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중음악 - 스타 가수로 등극한 지오디 원고의 나열


2000년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돋보인 가수는 단연 지오디였다. 1999년에 발표한 1집의 '어머님께'와 '관찰'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지오디는 같은 해 말에 출시한 2집의 연이은 히트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했다. 두 번째 앨범에 실린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애수', 'Friday Night'가 2000년 지상파의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고 또 다른 수록곡 '그대 날 떠난 후로'도 너른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이해 그룹이 출연한 MBC 예능 프로그램 [god의 육아일기] 또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연말에 선보인 3집도 발매와 동시에 히트함으로써 지오디는 완연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서태지의 컴백도 매체와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첫 솔로 음반을 발표했을 때 아무런 활동이 없었으나 2000년 두 번째 솔로 음반 [울트라맨이야]를 발표하면서 4년 7개월여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앨범을 통해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얻던 장르인 뉴 메탈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최신 트렌드를 민첩하게 포착했다는 호의적인 평과 '장르 수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몇몇 가수는 변신으로 주목받았다. '내 남은 사랑을 위해'가 미온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큰 상업적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던 홍경민은 기존에 하던 록에서 댄스로 음악적 방향을 튼 '흔들린 우정'으로 단시간에 인지도를 높였다. 박지윤은 청순한 이미지를 주로 내세운 이전과 달리 '성인식'에서 야한 의상과 안무로 섹스어필을 행해 놀라움을 안겼다. 디제이 디오씨는 5집 [The Life... DOC Blues]에서 언론과 경찰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등 훨씬 거칠어진 모습으로 세간의 관심이 됐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10대 중반의 소녀 가수 보아의 데뷔도 중요한 일이었다. 국내에서는 'ID; Peace B'와 'Sara'가 어느 정도 인기를 얻는 데 그쳤으나 이듬해 일본에 진출하며 한류의 주역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보아는 단순히 동양의 비슷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 가사와 음악 스타일을 현지화하는 전략으로 일본 진출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인디 신은 펑크 밴드 노브레인의 데뷔 앨범 [청년폭도맹진가], 랩 록을 주 장르로 하는 퍼니 파우더의 데뷔 앨범 [The Greatest Hits], 한국 최초의 디제이 중심의 음반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180g Beats] 등이 출시되며 꾸준히 장르의 다양화를 도모했다. 힙합 전문 레이블로 성장을 꾀하던 라이브 클럽 마스터플랜은 컴필레이션 음반 [MP Hip Hop 超]를 발표하며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저변을 확장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 '통일소녀'라는 예명을 쓴 길정화의 북한 가요 리메이크 앨범 [휘파람]이 출시돼 인기를 얻었다. 분단국가의 현실을 조명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 성공으로 영화에 삽입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다시금 대중에 회자되기도 했다.

2013/11

덧글

  •  sG  2014/07/28 11:34 #

    퍼니파우더 멤버들 둘러앉아서 1집 앨범명 결정 했을 때의 토론이 정말 듣고 싶네요.
    "야 우리 1집 앨범명 The Greatest Hits 어떠냐" "ㅇㅇ 콜" "굿 ㅇㅇ"
  • 한동윤 2014/07/29 11:08 #

    그리곤 2집은, 1집은 그레이티스트 히츠로 졌으니까 베스트로 가자~ 콜~
    대범한 작명이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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