉴 잭 스윙을 모체로 한 구성이었다. 흑인음악의 트렌드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2집에 이어 3집 < Int. World Beat And Hip Hop Of New Dance 3 >의 '두근두근 쿵쿵'으로는 월드 뮤직의 요소를 곁들이며 변화를 도모했다. 이후 탁이준이 출신의 이탁과 아이더블유비에이치를 결성해 솔로 때와는 다른 어둡고 묵직한 힙합을 주로 선보였다. 5집 < Street Jazz In My Soul >의 'In my soul'과 후에 '소리쳐 봐'로 제목을 변경한 'Break me down'으로는 재즈를 가미한 음악을 들려줬고 또 다른 수록곡 'Blue day'에서는 보사노바를 연주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현진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꼭 거론되는 것이 백업 댄싱 팀인 '와와'다. 1집 시절의 와와는 후에 클론으로 큰 인기를 얻은 강원래와 구준엽이며, 그들의 입대 때문에 생긴 빈자리를 채운 2기가 듀스의 김성재와 이현도다. 2집 때 와와의 일원은 1993년 디 보이즈라는 듀오로 데뷔한 김철진이었고, '두근두근 쿵쿵' 때에는 지누션의 션이 활약했다. 현진영은 1990년대 중후반 한국 대중음악의 융성을 주도한 걸출한 가수들의 산파 역할도 했다.

현진영은 힙합 문화가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할 때 그 흐름을 간파한 이수만에게 발탁돼 가수로 데뷔했다. 어린 시절부터 흑인들의 음악과 춤을 자연스럽게 접한 그가 힙합을 능숙하게 표출할 인물로 더없이 적합했다. 현진영은 특히 이전에 쉽게 볼 수 없는 힙합 댄스의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임으로써 춤꾼들과 힙합 애호가들의 교본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현진영 덕분에 대중은 힙합, 흑인음악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 그에게 '힙합의 전파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이 마땅하다.

2013/09 엠넷 레전드 100
http://mnet.interest.me/special/6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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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의가 임진모 선생님으로 되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