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니코(Nico) - 중곡동 연가 원고의 나열


사계절을 다 담은 것처럼 수록곡들은 다른 기운을 낸다. 하지만, 이들이 표현하고 들려주는 절기는 각 시즌의 특징과 괴리되는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우리가 1년 동안 겪는 사철의 일반적인 순환이 아닌, 새롭게 형성된 '습한 봄', '차가운 여름', '소생(蘇生)의 가을', '건조한 겨울'이 뒤죽박죽 차례 없이 튀어나오는 형태다. 신선하다고 느낄 수도,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상이한 모양새를 띠게 된 이유는 노랫말과 반주에 깃든 멤버들의 자유로운 표현에 있을 것이다. 앨범 타이틀로 적힌 서울 광진구 중곡동은 이들이 앨범 작업을 한 장소, 이곳에서 두 멤버 우상과 재영은 음악에의 솔직한 접근과 과감한 실험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밴드, 인디 음악이라면 으레 홍대 근방을 요충지로 삼았을진대, 예술의 정서보다는 평범한 요식업체만 깔린 동네를 선택했다는 것부터가 암암리에 습관화되고 규정된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배치해 내세우는 수수한 포크 감성은 이들 음악의 가장 큰 특징. 때때로 이펙트를 줘서 몽롱한 사운드를 이끌어내며 간결하게 정리된 드럼 프로그래밍이 이를 보완한다. 키보드도 간헐적으로 들어가 음악을 장식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와 사이좋게 평행을 이룬다. 후반으로 갈수록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데, 뚜렷한 목적지 없이 비틀거리며 거닐고 정돈된 자세를 벗어난 것 같은 톤을 직조하며 희미하고 아득한 대기를 한결 진하게 만든다.

특히, (의도적으로) 힘을 뺀 보컬은 니코의 전체적인 음악 색을 규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련한 소리를 내다가 엄숙하게 길을 잃고 만다. 그나마 밝은 반주로 진행되는 초반은 나른한 오후, 건물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이 반가워지는 일상의 보조제 노릇을 하겠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지루하고 심심함만을 가중시키는 수면제처럼 느껴질 위험도 있다. 밝아졌다가도 이내 어두워지고, 어딘가 복잡한 듯하면서 다시 쓸쓸해지는 양극의 중간을 일정하게 맞춰나감에는 부족함을 보인다.

완곡 없는 느긋함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첫 곡 '꽃가루는 손에 잡히질 않아', 앨범에서 가장 선명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외견상 진정성', '아이리스'는 단출하면서도 감성적인 표현이 멋스럽게 다가선다. 이 노래들이 습기가 서린 봄이라면 고요한 분위기, 쓸쓸한 정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인센느'는 냉랭한 여름, 무게가 실린 드럼 프로그래밍과 펑크(funk) 곡을 떠오르게 하는 루프,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한 데 뭉쳐 이질적인 골격을 띠는 것이 활력 있으면서도 차갑게 느껴진다. 허공에 가볍게 울리는 보컬이 무덤덤하게 들리는 'Rose', 노이즈가 잔뜩 들어간 '나는 나는 새' 등은 기괴한 계절의 변화를 드러낸다.

'중곡동 연가'라는 타이틀만을 봤을 때, '연가'라는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모호한 곡들도 더러 있다. 이는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 은유에만 몰두한 단어의 사용 때문. 이것도 니코의 순수한 감성,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내세우는 양식 중 하나임을 감안한다면 감상에서 생길 담벼락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 (2004년 1집을 발표했다고 하니 완전히 신인은 아니지만) 사이키델릭 포크, 록의 새로운 인물을 만날 수 있다.

20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