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대중음악 - H.O.T.의 데뷔와 음반 사전심의 폐지 원고의 나열

서지원과 김광석의 자살, 룰라의 '천상유애' 표절 논란에 따른 리더 이상민의 자살 소동과 활동 중단,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등 새해 벽두부터 가요계는 시끄러웠다. 전도유망한 싱어송라이터들의 죽음, 상업주의가 빚어낸 비양심적인 모방을 목격한 데 이어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은 슈퍼스타의 은퇴 선언마저 겹치며 충격이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커다란 사건의 연속이었다.

안타까운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데뷔 앨범을 낸 패닉의 예사롭지 않은 행보는 대중음악계로 하여금 낙관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은 사랑 타령에서 벗어난 다채로운 주제의 가사, 흑인음악과 록을 결합한 참신한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아무도', '달팽이', '왼손잡이' 등이 큰 인기를 얻어 상업적인 성공도 함께 이뤘다. 이채로우면서도 근사한 음악은 실력파 신인의 왕성한 활약을 예견하게 했다.

토이의 [Youheeyeol], 윤종신의 [우(愚)], 윤상의 [Renacimiento], 강산에의 [삐따기] 등이 출시되며 싱어송라이터들의 약진 국면을 마련하기도 했으나 주류 가요계는 여전히 댄스음악이 강세였다.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디제이 디오씨의 '여름 이야기', 영턱스클럽의 '정', 터보의 'Love Is... (3+3=0)' 등 현란한 댄스곡들이 지속적으로 히트해 방송가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연초에 표절 파문으로 잠적했던 룰라는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신곡 '3!4!'를 발표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9월 H.O.T.의 데뷔로 음악 시장은 한층 뜨거워졌다. 학원 폭력 문제를 다룬 '전사의 후예'로 10대들의 공감을 산 그룹은 발랄함으로 무장한 후속곡 '캔디'로 순식간에 10대들의 우상이 됐다. 수많은 여학생이 '캔디'의 복장을 따라 할 정도로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이들의 성공은 철저한 기획에 의한 제작, 연령이 낮은 가수의 대대적 출현에 물꼬를 틀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향후 음악보다 외모와 춤에 더 주안을 두는 그룹들이 범람하는 좋지 않은 흐름의 서막이기도 했다.

같은 댄스음악에 속해 있지만 언타이틀은 10대임에도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스스로 해내 무척 특별했다. 힙합과 리듬 앤드 블루스 등 여러 장르를 능숙하게 소화함은 물론 견고한 구성과 준수한 래핑으로 프로페셔널다운 면모를 나타냈다. 프로듀서의 지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고만고만한 댄스 가수가 아니라 자기 음악을 생산할 줄 아는 가수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돋보였다.

6월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된 것 또한 1996년 가요계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음반 사전심의는 음악인의 표현의 자유, 창의력과 상상력을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사실상의 검열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그동안 판매가 금지됐던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92년 장마, 종로에서], 민예총의 [노동가요 공식음반] 등은 이후 불법 음반이라는 딱지를 뗄 수 있게 됐다. 방송 불가 판정을 받고 연주곡으로 나왔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수록곡 '시대유감'은 가사를 수록해 재발매됐다. 하지만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수정안은 사후심의를 통한 제약을 여전히 남겨 두고 있었다.

2013/11 한동윤

케이팝 아카이브 시대별 대중음악사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