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중음악 - 댄스음악, 록, 힙합의 균형있는 성장 원고의 나열

1997년은 아이돌 그룹의 출현이 본격화된 해였다. H.O.T.와 마찬가지로 젝스키스도 학원을 소재로 한 타이틀곡으로 데뷔해 10대들의 열띤 지지를 받았다. 얼마 후 H.O.T.가 2집으로 가요계에 복귀하면서 두 그룹은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팬덤을 확장했다. SM 엔터테인먼트는 H.O.T.에 이어 걸 그룹 S.E.S.를 배출하며 아이돌 그룹의 판을 키웠다. 또한 베이비복스, TNB, 태사자, NRG, 우노 등도 이해에 나와 아이돌 댄스 그룹의 대유행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솔로 가수들의 활약이 미약했던 것은 아니다. 유승준은 날렵한 춤과 라이브에서도 안정적인 보컬로 댄스음악계의 샛별로 등극했고 김종환은 '사랑을 위하여'로 4, 50대 음악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엄정화는 '배반의 장미'와 '3자대면'이 히트하면서 가요계를 대표하는 섹시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임창정은 '그때 또다시'와 '결혼해 줘'를 여러 음악 프로그램의 정상에 올려놓았고 연말 가요 시상식을 휩쓸며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댄스음악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록 뮤지션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추락천사'를 통해 랩 메탈을 선보인 김종서는 후속곡 '영원'과 '아름다운 구속'으로 특유의 감성적인 록 음악을 선보였고 김경호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금지된 사랑'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인기 로커로 급부상했다. 여섯 번째 앨범 [은퇴선언]을 통해 얼터너티브 록으로 변신을 시도한 시나위, 새로운 보컬 박완규를 영입한 부활, 'Here, I Stand For You'로 팬층을 확장한 넥스트 등 다채로운 활동이 이어졌다. 6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한 임재범은 '사랑보다 깊은 상처', '비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도 록의 번영을 도모하고 있었다. 각각 데뷔 앨범 [만병통치], [손익분기점]을 발표한 황신혜 밴드와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실험적인 음악 스타일, 독특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으로 이름을 알려 갔다. 델리 스파이스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가사, 명료한 멜로디의 '챠우챠우'로 록 애호가들의 시선을 끌었다. 클럽 재머스의 [Rock 닭의 울음소리], 인디 레이블 강아지 문화예술의 [One Day Tours] 같은 컴필레이션 음반이 출시되며 인디 음악, 특히 록 음악이 양적, 질적으로 발전했다.

록 밴드가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일도 있었다. 2월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 출연한 삐삐롱 스타킹이 '바보 버스'를 부르는 중에 멤버들이 손가락 욕설을 취하고 카메라에 침을 뱉는 돌발 행동을 해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다. 이들은 MBC로부터 무기한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들의 행동이 비판적인 음악 철학에서 나왔다고 해도 방송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임은 사실이었다.

1997년은 힙합이 비약적 성장을 나타낸 해이기도 했다. 업타운과 지누션은 정통적이면서도 대중성도 겸비한 음악으로 힙합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패닉의 김진표는 솔로 뮤지션으로서는 최초로 모든 수록곡에 랩을 담은 앨범 [열외]를 발표해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디제이 디오씨는 4집에서 사회 비판에 적극성을 띠며 댄스 그룹에서 힙합 그룹으로 변모했고 R.ef는 한시적으로 팀 이름까지 바꿔 가며 힙합을 모색하기도 했다. 힙합이 댄스음악의 다른 명칭쯤으로 여겨지던 토양에서 독립된 장르로 발아하던 시기였다.

2013/11
케이팝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