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남은 위대한 업적, 블리츠(Blitz) - Letz Blitz 원고의 나열

이 앨범은 우리 전통음악, 대중음악계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자, 전기 국악기를 연주해 제작한 음반이기 때문이다. 국악기를 전화(電化)한 것 자체가 유례없는 일이다. 나라 바깥에서 우리 전통악기를 새롭게 개량한 사례가 없으니 세계 최초이기도 하다. 블리츠(Blitz)의 데뷔 EP [Letz Blitz]는 분명히 음악사에 회자될 만한 중요한 창작물이다.

가야금 이현하, 해금 림하현, 거문고 황별님, 장구에 닥터 둠(Doctor Doom) 같은 가면을 쓴 제이피 먼로(J.P Munloe)로 구성된 블리츠의 초기 구상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애니메이터 김동현은 후배와 함께 슈퍼 사운드(Super Sound)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전자 국악기 개발에 나섰다. 이듬해 포터블 전자 가야금 '미르'를 만들었고 이후 거문고, 해금, 장구를 제작했다. 그리고 2013년 이를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밴드가 결성됐다.

그야말로 혁신이다. 소금이나 대금, 장구, 꽹과리처럼 비교적 가벼운 악기를 제외한 나머지 전통악기들은 부피도 크고 마땅히 들 수 있게 설계된 것도 아니라서 고정된 자세로 연주해야 했다. 경쾌한 곡을 연주해도 연주자는 그 분위기를 몸으로 표출하기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쉽게 파지할 수 있는 국악기의 발명으로 이제는 연주자도 흥을 마음껏 드러내며 무대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새 시대가 열렸다. 전통음악, 국악기에 수월한 역동성이 부여된 것이다.

전기로 악기를 구동한다는 것은 다채로운 모습의 획득과 더 나은 단계로의 개발 가능성을 배태한다. 전자회로를 수정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고 전기기타처럼 이펙터들을 연결해 계속해서 새로운 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한 가지 음색에 머물렀던 국악기가 그 고유성에서 자유로워지고 다변화의 특성을 얻은 것이기도 하다. 기록적인 순간이다.

이 앨범은 그러나 부정적인 면으로도 기념비적이다. 제작 과정에서의 실수인지, 엔지니어와 제작자의 능력 부족인지 몰라도 노래들이 마스터링이 제대로 안 된 까닭이다. 볼륨도 낮고 소리도 고르지 않아 아마추어 밴드의 어설픈 데모테이프를 듣는 것만 같다. 웅얼거리는 아이를 보듯 답답하다.

에러는 몇 가지 더 발견된다. 블리츠는 데뷔 EP를 세계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만들었다. 록을 토대로 하는 수록곡 'Arirang', 'Alien', 'Whykiki'는 대중성을 지나치게 의식해 국악의 체취를 거의 배제하다시피 했다. 음악만 들어서는 이들이 전통음악과 연관이 있는 가수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퓨전도 아니고 국악기는 간주 위주로 양념 정도로만 들어간다. 아무리 보편성을 우위에 두었다고 해도 전기화, 전자화한 국악기만의 매력이 또렷하게 감지되지 않아 아깝다. 게다가 노래들에서 나타나는 록, 팝, 댄스의 어정쩡하고 너절한 결합이 또 실망감을 건넨다.

참 아이러니하다. 몇 년 동안 힘들게 새로운 악기를 개발해 놓고 정작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상황이 우습다. 악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 퍼포먼스 소품을 만들었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수단만 모색하다가 대단한 업을 어이없게 깎아먹어 버렸다.

2014/04 한동윤

덧글

  • dd 2014/04/24 11:16 # 삭제

    이런 괴작이 존재했군요;;;;;;;;;;
  • 국악듣자 2014/11/12 18:46 # 삭제

    림아현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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