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대중음악 - 아이돌의 해! 힙합의 해! 조PD의 해! 원고의 나열

연초 매체와 대중의 이목은 조PD에게 쏠려 있었다. 지난해 PC통신에 공개한 'Break Free'를 통해 화제로 오른 그는 1집 [조PD In Stardom]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수록곡들 전반에 만연한 비속어와 욕설을 이유로 공연예술진흥협의회는 음반을 청소년 유해 매체로 판정했다. 이로 말미암아 [조PD In Stardom]은 '18세 미만 청취 불가' 스티커를 부착한 뒤 재판매하게 됐다. 비디오나 잡지 외에 음반에 '청소년 불가' 표시가 된 것은 조PD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가사의 전체적인 내용과 메시지를 고려하지 않고 일부분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일었다.

조PD의 파격적인 출현 덕분에 힙합은 이제 사회적으로 친숙한 용어가 됐다. 이에 더해 지난해 말에 데뷔해 '1tym', 'Good Love' 등으로 히트를 이어 간 원타임, 재미교포라는 배경으로 전문성이 조명된 드렁큰 타이거 등의 활동으로 대중음악계에 힙합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또한 한국 최초의 힙합 컴필레이션 음반 [1999 대한민국]이 출시되며 힙합은 대중과 소통의 폭을 넓혔다. 전문 댄서들로 구성된 피플 크루와 DMC가 가수로 데뷔하는 등 힙합의 유행은 거리의 문화로만 여겨지던 힙합 댄스도 브라운관으로 불러들였다.

늘 그래 왔듯 여름은 댄스음악이 위세를 부리는 시기지만 이해만큼은 달랐다.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 동안 국내 최초의 대규모 록 페스티벌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이 개최되며 수많은 록 애호가를 들끓게 한 것이다. 비록 강풍과 폭우로 인해 출연자들이 줄어들고 둘째 날 공연은 아예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1만 명이 넘는 관객이 운집해 대형 음악 페스티벌의 지속 가능성과 음악팬들의 열정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이 이후 국내에 다수의 대규모 공연이 열리는 데 초석이 된 것은 분명하다.

공연 문화는 식품위생법의 개정으로도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식품위생법은 라이브 클럽을 일반음식점으로 분류해 2인 이상 연주단이 공연할 수 없도록 했다. 이 시행령에 따라 라이브 클럽들은 제재를 감수하며 운영해 왔으나 연말에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합법적으로 공연을 열 수 있게 됐다. 이는 라이브 클럽의 확산, 비주류 뮤지션들의 안정적인 무대 확보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연기자 출신 이정현은 '바꿔'와 '와'로 연말 가요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 독특한 의상, 범상치 않은 퍼포먼스로 단숨에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그녀는 '테크노의 여왕'이란 호칭을 들으며 성공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대대적 유입에 편승한 장르 선택, 세기말의 정황을 극대화하는 판타지적 이미지 부각으로 이뤄 낸 히트였다. 비슷한 시기에 배우 채정안과 쿨의 전 멤버 유채영이 동종의 음악을 선보이며 나왔지만 이정현의 아성을 깨지는 못했다. 상업적 성패는 갈렸으나 이들은 모두 테크노의 태생적 지향은 차치하고 외형만 가져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10 한동윤

덧글

  • 작두도령 2014/06/02 14:57 #

    그때 당시 나우누리를 통해 접했던 조PD 소식과 타이틀곡 '이야기속으로'는
    국내 힙합을 잘 모르던 저에게도 여러 의미로 신선한 충격이었네요.
  • 한동윤 2014/06/03 09:42 #

    그땐 통신만으로도 신세계라서 더 센세이션이었던 것 같아요. 모뎀 소리가 그리워지네요~ ㅠㅠ
    조피디도 무서울 것 없는 젊은 시절이니 욕도 막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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