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봉권 - 시간 (時艱) 원고의 나열


불과 석 달 전, 듀오 위 아 히어(We Are Here)로 나왔을 때와 비교해 많이 다르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염승식과 작업한 앨범에서는 업템포의 모던 록이 있었고, 소프트 록도 존재했으며, 경쾌한 일렉트로팝도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로 데뷔 EP [시간 (時艱)]에는 무거운 분위기의 우울한 음악만이 포진한다. 위 아 히어의 앨범을 상기한다면 '파라란'에서 지금 같은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지난날에 표시했던 일부는 갑자기 다수로 나타나서 새삼스럽다.

앨범을 여는 'L'oiseau Sans Nom'부터 동일한 음을 반복하는 피아노 연주와 금속성의 사운드, 약간의 반향을 가한 보컬로 냉기를 안긴다. 리듬이 마치 느리게 가는 초침 소리처럼 들리는 '시간 (時艱)', 낮게 깔리는 파장과 층을 나눈 보컬이 분노와 불편함을 형상화하는 '무명 (無名)', 루프의 무감각한 반복이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실언 (失言)' 등 수록곡들은 대부분 다운템포, 앰비언트 성향의 전자음악으로 일관한다. '무심 (無心)'만이 록을 토대로 한다. 최봉권은 개인 작품으로 위 아 히어와 확연히 구분되는 색을 낸다.

위 아 히어를 연상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변신은 성공적이라 할 만하지만 약간의 흠은 보인다. 보코더를 활용한 보컬이 별다른 특색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변변찮은 가창을 위장하는 데에 급급한 모습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 그렇게 가공한 보컬 덕에 통일성은 구했지만 효과적으로 번뜩이지는 못했다. 또한 곳곳에서 윤상의 음악이 떠올려지는 것도 애매함을 가증한다.

다만 노랫말들이 어떤 사고를 생각나게 하는 점은 흥미롭다. 복수(複數)의 죽음, 불특정 다수의 과오로 발생한 참혹한 상태에 대한 언급, 아파하는 사람들과 달리 똑같이 자기의 삶을 사는 이들, 무심한 여신 등 이야기를 통해 특정 사건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최봉권은 개인적인 사랑이나 다른 무언가를 의도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노래를 곱씹어 보게 하는 인자이며 침울한 앨범을 낸 배경일 것이다.