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릭 비디오의 역사와 특징
요즘 팝 음악계에서 '리릭 비디오(Lyric Video)'는 대세나 다름없다. 노래에 맞춰 가사를 내보내는 영상으로서, 수많은 뮤지션이 노래의 정식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기 전에 꼭 리릭 비디오를 선보이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해 빈번하게 만들어지고 있지만 역사는 꽤 길다. 알이엠(R.E.M.)이 'Fall On Me'(1986)의 뮤직비디오에서 어두운 톤의 야릇한 화면에 가사를 삽입한 것이나 노랫말을 그래픽 문자로 전달한 프린스(Prince)의 'Sign O' The Times'(1987)가 효시로 간주된다. 더러 밥 딜런(Bob Dylan)이 다큐멘터리영화 [Dont Look Back](1967)에서 그의 노래 'Subterranean Homesick Blues'(1965)의 가사 일부를 큐카드에 적어 보인 것을 기원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것까지 치면 리릭 비디오의 연혁은 무려 반세기에 이른다.

본편만큼 흥미로운 리릭 비디오

뮤직비디오는 잔뜩 흥분한 채 응급실을 찾는 애덤 리바인(Adam Levine)의 모습으로 도입부부터 신경을 집중시킨다. 다음부터는 사건을 역순으로 보여 줌으로써 긴박감을 형성하며, 마지막은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장식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가 심각한 영상으로 재현돼 놀란 이도 있을 것이다. 그와는 달리 앞서 공개된 리릭 비디오는 싱글의 커버에 쓰인 연분홍색 꽃들을 내내 삽입해 언뜻 보기에는 상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꽃들은 장례식에서의 꽃을 떠올리게 하며 곧 누군가의 죽음을 귀띔한다. 특히 '그대'가 없어서 방황하고 좌절함을 이야기하는 후렴에서 만화경처럼 왜곡돼 회전하는 꽃들은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대변한다.

정식 뮤직비디오는 케이티 페리(Katy Perry)가 변장을 하고 다섯 군데의 생일잔치에서 벌인 행동을 편집해 제작했다. 생일을 맞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찍은 셈. 고령의 랩댄서, 유대인 이벤트 사회자, 동물 조련사, 광대, 페이스 페인터 등 다섯 명의 캐릭터로 분해 능청스럽게 연기를 펼쳐 웃음을 자아낸다. 반면 리릭 비디오는 케이크, 마카롱 같은 음식과 주방기구, 그릇 등에 가사를 입혀 굉장히 아기자기한 면모를 뽐낸다. 형형색색의 화사한 소품, 앙증맞은 글씨체, 소품의 크기와 모양을 십분 활용한 재기 발랄한 전달력 덕분에 보는 내내 눈이 기쁘다. 'Birthday'가 디스코 스타일의 곡이라 화려한 글씨들은 노래의 경쾌함을 배가한다.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물건을 새롭게 제작하고 음식에 공을 들인 것을 확인하면 리릭 비디오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듯하다.

리릭 비디오라고 해서 꼭 글씨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Problem'의 리릭 비디오는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가 직접 출연해 고혹적인 모습을 보인다. 입술이나 눈빛에 포커스를 맞춘 화면, 이것을 가리는 가사의 조합은 은밀함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기에 무표정하게, 혹은 약간의 그루브를 타면서 랩 파트를 부를 때에는 도도함마저 느껴진다. (리릭 비디오에서 섹시함이 풍기다니!) 리릭 비디오에 사용된 레트로 타입의 폰트들은 정식 뮤직비디오에 대한 힌트였다. 정식 뮤직비디오에는 원색의 그래픽이 쓰이곤 있지만 전반적으로 색조를 낮춘 탓에 예스러운 느낌이 난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1960년대 유행에 맞춰져 복고를 표한다. 이 리릭 비디오 역시 정식 뮤직비디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한 가사전달? NO! 느낌 있는 Lyric Video들

영국 맨체스터의 4인조 보이 밴드 릭스턴(Rixton)의 'Me And My Broken Heart' 리릭 비디오는 정식 뮤직비디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구성이 알차고 재미있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남자는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배회하고, 노래 가사가 그의 주변을 장식한다. 가사는 자막처럼 영상에 새겨지기도 하지만 길거리의 구인광고, 종이컵, 음식을 싼 알루미늄포일 등 생활 속 사물에 적혀서 나타나기도 한다. 노래가 이야기하는 사랑과 이별이 현실에 가까이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이런저런 여자들에게 집적대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자 주인공은 외로움을 술로 달래기 위해 바를 찾는다. 그리고 여기서 한 여인과 인연을 맺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하지만 그 뒤에 노래에 맞춰 'Me And My Broken Heart'라는 가사가 절묘하게 배치된다. 이는 제목의 부각뿐 아니라 또 다른 이별과 상심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겨우 잘되나 했는데…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요즘 뜨고 있는 호주의 4인조 팝 록 밴드 파이브 세컨즈 오브 서머(5 Seconds Of Summer)의 'Amnesia' 역시 꽤나 감각적이다. 노래가 느린 템포의 어쿠스틱한 록인 터라 가사를 내보이는 방식이 요란스럽지 않고 정적이다. 그러나 슬라이드처럼 빛으로 쏜 가사는 우울함이 서린 운치를 분명하게 자아낸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빈방을 배경으로 흑백 화면에 은은하게 퍼지는 글씨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 뒤에 느끼는 공허함을 확실히 전달한다. 간간이 나오는 멤버들의 건조한 표정 또한 차라리 기억상실에 걸렸으면 하는 노래 속 화자의 슬픔을 부연하고 있다. 차분하지만 흡인력 있는 리릭 비디오다.

큰 인기를 얻은 영화 [원스(Once)]의 존 카니(John Carney)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사실로 화제가 된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의 사운드트랙이다. 주연을 맡은 애덤 리바인이 부른 'Lost Stars'의 리릭 비디오는 영화의 트레일러나 마찬가지다. 영화 속 주인공 남녀의 행복했던 한때, 그리고 어떠한 사건으로 갈등을 겪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 가사와 함께. 음악 영화이기도 하거니와 또 다른 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가 싱어송라이터 역할을 맡아 애덤 리바인 외에 그녀의 노래도 많이 들을 수 있다. 개봉 전 이미 출시된 사운드트랙은 영화를 더 즐겁게 감상하는 보조제가 될 듯. [원스]가 차분함의 매력을 발산했다면 [비긴 어게인]은 약간의 쾌활함을 추가해 특별한 감동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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